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옥동의 時調散策 (15)


                선정주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非詩 · 42
―殉 敎
                         선정주

누가 순간을 물으면
이슬을 보라 하리.

딱 한 번의 일이지만
천의 시간이 들어 있다.

길고 긴 아픔의 길이를
바람은 알 리 없네.


“신에 의지하여 삶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한 시인의 길, 인생의 험난한 장정을 하나의 영롱한 이슬을 통해 표현 하고 있다.”
어느 시인이 위의 시를 통하여 선정주 시인ㆍ목사를 간단명료하게 술회하고 있다. 그렇다 시인이며 목회자인 그는 삶의 순간순간을 순교하며 신앙과 문학을 살리고 있다. 시를 쓰는 목사님, 목회를 하는 시인, 양떼와 시를 온 심혈을 기우려 몰고 온 인생은 오직 인내와 믿음으로 순종한 구도자의 삶이다.


非詩 · 46
-雪夜


밤은 세 시쯤
지상은 전체 눈이 덮였고,

눈 위엔 太處로 건너간
발자국이 선명하다.

이 일은 숨긴 啓示이다
행보를 맞춰 보네.


非詩 · 28
-어떤 冬至

어제가 冬至라서
시간적으로 말하면

깊이 꽃잠이 든
子正쯤이라 하리라

微動도 없이 선 나무
산 것 같지 않았다.


冬眠이라 하지만
잠든 게 아니었다.

육신을 세워 둔 채
생명을 받으러 간 거다.

春日은 그냥 오지 않고
받아 오는 것이라서.

「非詩」의 연작에서 골라 올린 위의 두 작품에서 확연하게 시인의 시심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생철학을 논한다면 그는 절대자를 인정하고 자연과 시야에 닿는 것, 촉수에 감각되는 모든 것에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시원 된 은혜와 순복의 삶이 배어있다.
10년 전 우연한 인연으로 김호길 시인을 통하여 「현대시조」를 만났고 내 설익은 작품을 시인은 뽑아 주셔서 오늘 시조와 동행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선정주 시인의 작품들과 만나 그 인생의 반듯함과 언행이 일치하는 목회자의 품격에 나는 誘引되었다.

다음은 2003년 5월 16일 토요일, 미주중앙일보<이 아침의 시>에 올렸던 작품이다.

        바위에 대하여
                                       선정주    
        
        식어서 돌이 된다면
        의미가 없어진다.
        절묘한 운치를 보고
        누가 서인(庶人)이라 하리
        여름밤 열기를 달래며
        늦은 묵시를 기다려라
        
        숨을 쉰다는 것은
        이목구비만이 아니다
        문명의 바람에게
        맨살이 깎여나지만
        허물을 헨다는 것은
        살아있는 예증이다.
        
        잘 나가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 날이다
        
        의구심대로 잘 모르겠다고 한다. 참 오래 잊고 살아 온
        격조(隔阻)때문만이 아닌 문명이 가져다준 득실의 생리를 따라
        나는 그에게 벌써 죽은 존재였었다. 이 소원(疏遠)에 대하여
        오늘은 이름을 붙여볼 참이다.
        
        바위의 거친 살결에
        핏줄이 돌면 어쩐다  
        (중략)
귀뚜라미 한 마리 아직도 방 한구석을 서성인다. 가을을 상징하는 귀뚜리가 사시상철 우리 주위를 맴돈다는 것은 무수한 촉수로 읽어 낼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한 여름 속에서도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홀로 울 수밖에 없는 고독한 울음이 있다. 시인은 한 마리의 귀뚜라미. 그러나 시인은 웬만한 바람에도 계절의 변화에도 움쭉 않는 바위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단순히 식어서 주저앉은 무게의 버팀이 아니다. 바위도 생명이 있을가? 생김으로 말한다면 모양도 빛깔도 볼품없는 사람에게 비유한다면 평범 이하인 서민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물을 볼 줄 아는 눈을 지닌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아름다움 운치가 있다.  우리의 오감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시시각각 세계의 변화를 느끼고 있지만 존재의 의미, 생존의 진실을 깨달음은 천년도 만년도 부동의 자세로 앉아 여름밤의 묵시를 기다리는 바위 같은 진중함에서 얻는다.  살아 있음은 오관을 갖추고 단순히 날숨과 들숨의 반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위에 대하여」는 세상에서 사람 사는 도리와 세상사의 변화상을 묵시적으로 말하고 있다. 화자는 오랜만에 세상에서 잘 알려진 성공한 친구에게 전화했다. 희미한 옛 추억을 더듬어 반가운 마음으로 만날 기대감을 가지고. 그러나 의구심대로 저쪽의 반응은 모르겠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번쯤 갖고 있다. “문명이 가져다 준 득실의 생리를 따라 나는 그에게 벌써 죽은 존재였다”는 고백은 의구심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 소원에 대하여 이름 붙이는 방식”은 현대 생활상의 보이지 않는 벽과 인간다움의 따뜻함을 상실한 우리들에게 주는 시인만이 줄 수 있는 메시지이다.
선정주시인은 목회자로 시조시인이다. 계간 현대시조 주간이며 6권의 시집을 내고 문예한국 문학상 대상을 비롯 많은 수상경력을 지닌 분으로 ‘생의 理法을 구하는 구도자’ 라는 평을 얻고 시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현대시조라는 베틀에서 수많은 비단으로 짜내고 있다. (조옥동 시인, L. A.)

이 글을 선 시인께 보여드렸던 것이 인연이 되어 현대시조에 “조옥동의 時調散策”을 게재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동안 외람되게 여러 선배시인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다시 한 번 선시인의 작품을 좀 더 심층깊이 窮究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개성과 정형성이 명료한 중량천 시인, 시 쓰기는 영감을 통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시인, 道人은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 듯, 글을 쓰는 사람은 생활과 작품이 일치해야 한다는 신념을 실제로 보여주는 목사님, 이런 서술이 이 시인에게 입혀진 언어의 옷이다. 어느 군왕이 입은 龍袍조차 도무지 부럽지 않다.

중량천의 바람 · 3

중량천 바람 불면
흔들리는 달 그림자

바람 때문이었나
본래 체질이었나.

중량천 달이 비치면
흔들리는 영혼을 본다.


중량천의 눈물 · 1

〔1〕물 맑아져/ 더러 낚시꾼이 보인다지만// 해질녘 잡은 것을/죄다 버리고 떠나네// 창피를 당한 중량       천을 지켜보는 몇 점 구름.
〔2〕폐수가 유입되는/ 지류입구를 보다가//
     언뜻 강물의 근원이 깊고 깊은 산골짝 사람의 발그림자도 닿은 일 없는 그런 바위틈이라는 것보다       사람의 가슴이었네. 이슬 같은 눈물 같은 그 푸른빛이 회복되지 않는 한 물이 맑아질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알것네. 눈물이 솟는 사람의 가슴이/ 강물의 근원임을.

〔3〕수분과 염분만 남고/ 사랑이 빠져버린 눈물// 거기 돌아와 헤엄치는/ 물고기의 생리// 아무도 강의       표정을 읽고/ 통역하지 못해라.
      (지면관계로 원형을 축소했음을 말하고 싶다.)

  수 십 년간 정들어 자신의 앞뜰과도 같은 중량천변이 개발과 도시계획이라는 문명의 도구로 망가지고   피폐 하여 짐으로 자연과 인간의 부조화가 되어 감을 바라보며 그는 눈물을 고여 짜는 대신 가슴 아   픈 장탄식을 고르다가 〔2〕에서는 사설이 깊다.
흥이 있어도 흥이 없어도 홀로 자연을 벗 삼아 으쓱으쓱 어깨춤을 들썩이는 그는 소리죽인 열창이요    명창이다. 그리하다 시인은 무릎을 꿇고 하늘을 본다. 푸름을 잃은 물은 사랑이 없는 인간의 마른 가   슴 때문이라고, 사랑을 잃은 가슴에서 헤엄을 쳐야하는 물고기를 거절하지 못하는 중량천의 슬픔을 구   름이나 알거나. 물고기의 헤엄은 본능이고 삶의 방식이다. 인간을 더불어 자연은 본질을 유지하려는    고집이 있다.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창조주의 뜻을 헤아리고 해석하여 강단에서 설교를 하듯    독자와 만나고 있다. 자연은 모든 것을 품고 너그럽다. 자연은 절대자의 섭리를 따라 변하고 문명의    발생과 발달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인간이 친환경적으로 살아 갈 때 문명의 알레르기반응은   최소화되고 자연도 인간도 건강하다. 선 시인은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의 틀인 시조의 형식으로 자연사   랑을 갈파한다. 누가 절망은 아름다운 삶의 진경이라 했던가. 진실로 웃음속의 눈물, 울면서 웃는 진경   을 보는 듯하다.

선정주 시인의 작품들은 연시조가 많고 각 연을 떼어 독립시켜도 온전한 단시조로 완성된다. 그의 호흡이 그만큼 길고도 맺음이 분명하다. 극히 소수의 예외도 있지만 각 작품 속엔 꼭 몇 개의 선택된 한자어가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 작품집중의 하나가 非詩이고 그 안엔 그의 철학이 있다.  마치 유연히 흐르는 물가에 음쩍도 않는 바위 몇 개 앉혀놓아 그 깊은 시학의 운치를 달리 보이게 하는 그만의 시작법이다. 고유의 전통한복을 평상시에도 즐겨 입는 모습이 그를 구별되게 함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는 때론 정형의 틀을 사설시조로 비틀기를 즐긴다.  

그의 수백편의 작품을 논하기엔 나의 언론은 너무 부족하고 빈약하다. 그의 시조사랑을 다 갈파할 수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중학교 때 학교등록금을 시조문집 인쇄비로 유용하고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다는 일화는 현재까지 선시인의 시조사랑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그는 목회자로 시조라는 또 하나의 십자가를 메고 가며 보통사람이 추구하는 세속의 행복을 초월하고 있다는 평이다. 건강과 재정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새시대시조」를 계속 펴내고 있는 사실은 선정주 목사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고 있음을 알만하다. 제2회 현대시조문학상, 한국크리스챤문학상대상, 가람시조문학상등을 수상하고 한국시조 100년사에 확고한 자리를 하고 있다. 2006년 7월 태학사에서 출간한 「겨울 이조의 하늘」은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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