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한 시인의 항아리 頌
2006.03.09 17:27
조옥동의 時調散策 (10)
김월한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해가 바뀔 때마다 세계는 새로운 변화를 예측한다. 이러한 예측은 생활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고 또 한편으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도 내포되어 있다. 이젠 BT 또는 IT라는 단어는 귀에 한참 익숙해져 있고 디지로그 시대가 되었다.
마치 지구의 거대한 바퀴를 갈아 끼우고 변화의 물살을 헤쳐 뚫고 나가야 한다는 비장함마저 든다. 생활 패턴이 바뀌고 환경이 변할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옛것을 그리워한다. 인스턴트 시대를 살면서 溫故知新을 생각하고 몸은 현대 문명의 便宜主義에 허리를 깊게 묻고 있으나 有機體인 우리의 몸은 자연으로 회복하기를 원하고 있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기 보다는 우리의 육체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있음이다. 인공으로 가미된 식품이나 인공 재배된 식품에 食傷한 우리의 몸이 유기성 식품을 선호하고 있다. 마치 나무가 하늘을 향해 가지는 펼쳐 있어도 뿌리는 흙 속에 뻗어 있듯 사람은 고향을 떠나 멀어질수록 고향에 목 매이고 살아간다.
난해한 현대시에 접근을 꾀하다 보면 우리의 호홉과 민족의 가락에 편하게 어울려 내려가는 時調가 가깝게 다가온다. 현대 시조라 할지라도 율격이 살아있는 행과 행 사이 곧 행간에 걸터앉은 보이지 않는 고유한 정서를 우리는 사랑한다. 제한된 격조에서 울려오는 의미를 찾다보면 무한한 풍경과 정경을 상상하게 만들어 독자의 넌즛한 암시력을 유발시기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받은 작품집 중에 金月漢 시인의 “대추나무 四季”를 읽었다. 수년만에 라스베가스에 사는 따님을 찾아오셨다가 年初에 L. A에 들려 책을 놓고 가셨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단번에 시장기를 면하듯 일독하며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김월한 시인은 민족의 傳統的인 정서를 빛나는 시조로 읊어내는 정통적인 시인이다.
꿈꾸는 흙
물소리도 귀에 젖고
비바람도 밟고 간다
차디찬 하늘을 바라
暝目하고 누운 지금
아득한
그날 그때를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햇볕 들어 따스한 날은
입김으로 몸 녹이고
조금씩 온기를 더해
일어서는 목숨이었다
너와 나
둘레를 깨워
잠겨 뜨는 불빛이었다.
추운 땅 마르고 터진 입술에도 햇볕이 드는 날엔 그 온기로 입김을 불어 언 살을 녹이며 일어서는 목숨이 있다. 아마도 嚴冬雪寒의 凍土를 작가는 자신의 모습으로 비유한다. 차디찬 하늘을 안고 죽음같이 누워 비바람이 밟고 가는 땅, 이 땅이 꿈을 꾸는 아득한 그날 그때는 언제 일까? 지난 과거도 될 수 있고 아직 도래하지 않고 있는 미래일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조금씩 온기를 더해 일어서는 목숨이고 더군다나 둘레를 깨워 너와 내가 함께 일어서는 불빛이 되는 일이다. 사라지는 빛이 아니고 살아나는 빛이 되는 일, 시조는 이 같은 빛이어야 한다.
좋은 생각은 곧 꿈이다. 괴테의 말이 아니라도 좋은 생각만으론 충분치 않고 실행되어야 하며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실천되어야 빛이 난다. "꿈꾸는 흙"이란 시제가 매우 신선하고 둘째 절의 종장에서 ‘너와 나'는 좀 지나친 비약이긴 해도 오히려 일체감을 일으켜 주고 있다. 스스로를 허물어 나무를 세우고 풀을 돋아주고 산을 높여 더 높게 만들면서 大地는 대조적으로 항상 낮은 존재의 표본이다.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모든 것을 품고 가장 낮게 엎드려 꿈을 꾸는 이는 시인 자신이다. 시인은 사물을 擬人化의 방법으로 自我를 메타포하고 있다.
겨울 나무
나무는 두팔 벌려
하늘 받쳐 들었다
밤이면 가지마다
별 떨기를 내려놓고
이 冬天
비탈에 서서
아린 눈발 맞고 섰다.
山野는 돌아누워
깊은 잠에 잠겨 있고
빈 벌판 울리고 가는
살 에이는 칼바람도
안으로
안으로만 커는
불지피는 回生의 꿈
이 시대 시조시인의 대부분은 김시인 같이 冬天 비탈에 서서 아린 눈발을 맞으며 回生의 꿈에 불 지피고 서 있는 겨울나무가 아닌가 싶다. 살아 온 동안이 칼바람의 세월이었고 앞으로 살아 갈 날 역시 살 에이는 칼바람의 세월이 아니란 확신이 없다. 두 팔 벌려 하늘을 받쳐들 듯 이 땅의 시조문학을 받쳐들고 서 있기에 말이다. 특히 김 시인과 같이 평생을 오직 시조를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살아 온 시조시인이기에 말이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시「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에서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고 읊고 있다. 깊은 숲 속에 편안히 누워 영원한 안식에 들기 전 지켜야 할 약속을 위해 시인은 멀고 먼 고단한 걸음을 걷고 있었다.
과연 우리는 왜 잠들지 못 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지켜야 할 약속 때문이라고 김월한 시인은 말 할 수 있을 분이다. 回生의 꿈을 불 지피려는 약속 때문이라고 그래서 돌아누워 깊은 잠에 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먼 길을 가듯 冬天을 받쳐 든 겨울나무로 서 있다고.
항아리 頌
후미진 어느 골짝
누워 있던 몸이었다
이리 저리 짓뭉개진
形象없는 몸이었다
밤마다
무엇이 되고자
꿈을 꾸는 몸이었다.
어느날 고운 손길이
너를 보듬고 만졌는가
불길 물길 다 견디고
숨결 살아 도는 모양
虛空도
네 몸속으로
들며 나며 숨쉰다.
후미진 어느 골짜기에서 形象도 없이 누워있던 몸이었지만 밤마다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이 있었기에 마침내 화려한 變身이 이루어진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 꿈이 없는 민족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뿐이다.
불길 물길 다 견디고 나니 숨결이 살아 돌고, 있는 듯 없는 아무 것도 아닌 虛空까지 들고 나게 용납하는 마음이 열린다. 더하여 虛空은 숨을 쉬는 생명체로 살아서 항아리와 일체감을 이룬다. 시인의 눈이 아니면 도저히 발견 할 수 없는 驚異의 경지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일은 절대자의 몫이지만 無에서 有를 꿈꾸는 일은 시인의 몫이다. 그래서 시인은 神技를 흠모하는 황홀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이 작품 하나로도 여러 분들로부터 받은 아낌없는 찬탄의 표현들을 열거하면 많다. “항아리의 비유는 그 폭이 굉장히 넓다.” “밝고도 건강한 時調詩의 참신한 美學을 映像化시키는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새로운 詩文學을 創作하여 새 時代의 독자들을 거느리는 신선하고 활기 넘치는 詩作業이다.” “그 聯想的 수법이 너무도 비약적이어서 凡人은 발상하기 힘든 迫眞力 속에 독자를 압도시킨다.”
나이가 들수록 소중한 것이 많아진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는 시간의 진주를 만들어 꿰기를 원한다. 눈 여기지 못하고 예사로 넘겼던 사물이나 사건들이 뇌 세포의 노쇠로 인해 기억의 칩에서 사라질 일을 염려나 하듯 흑백이나 칼라 영상으로 되살아 나 연약해진 마음을 연민으로 또는 후회로 출렁이게 만든다.
잃어서 얻어지고 얻어서 잃는 것이 삶의 연속이다. 영광의 그림자 속에는 희생의 주검들이 누워 있다. 金月漢 시인은 풀더미 헝크러진 속 迷路 찾듯 헤쳐나와(바랭이 풀에서) 찢긴 상채기를 다시 어루만지며(질경이에서)사시상철 서걱이며 슬픔을 뱉아 내고(내 안에 키운 억새에서)남루한 진실만 걸치고 돌아와(거리에 서서에서) 때로 빈 방에 혼자 앉아 陶瓷 몇 점 그저 그런 것들 바라보며 하릴 없고 덧없으면 詩나 한 줄 쓰라는 그들과 눈 길 맞추면서(빈 방에서) 지금은 살기 좋은 신도시 富川에 거하며 아직도 작품창작에 쉼이 없는 여일을 보내고 있다.
위의 시조는 수십 편의 작품 속에서 꿈과 연관된 작품을 선택하여 감상하였으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의 연조에 비추어 아직도 젊고 싱싱하며 현대감각을 꿰뚫고 있다. 부족한 서술력 때문에 더 많은 작품을 올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시인 자신을 표현한 시 한편을 다음에 놓는다.
自 在
깊은 물은 깊은대로
얕은 물은 얕은대로
높고 낮고 평평한 곳
萬有속의 自在였다
나 또한
그 속에 끼어
소리 높은 海溢이렸다.
시조집「대추나무 四季」를 읽고 격조 있는 한국시조문학의 진수를 맛보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며 시인으로 하여 계속 아름다운 시조시의 창작에 정통성이 빛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김 시인은 197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 당선으로 등단하여 제 7회 현대 시조문학상을 수상하고 「솔바람 소리」「다시 수유리에서」「대추나무 四季」등 3권의 시조집과 「현대시조의 어제와 오늘」2권의 평설집 및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김월한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해가 바뀔 때마다 세계는 새로운 변화를 예측한다. 이러한 예측은 생활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고 또 한편으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도 내포되어 있다. 이젠 BT 또는 IT라는 단어는 귀에 한참 익숙해져 있고 디지로그 시대가 되었다.
마치 지구의 거대한 바퀴를 갈아 끼우고 변화의 물살을 헤쳐 뚫고 나가야 한다는 비장함마저 든다. 생활 패턴이 바뀌고 환경이 변할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옛것을 그리워한다. 인스턴트 시대를 살면서 溫故知新을 생각하고 몸은 현대 문명의 便宜主義에 허리를 깊게 묻고 있으나 有機體인 우리의 몸은 자연으로 회복하기를 원하고 있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기 보다는 우리의 육체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있음이다. 인공으로 가미된 식품이나 인공 재배된 식품에 食傷한 우리의 몸이 유기성 식품을 선호하고 있다. 마치 나무가 하늘을 향해 가지는 펼쳐 있어도 뿌리는 흙 속에 뻗어 있듯 사람은 고향을 떠나 멀어질수록 고향에 목 매이고 살아간다.
난해한 현대시에 접근을 꾀하다 보면 우리의 호홉과 민족의 가락에 편하게 어울려 내려가는 時調가 가깝게 다가온다. 현대 시조라 할지라도 율격이 살아있는 행과 행 사이 곧 행간에 걸터앉은 보이지 않는 고유한 정서를 우리는 사랑한다. 제한된 격조에서 울려오는 의미를 찾다보면 무한한 풍경과 정경을 상상하게 만들어 독자의 넌즛한 암시력을 유발시기는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받은 작품집 중에 金月漢 시인의 “대추나무 四季”를 읽었다. 수년만에 라스베가스에 사는 따님을 찾아오셨다가 年初에 L. A에 들려 책을 놓고 가셨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단번에 시장기를 면하듯 일독하며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김월한 시인은 민족의 傳統的인 정서를 빛나는 시조로 읊어내는 정통적인 시인이다.
꿈꾸는 흙
물소리도 귀에 젖고
비바람도 밟고 간다
차디찬 하늘을 바라
暝目하고 누운 지금
아득한
그날 그때를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햇볕 들어 따스한 날은
입김으로 몸 녹이고
조금씩 온기를 더해
일어서는 목숨이었다
너와 나
둘레를 깨워
잠겨 뜨는 불빛이었다.
추운 땅 마르고 터진 입술에도 햇볕이 드는 날엔 그 온기로 입김을 불어 언 살을 녹이며 일어서는 목숨이 있다. 아마도 嚴冬雪寒의 凍土를 작가는 자신의 모습으로 비유한다. 차디찬 하늘을 안고 죽음같이 누워 비바람이 밟고 가는 땅, 이 땅이 꿈을 꾸는 아득한 그날 그때는 언제 일까? 지난 과거도 될 수 있고 아직 도래하지 않고 있는 미래일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조금씩 온기를 더해 일어서는 목숨이고 더군다나 둘레를 깨워 너와 내가 함께 일어서는 불빛이 되는 일이다. 사라지는 빛이 아니고 살아나는 빛이 되는 일, 시조는 이 같은 빛이어야 한다.
좋은 생각은 곧 꿈이다. 괴테의 말이 아니라도 좋은 생각만으론 충분치 않고 실행되어야 하며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실천되어야 빛이 난다. "꿈꾸는 흙"이란 시제가 매우 신선하고 둘째 절의 종장에서 ‘너와 나'는 좀 지나친 비약이긴 해도 오히려 일체감을 일으켜 주고 있다. 스스로를 허물어 나무를 세우고 풀을 돋아주고 산을 높여 더 높게 만들면서 大地는 대조적으로 항상 낮은 존재의 표본이다. 모든 것을 받아드리고 모든 것을 품고 가장 낮게 엎드려 꿈을 꾸는 이는 시인 자신이다. 시인은 사물을 擬人化의 방법으로 自我를 메타포하고 있다.
겨울 나무
나무는 두팔 벌려
하늘 받쳐 들었다
밤이면 가지마다
별 떨기를 내려놓고
이 冬天
비탈에 서서
아린 눈발 맞고 섰다.
山野는 돌아누워
깊은 잠에 잠겨 있고
빈 벌판 울리고 가는
살 에이는 칼바람도
안으로
안으로만 커는
불지피는 回生의 꿈
이 시대 시조시인의 대부분은 김시인 같이 冬天 비탈에 서서 아린 눈발을 맞으며 回生의 꿈에 불 지피고 서 있는 겨울나무가 아닌가 싶다. 살아 온 동안이 칼바람의 세월이었고 앞으로 살아 갈 날 역시 살 에이는 칼바람의 세월이 아니란 확신이 없다. 두 팔 벌려 하늘을 받쳐들 듯 이 땅의 시조문학을 받쳐들고 서 있기에 말이다. 특히 김 시인과 같이 평생을 오직 시조를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살아 온 시조시인이기에 말이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시「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에서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고 읊고 있다. 깊은 숲 속에 편안히 누워 영원한 안식에 들기 전 지켜야 할 약속을 위해 시인은 멀고 먼 고단한 걸음을 걷고 있었다.
과연 우리는 왜 잠들지 못 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지켜야 할 약속 때문이라고 김월한 시인은 말 할 수 있을 분이다. 回生의 꿈을 불 지피려는 약속 때문이라고 그래서 돌아누워 깊은 잠에 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먼 길을 가듯 冬天을 받쳐 든 겨울나무로 서 있다고.
항아리 頌
후미진 어느 골짝
누워 있던 몸이었다
이리 저리 짓뭉개진
形象없는 몸이었다
밤마다
무엇이 되고자
꿈을 꾸는 몸이었다.
어느날 고운 손길이
너를 보듬고 만졌는가
불길 물길 다 견디고
숨결 살아 도는 모양
虛空도
네 몸속으로
들며 나며 숨쉰다.
후미진 어느 골짜기에서 形象도 없이 누워있던 몸이었지만 밤마다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이 있었기에 마침내 화려한 變身이 이루어진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 꿈이 없는 민족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뿐이다.
불길 물길 다 견디고 나니 숨결이 살아 돌고, 있는 듯 없는 아무 것도 아닌 虛空까지 들고 나게 용납하는 마음이 열린다. 더하여 虛空은 숨을 쉬는 생명체로 살아서 항아리와 일체감을 이룬다. 시인의 눈이 아니면 도저히 발견 할 수 없는 驚異의 경지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일은 절대자의 몫이지만 無에서 有를 꿈꾸는 일은 시인의 몫이다. 그래서 시인은 神技를 흠모하는 황홀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이 작품 하나로도 여러 분들로부터 받은 아낌없는 찬탄의 표현들을 열거하면 많다. “항아리의 비유는 그 폭이 굉장히 넓다.” “밝고도 건강한 時調詩의 참신한 美學을 映像化시키는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새로운 詩文學을 創作하여 새 時代의 독자들을 거느리는 신선하고 활기 넘치는 詩作業이다.” “그 聯想的 수법이 너무도 비약적이어서 凡人은 발상하기 힘든 迫眞力 속에 독자를 압도시킨다.”
나이가 들수록 소중한 것이 많아진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는 시간의 진주를 만들어 꿰기를 원한다. 눈 여기지 못하고 예사로 넘겼던 사물이나 사건들이 뇌 세포의 노쇠로 인해 기억의 칩에서 사라질 일을 염려나 하듯 흑백이나 칼라 영상으로 되살아 나 연약해진 마음을 연민으로 또는 후회로 출렁이게 만든다.
잃어서 얻어지고 얻어서 잃는 것이 삶의 연속이다. 영광의 그림자 속에는 희생의 주검들이 누워 있다. 金月漢 시인은 풀더미 헝크러진 속 迷路 찾듯 헤쳐나와(바랭이 풀에서) 찢긴 상채기를 다시 어루만지며(질경이에서)사시상철 서걱이며 슬픔을 뱉아 내고(내 안에 키운 억새에서)남루한 진실만 걸치고 돌아와(거리에 서서에서) 때로 빈 방에 혼자 앉아 陶瓷 몇 점 그저 그런 것들 바라보며 하릴 없고 덧없으면 詩나 한 줄 쓰라는 그들과 눈 길 맞추면서(빈 방에서) 지금은 살기 좋은 신도시 富川에 거하며 아직도 작품창작에 쉼이 없는 여일을 보내고 있다.
위의 시조는 수십 편의 작품 속에서 꿈과 연관된 작품을 선택하여 감상하였으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의 연조에 비추어 아직도 젊고 싱싱하며 현대감각을 꿰뚫고 있다. 부족한 서술력 때문에 더 많은 작품을 올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시인 자신을 표현한 시 한편을 다음에 놓는다.
自 在
깊은 물은 깊은대로
얕은 물은 얕은대로
높고 낮고 평평한 곳
萬有속의 自在였다
나 또한
그 속에 끼어
소리 높은 海溢이렸다.
시조집「대추나무 四季」를 읽고 격조 있는 한국시조문학의 진수를 맛보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며 시인으로 하여 계속 아름다운 시조시의 창작에 정통성이 빛나게 되기를 희망한다. 김 시인은 197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 당선으로 등단하여 제 7회 현대 시조문학상을 수상하고 「솔바람 소리」「다시 수유리에서」「대추나무 四季」등 3권의 시조집과 「현대시조의 어제와 오늘」2권의 평설집 및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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