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영 시인의 작품 감상

2006.06.10 18:10

조만연.조옥동 조회 수:916 추천:66

                  조옥동의 時調散策 (11)


                - 한혜영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대서양이 굽어보이는 플로리다의 남단에서 고래를 잡고 있는 한 시인을 소개하고 싶다. 그는 이미 정박한 배에 그득히 대어를 낚아 놓고도 고래를 잡고 싶어한다. 그것도 황금 꼬리를 한 고래를 잡으려 그의 상상의 그물을 멀리 깊게 펼쳐 놓고 있다.

1989년 시조로 등단하고 일년 뒤인 1990년에 한혜영 시인은 이민을 와 백인들의 세상 그것도 부유층의 주민들이 주류를 이루는 곳에 살면서 특이하게 <된장 끓이는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  “누구는 이름만 들어도 플로리다, 플로리다 황홀하다고 밀봉된 꿀단지 어루만지듯 은근하게 발음을 내었지만 … 뜨거워, 뜨거워 정념의 플로리다는 훅훅거리며 꽃을 피운다네 사철 들썩이는 대지, 지칠 줄 모르는 사내 발바닥이 마이애미쯤 된다고 치고 간지럼이나 한바탕 먹여 볼까? 큭큭거리다가 이 몸 은근슬쩍 달아오르는 뜨거운 상상!//”(한시인의 시집 ‘뱀 잡는 여자’에서)의 세상에서 ‘더 이상 질투할 것이 없어진’ 시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시간을 고국이 물씬 풍기는 된장국을 하필 끓여내고 있다.
재료도 구하기 만만찮은 곳에서 그가 끓여내는 된장국은 어떤 맛과 멋을 풍기는지 미식가들은 이미 그 맛을 알아  한국에서 정평이 나 있다.

  저공으로
      날아가는 밤 비행기


필시 내 속에도 저런 슬픔 있을 테지.

뜨지도, 그렇다고
가라앉지도 못하면서

저문 강
검푸른 물결에 속절없이 휘감기는.


풀벌레 그리고 생각


풀벌레 톱질 소리
툭툭 끊기는 푸른 신경
어차피, 어차피 하며
목숨을 켜고 있다
내 젊어
헌데를 앓던
꿈과 사랑, 뭐 이런 것들
아직도 못 다 저문
殘光 같은 시절 있어
차라리, 차라리 하며
톱밥을 쌓고 있다
바람은
통나무 같은
어둠을 켜 棺을 짜고


무너진 시절


기적소릴 내고 싶어
내 몸이 우는 날은
낡은 枕木,
그 추억도 비에 젖고 있을 거다
오래 전
時效를 넘긴
차표 한 장 나뒹굴고

驛舍는 무너지고
이후 나는 갇혀 있고
세월은
녹을 먹은 철마처럼 우는 거다
그리움
온몸에 등불 달고
꽃뱀처럼 달리는데

옛 꿈은 時效를 넘긴 차표 한 장처럼 나뒹굴고 그 꿈을 품었던 청춘은 무너진 驛舍가 되어 그 안에 갇힌 대부분의 이민자, 대부분이 당면하는 절박한 생활전선에서 겪어내야 했던 대응의 심각한 경험을 이 시인은 면했다 해도 “이쪽에도 저쪽에도 편승하지 못하고 고국이란 羊水속에 갇혀 지냈다”는 시인의 말은 이국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소외감 속에서 얼마나 눈물을 머금었는지 작품들은 말한다. 그래서 한국서 유명세를 타는 드라마는 한국채널을 끌어다 거의 다 보고있다고, 이민 동포들이 고국에의 그리움과 향수를 달래는 방법이다.


  목련


방금 숨거둔 이의
가슴 여며준 듯싶은

손! 저
희디흰
손앞으로 이끌려가

이승에
더럽힌 이마 위에
종부성사를 받고 싶네

그가 시조라는 그래프에 올려놓는 그 영혼의 데이터는 왠지 올라가는 톤이 아니고 X라는 기본의 橫축을 뚫고 깊숙이 목이 잠긴다.
무의식의 세계까지 침잠된 과거는 내면세계를 자극하는 외부세계를 만나면 즉 작가 내면에 존재한 이미지는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아픔과 고뇌 성찰을 거쳐 이성적 판단을 내리거나 충동적 반응을 일으킨다. 예술도 이러한 반응의 생산품이고 문학은 언어라는 자재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다양한 언어의 축적을 비장하고 있는 작가는 타고난 자질도 있어야 하고 노력도 필요한데 한 시인은 양편을 겸한 행운의 작가다.

간밤 짙은 살 냄새를
가랑가랑 끌고 와서
물을 긷는 버들 뒤로
아쉬운 듯 밤이 가네
여자여!
푸르게 출렁댔을
젊은 몸의 그 體位여

저 버들에 세를 들면
물 한 동이 얻을 건가
밀폐된 방 어둠 속에
잠만 자는 늙은 사랑
몸 활활
뜨겁던 밤을 잃고
적막하네 내 여자는

     한혜영 시조 <여자>의 전문


발랄함이 조금씩 침체되어 간다. 시인은 “빨간 맨발로/둥근 문을 박차고 나와 깔깔거렸던/공주 적부터 평생을 함께 해왔던/(늙은 여왕에서)평생 수발을 들어온 여왕이 거동조차 할 수 없는 몰락의 때를 맞아 가장 든든한 빽이 없어지는 초조와 불안을 겪고 있다.  여자에게 폐경을 맞는 일은 몰락하는 여왕이 되어 가는 작가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 우울증과 심리적 거부반응 만만치 않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침체는 시인의 인생이 성숙과 성찰의 뿌리들 든든히 자리잡혀 감을 의미하리라. 나이 듦은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에 순응하려는 마음은 자연스레 사랑, 추억, 그리움 등의 단어가 詩에도 많이 등장하고 사물에 대한  눈여김이 그윽하게 깊어짐을 의미한다.


     핸드폰


핸드폰 한 대씩은 새들도 갖고 있지.
지붕 위 새 한 마리 어딘가로 전화 걸면
그 소식 반갑게 받은 짝꿍 하나 날아오고.

핸드폰을 먼저 쓴 건 사람보다 새들이지.
전화선도 필요 없고 돈도 낼 필요 없고
저 하늘 푸른 숫자판 부리 하나면 간단한 걸.

삐룩삐룩 여보세요 또로로롱 사랑해요.
우리 동네 아침 시간 혼선되는 새소리들
그래도 끼리끼리는 척척 듣고 통화하네


  징검다리 건널 때면


토끼처럼 사뿐사뿐/ 반만 디뎌 건너봐요.
실개천 물소리는/ 흘러내린 풍금소리
물 젖은/ 조약돌 하나/ 반짝 눈을 뜹니다.

물빛이 흔들릴라/ 맘 조리며 건너가요.
말갛게 잠긴 하늘/ 곱게 씻긴 모래알들
생각은 여울진 물살/ 산빛 씻겨 갑니다.

송사리 떼 흩어질라/ 숨죽이며 건너가요.
물방개 잔등 위에 / 동동 실린 꽃잎 구름
한 자락 헹군 구름도/ 하늘 싣고 갑니다.


  
우체통        

-봄-
빨간 역 대합실에
실비 촉촉 내리는 날
먼길 떠날 사연들이
비에 젖어 모입니다.
돌나물 돋은 것 같은
글씨들이 모입니다.

-여름-
밤도 푸른 한 여름밤
창가에서 쓴 편지는
꼬박 새운 잔별들이
총총 실려 떠납니다.
달빛에 젖은 마음이
고향 찾아 떠납니다.

-가을-
가을은 가는 편지
갈피마다 물이 들어
수줍은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입니다.
보고파 불러본 이름
꿈이 되어 쌓입니다.

-겨울-
겨울 길 하얀 길을
뽀득뽀득 밟고 와서
배꽃 피듯 아름다운
눈 소식을 전합니다.
멧새들 발자국 찍듯
얘기들을 전합니다.


그는1989년 <아동문학연구>에 동시조가 당선되어 문학의 길을 나선 후 아동문학에도 2001년 장편동화 ‘팽이꽃’ ‘뉴욕으로 가는 기차’ 2003년에 ‘붉은 하늘’ 2005년에 ‘날마다 택시 타는 아이’등 여러 편의 장편동화를 써 <계몽문학상>, 한국아동문학 창작상을 수상하였다.  연하고 원래 풋풋한 감성이 스펀지보다 강한 흡입력을 지녀 마름이 없이 뽑아 내는 그의 맑은 시혼의 생명력을 위에 올린 몇 편의 동시조에서 환하게 만날 수 있다.


이름에 대하여


文樣도 색도 청청한
고려 청자 그쯤 되는
빛나는 이름 있다
한 생전 눈이 부신
모든 것 다 저물어도
저물지 않는 이름 있다

더러는 초벌부터
아주 틀린 그릇이라
일그러진 모양대로
비바람에 젖어 산다
서러운 손때 묻히며
이리저리 옮겨 산다

한번은 꼭 그렇게
깨질밖에 도리없는
그릇 이상 무엇도 아닌
더없이 困한 日常
그래도 사람들에게
이름이 있어 행복하다

  
   편지


물고 온 건 볍씨였다
싹을 내는 볍씨였다
몇 평 뙈기 물려받아
면면이 이은 물고
그 핏줄 받들어 지은
정이랑 미움이랑

피봉 채 뜯기도 전
쏟아지는 안부들이
파랗게 웃자라는
이국의 서러운 땅
뜸북새 목멘 소리도
따라와서 울고나


흙이랑 물줄기랑
천지간에 맺은 이치
젖줄 하나로 통하는
기가막힌 이 합리를
팜츄리 배경으로 앉아
총총 읽고 있나니

“새 모이처럼 흩뿌려지던 햇살만/ 주워 먹고도 나 여기까지 당도했”던 지난날의 가난을 들이대며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목소리(시인 산문에서) 그리고 “더 이상 질투할 것이 없어진, 나는 요즘도 어릴 때 잘살았다는 사람만 보면 쨍그랑! 깨어집니다.”(60년대 흑백영화를 보다2에서)라고 80년대 이전의 세대 마음을 절절히 표현할 줄 아는 이 솔직한 시인은 시조라는 別堂에 들기만 하면 그 당당한 소리가 은근해져 싸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1999년에 「된장 끓이는 여자」장편 소설(문이당 간)을 펴내어 여러 인생경로를 통해 국제결혼이란 방법으로 미국이란 바다에 흘러 든 사람들의 좌절과 사랑을 현재와 과거가 어우러지며 반복과 변주로 된장국같이 끓어오르는 인간내면에 잠재된 그리움을 작품화하는데 성공한 소설가이다.
시인이며 아동문학가 그에게 보내는 “매우 步幅이 넓은 상상력을 지닌 시인이다. 그녀의 시를 읽다가 보면, 성큼성큼 건너뛰듯이 펼쳐져 나간 시원스러운 思考의 폭들을 만날 수가 있다.”(尹錫山 시인) 그리고“ 한혜영의 시가 지니는 들숨과 날숨, 그 호흡의 결은 머뭇거림이 없다. 활달한 보행으로 안과 밖의 통로를 통과하는 그의 의식은 투명하다.”(정진규 시인) 또한 “삶의 체험에 언어의 날개를 다는 힘이 무당의 주술 이상이기에 완성도가 높다.”(맹문재 시인)등의 평과 같이 문학의 모든 장르를 거침없이 드나드는 그는 문학에 정렬을 쏟아 창작에 빠져들고 있다. 언젠가 그의 문학에서 황금 고래를 인양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1954년 충남 서산 출생, 1994년<현대시학>시로 등단, 1996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시 입상, 1997년 추강해외 문학상(시조), 2004년 시조월드문학대상 수상, 저서로는 1990년 시조집“숲이 되고 강이 되어”, 1999년 장편소설“된장 끓이는 여자”, 2002년 시집“태평양을 다리는 세탁소”, 2006년 제 2시집“뱀 잡는 여자” 그리고 다수의 동화집을 펴냈다.
e-mail : ashle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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