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오늘의 시집          
김정희의「세상을 닦고 있다」


세상을 닦고 있다

                                      김정희


괘종시계 긴 추처럼 밧줄에 매달려
사내하나 고층 건물 유리를 닦는다
창문을 열지 않고도 깨끗해진 유리로
바깥세상이 성큼 빌딩 안으로 들어간다
그 사내 얼룩진 마음도 피 눈물로 닦을 때
몸을 열고 밖으로 나올까
운명에 매달려 바람을 흔들며
그 사내는 걸레가 되어 세상을 닦고 있다


운명이란 밧줄은 얼마나 질기고 바꿀 수 없는 절대 절명의 것인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이다. 누구나 그 밧줄에 매달려 세상을 닦는다. 인내와 땀과 끈기와 피를 말리는 두려움이 없이는 감내할 수 없는 작업이 주어졌다. 비와 따가운 햇살은 눈감고라도 흔들림이 무섭다.
흔들림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시간이 흔들리고 생각이 이념이 사상이 흔들리고 철학이 흔들린다. 종교나 국가나 산도 바다도 흔들리고 소리가 흔들린다. 나비와 꽃이 꽃밭이 숲이 흔들린다. 이 우주에서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없다. 한 중심에서 에너지가 이동하면 흔들림이 동반된다. 평형이 깨지면 흔들리고, 있어야 할 곳에서 나사 하나 빠져 흔들린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바람이다. 세상은 바람의 집이다.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는 일은 정자 꼬리의 흔들림 때문이다. 거룩한 것은 많은 흔들림을 통과한 마침표가 있는 곳이다. 눈물이 있고 고뇌가 있고 기도와 명상이 있는 곳이다. 피보다 더 진한 뼈 속이 으깨지는 고통과 훈련으로 나 스스로를 흔들고 나면 운명이란 것도 무섭지 않다.
바람을 흔들어 바람을 타고 그 바람을 밀고 당기고 오르고 내리는 동안 얼마나 더 남루한 걸레로 변해 갈지 시인은 개의치 않는다. 자신을 세상에 내 놓는 일은 신뢰를 의미한다.

나를 정결케 하는 일은 자신과의 화해과정이며 바깥세상과의 화해를 목적하는 바로 세상을 정결케 하는 일이다. 시인의 희망사항이고 모두의 바람이다. 에고를 버린 헌신과 사랑과 인고의 피 묻은 걸레로 시인은 계속 세상을 닦는 중이다.
                        
                         조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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