아픈 손끼리 ---허영자

2004.01.17 18:09

조만연 조회 수:595 추천:63

2003년 12월 19일 토, 중앙일보



아픈 손끼리

허영자(1938- 함양출생)

아픈 손이
아픈 손끼리 마주잡는다

아픈 마음이
아픈 마음끼리 순히 겹친다.

아픈 손이
아픈 손 곁에서 쉬고

아픈 마음이
아픈 마음 곁에서 낫는다

참말로 아픈 손
아픈 마음은

그래서 안 아픈 손이 되고
또 안 아픈 마음이 된다.

아픈 손이 아픈 손 곁에서 쉬고 아픈 마음이 아픈 마음 곁에서 낫는다면 아프지 않은 손과 아프지 않은 마음이 곁에 있으면 아픈 손과 마음은 쉽게 더 빨리 치유될 일이다. 하필 아픈 손끼리 만나고 아픈 마음끼리 만나야 하는가. 그것도 참말로 아픈 손과 마음만이 만났을 때 안 아픈 손이 되고 안 아픈 마음이 되어 치유될 수 있다고 점잖게 시인은 아이러니를 주장하고 있다.
현실을 직관하는 시인의 눈은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그 진실의 DNA나 RNA를 찾고자 한다. 이를 추출해 내는 과정은 최선의 길 곧 왕도를 찾는 일과 같다. 많은 가정을 세우고 마치 목적지를 향하여 이리 저리 허구 속을 뚫고 나가는 치열한 실험 자이기 때문에 시인이나 예술가는 때로 아이러닉한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드린다. 현실을 관통하기 위해 허구의 배를 타고 아름다운 섬, 미래의 꿈을 찾아 매일 떠나고 있다.

옛 조상들은 놋그릇의 녹을 닦기 위해 수세미에 재를 묻혀 문질렀다. 어찌 보면 때가 낀 곳을 시커먼 재로 깨끗케 하는 일은 아픈 마음이 아픈 마음을 안 아프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시인의 아이러니와 같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부닥침에 상처받지 않고 온전하게 지탱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은 모두 아픈 손과 아픈 마음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여 살기에 이 시의 아이러니는 진실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하고 추워서 외로워서 정말 육신이 병들어 나보다 더 아픈 이웃들에게 내 아픈 손 내밀어 내 아픈 마음이 따뜻하게 덮어져 덜 아픈 세모가 된다면 목마른 꿈들을 다시 꾸리라.
1962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후 섬세한 시풍으로 사랑 받는 허영자 시인은 사랑과 절제의 시인으로 불리우며 「가슴엔 듯 눈엔 듯」첫 시집 후 여러 권의 시집을 내고 월탄문학상 편운문학상을 받았으며 성신여자대학에서 최근 정년 퇴임했다.
(*DNA와 RNA: 유전정보를 지닌 근본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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