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高遠) 詩人의 作品 鑑賞
2007.10.02 17:38
조옥동의 時調散策 (13)
- 고원(高遠)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산을 오르다 보면 山勢에 따라 수목이 다른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 울창한 숲이 앞을 가로 막는 경우도 있지만 그 속엔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함께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큰 거목이 어린 나무들을 거느리는 듯 보인다. 대부분 작은 산에는 유달리 큰 나무가 서 있어 홀로 다 기억하고 있는 바람과 구름, 별과 일월의 역사와 심지어 안개의 비밀스런 심술까지도 아래의 작은 나무들에게 얘기를 해주고 있다.
미주의 한국 이민문학의 역사를 말할 때 우리는 고원(高遠)이란 큰 나무가 있어 다행이다. 그는 시작이요 터 밭이며 경작자고 산 증인이다. 그를 빼 놓은 한국문학을 미주에선 논할 수 없고 아니 있을 수 없다는 말이 타당하다. 1966년 아이오와 주립대학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를, 1974년 뉴욕대학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여러 대학교에서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지금도 캘리포니아 주의 라번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학자며 시인이다.
문학의 장에 서면 나 같은 사람은 감히 대 선배이며 원로인 고원 시인을 바라만 보아도 경외감을 갖게 된다. 더구나 그에 관한 또는 그의 작품을 이리저리 말하기는 매우 외람되고 분에 넘치는 일인 줄 알면서도 미주 한국문단의 원로 한 분, 아직도 그를 잘 알지 못하는 고국의 문인과 독자들께 그의 존재를 잠시라도 알려드리고 싶은 조급함에 수 백 편의 작품 중에서 특히 시조 몇 편을 들고 나왔다. 그 연유는 시인이 고국을 떠나 온지 오래 되었고, 고국에서 청년기였던 1950년대 초에서 1960년대 초까지 네 권의 시집이 발행 되었을 때마다 그 당시 충격적일 만큼 그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주목하였던 문단의 원로들과 동인들의 대부분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늦은 감이 있지만 고국 문단이 해외 한국문단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젠 이민 문학은 변두리 문학으로의 푸대접을 벗어나 해외한국문학으로 연구 평가되기 시작함이 오래되지 않았다. 1985년 高銀 시인이「모국어에 대한 회귀적인 사랑」이란 제호의 高遠론을 쓴 이후 최근까지 고원 시인에 관한 詩人론이 10편 가까이 쓰여 졌다.
마무리
꽃 피면
모진 바람
큰 가지 잘리고
패일 뻔 하다가는
뿌리 되레 깊어졌다
눈부신
단풍잎 단심
만리 퍼져
마무리
바위로 앉아
팔 다리 접어서
가슴에 묻었겠나
눈감고
입 다물고
다 맡긴 채 앉았구나
바람에 넉넉한 숨을
안 쉬는 척 살고 있다.
2003년 泰學社 간 우리시대. 현대시조100인선 <새벽별>에서
위의 두 작품을 통하여 시인의 모습을 우리는 곧 바로 읽을 수 있다. 모진 바람 불어와도 오히려 굳게 침잠하는 내면의 세계를 내 비치고 있다. 이는 연륜에서 오는 깨달음도 있겠으나 “지금은 어디 섰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던져 온 자기수련을 위한 최면의 결과다.
고원 시인의 연대는 큰 전쟁을 두 번이나 겪은 조국 한국의 피비린내 나는 수난과 격동으로 점철된 역사의 중심에 서서 아픔과 비탄과 가난 속에 몸부림치던 세대이다. “서구 현대문학에 곧잘 등장하는 불안, 불신, 부조리, 소외, 권태, 쫓김, 심문, 벽, 단절 같은 주제, 소재, 모티브가 우리에게는 그대로 생활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시를 두고 씨름해 왔다. 그런 편력, 그리고 상처가 새로 아리도록 아프게 되살아난다.”고 회고하는 그는 2005년 8월에 “문학생활 60년”을 기념하고 2006년에 “고원문학전집” 5권이 김호길 시인(세계한민족작가연합 이사장)과 김동찬 시인(현 미주한국문협 회장)과 몇 명의 후배로 구성된 간행위원회에 의해 출판사 “고요아침”에서 발간되었다.
구름
구름이 있나 없나
바람이나 알까 말까
없으면서 보이고
보이는데 자취 없이
나그네
지나간 자리
밟고 섰는
그림자
귀뚜라미
너는 꼭
숨어서만
우는 정을 지녔더라
그런데도
작은 몸
터져라 기를 토해
눈물만
흘리는 사람
울려나는 메아리
시조의 멋이 울려 나는 수 십 편의 絶唱들 중에서도 이 작품들은 “나는 오나가나 나그네다.” 라고 “그래서 이 길손의 눈은 늘 젖어 있다.” 는 시인의 고백이요 우리들 이민자 누구나 공감하는 노래다. 고독이 핏줄 속에 아프게 흐르는 실향민에겐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귀뚜라미도 흘러가는 구름도 도무지 무심치 않다.
1947년부터 고국과 영국 그리고 미주에서 현재까지 간단없이 이어 온 그의 창작활동 범위는 시와 시조, 수상록과 기행문 그리고 문학 평론, 수필, 서평, 번역시, 영문시 등 문학 전반에 통달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숱한 고백이 남아 있다고, 꿈도 남아 있다고 갈파한다. 문학에의 정렬이 오히려 더욱 날로 뜨거워 감은 이 땅에서 오랜 동안 호흡을 한 뜨거운 캘리포니아 사막의 기온 때문이 아니고 평생을 그림자 같이 때로는 오히려 더 풍성한 그림자로 고원시인을 감싸주는 부인 고영아(미주중앙일보 편집위원직에서 은퇴. 현재 고정필진으로 있음)선생의 내조와 외조의 힘이라고 알게 모르게 자랑을 하는 지극한 애처가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교회의 장로님이다. 몇 년 전 장암으로 고생을 할 때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화로 자신의 건강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부탁하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이 시인의 주위엔 제자들이 늘 떠나지 않는 가 보다.
느닷없이
느닷없이 올지 몰라도 꽃 한 포기 더 심자구
훌쩍 가고 말더라도 꽃 한 포기 더 심자구
갑자기 그 날이 올 때 꽃이 아직 안 펴도
좁은 문으로
큰 길이 많지마는 좁은 길만 좋다더라
애타게 찾고 걷다 닫힌 문에 이른다네
이 문이 하도 좁아서 낮은 몸 다 비워야
떡 한 조각
떡 한 조각 받아 먹고 작은 술잔 비우고
썩은 살 썩은 피가 줄줄이 녹아라
온 몸이 지워져버려 자취 한 점 없거라
바람 얘기
그렇게 가는 건데 이대로 가는 건데
가면은 가는 대로 말 말고 가는 건데
그렇게 갈 길이 있어 그냥 가면 그만인 걸
* 위의 시조들은 지면관계로 원작과 달리 3행으로 압축했음 *
내일이 세상 끝 날일 지라도 뉴턴의 사과나무는 심겨지고 심자고 말들 한다. 허나 그 마지막 날에 피지 못할 지라도 꽃 한 포기 심자는 이 시인의 마음을 누가 가졌을 가. 성찬식을 할 때, 떡 한 조각도 작은 포도주 한 잔도 예사로 넘기지 않는 시인, 그는 편하고 넓은 길 대신 좁은 길을 택하고 좁은 문을 통과하려고 허약한 몸에 가진 것 비우고 비우며 날마다 낮아지고 있다. 이 원로시인의 세계는 거룩하게 성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미주 한국문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시기는 1980년대 초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인의 가족이민이 시작하고 몇 년 후에 동부 뉴욕과 서부 L. A 에서 소수의 문인들이 문학단체를 만들고 앤솔러지를 펴내며 동호인 활동을 하게 된다. 1988년에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그는 1986년 시창작교실 (현재 글마루방)을 개설하여 오늘까지 후진들을 가르치고, 1988년부터 <문학세계>를 발행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미주의 양 대 일간지인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에서 실시하는 문예작품모집의 심사위원직을 해마다 맡아 수많은 신인들을 배출시키고 있다. 현재 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의 대부분이 직간접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현대시와 시조를 영역하여 미국출판사가 출판하게 하는 일을 그는 떠나 온 조국에 대한 극히 작은 사랑의 표시이고 빚갚기 라고 겸손하다. 개인적인 인연은 꼭 십년 전 내가 시인으로 거듭나게 된 1997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 작품모집에서 시작된다. 마종기 시인과 두 심시위원이 “그랜드 캐년에서” 라는 내 시를 입상작으로 선하여 1970년대 중반 이민으로 접었던 내 문학에의 꿈을 다시 펼치게 하는 동기부여의 행운을 얻게 되었다.
치자 꽃 소원
치자 꽃 핀 아침에
새 소리 흰 그림자
멀리 향을 맡자마자
칼라 꽃이 가슴을 연다.
이런 날
미국이 전쟁을
고만두면 좋겠다.
위의 시조는 아주 최근의 작품이다. 사실 근래의 작품에서는 고요와 平靜 속에 사색의
會悟와 悔悟가 깊은 信心을 투영한다. 그러나 그의 젊음은「時間表 없는 停車場」(1952)에서부터 「북소리에 타는 별」(1979)까지 荊棘의 철로를 달리며 항변과 개혁을 소리쳤다. 2 차 대전과 한국전쟁후의 사회적 혼란과 방랑의 旅路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신 지성인들을 향해 불신과 불안에 맞서 극복의 궤도를 찾으려 고뇌 하였다. 그는 때로 격하고 날카롭고 분노하고 슬펐다. 이제 꽃과 새가 어우러진 정원에서 향기를 가꾸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안락한 노후를 보내면서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다. 세상에 전쟁이 없는 날은 없을까? 시인의 신작 두 편을 아래에 더 내려놓는다.
향기의 소리
솔이 향을 쏟으면
향 소리가 들린다.
해와 달 농익어
별이 튀는 솔 향 소리.
입 가득
솔잎을 물고
푸른 소리를 마신다.
수국 숭어리
수북수북 인정 담아
맘이 트인 숭어리.
속상하고 뉘우칠 일
뭐 그리 많으냔다.
푸짐한
네 가슴 앞에
작은 손을 펴본다.
이 시인은 색과 향기가 소리로, 소리가 향이 되어 몸속으로 전이되며 삼라만상과 일체가 되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시와 시조를 기행문과 수상록을 그리고 평론을 얼마나 많이 기록했던가.
그 몸이 사색으로 채워지면 글로 비워내는 작업이 거듭하는 일생을 살면서 그는 하나의 악기가 되었다. 색과 향기와 소리가 조금만 건드려도 공명하는 아름다운 악기이다.
눈과 마음을 귀를 하늘을 향해 열어놓고 영혼을 풍요케 했던 그 행복을 나누어 가질
작은 손을 펴고 있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박계리가 고향인 고원시인은 1947년부터 1950년대에 신문 잡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후로 1952년 “時間表 없는停車場”(삼인시집)을 비롯하여 2003년 “춤추는 노을” 까지 열세권의 개인시집과 시조집 “새벽별”을 2001년에 출간 했다. 각 산문집 3권, 영시집 3권, 번역시집( 영시를 한국어로, 한국현대시와 시조를 영어로) 여러 권, 기타 학술저서 논문들이 있다. 혜화 전문을 거쳐 동국대학에서 김기림 교수에게 사사했고, UNESCO 장학생으로 영국의 Cambridge, Oxford에서 수학하고 1958년 동국대학에 복귀하여 영문학과를 졸업한다. 고원시인의 해외생활은 1963년에 시작 1974년 뉴욕대학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유수대학에서 교수생활이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학원을 개설, 후진을 배출하고 종합문예지를 발행하고 있다. 수상으로는 영시상, 미주문학상을 위시한 각종 공로상과 문학상, 한글학회의 국어운동 공로 표창, 시조문학상 대상(시조월드), 2006년에는 한국문인협회 해외한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고원(高遠) 詩人의 作品 鑑賞-
조옥동
산을 오르다 보면 山勢에 따라 수목이 다른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 울창한 숲이 앞을 가로 막는 경우도 있지만 그 속엔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함께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큰 거목이 어린 나무들을 거느리는 듯 보인다. 대부분 작은 산에는 유달리 큰 나무가 서 있어 홀로 다 기억하고 있는 바람과 구름, 별과 일월의 역사와 심지어 안개의 비밀스런 심술까지도 아래의 작은 나무들에게 얘기를 해주고 있다.
미주의 한국 이민문학의 역사를 말할 때 우리는 고원(高遠)이란 큰 나무가 있어 다행이다. 그는 시작이요 터 밭이며 경작자고 산 증인이다. 그를 빼 놓은 한국문학을 미주에선 논할 수 없고 아니 있을 수 없다는 말이 타당하다. 1966년 아이오와 주립대학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를, 1974년 뉴욕대학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여러 대학교에서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지금도 캘리포니아 주의 라번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학자며 시인이다.
문학의 장에 서면 나 같은 사람은 감히 대 선배이며 원로인 고원 시인을 바라만 보아도 경외감을 갖게 된다. 더구나 그에 관한 또는 그의 작품을 이리저리 말하기는 매우 외람되고 분에 넘치는 일인 줄 알면서도 미주 한국문단의 원로 한 분, 아직도 그를 잘 알지 못하는 고국의 문인과 독자들께 그의 존재를 잠시라도 알려드리고 싶은 조급함에 수 백 편의 작품 중에서 특히 시조 몇 편을 들고 나왔다. 그 연유는 시인이 고국을 떠나 온지 오래 되었고, 고국에서 청년기였던 1950년대 초에서 1960년대 초까지 네 권의 시집이 발행 되었을 때마다 그 당시 충격적일 만큼 그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주목하였던 문단의 원로들과 동인들의 대부분이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늦은 감이 있지만 고국 문단이 해외 한국문단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젠 이민 문학은 변두리 문학으로의 푸대접을 벗어나 해외한국문학으로 연구 평가되기 시작함이 오래되지 않았다. 1985년 高銀 시인이「모국어에 대한 회귀적인 사랑」이란 제호의 高遠론을 쓴 이후 최근까지 고원 시인에 관한 詩人론이 10편 가까이 쓰여 졌다.
마무리
꽃 피면
모진 바람
큰 가지 잘리고
패일 뻔 하다가는
뿌리 되레 깊어졌다
눈부신
단풍잎 단심
만리 퍼져
마무리
바위로 앉아
팔 다리 접어서
가슴에 묻었겠나
눈감고
입 다물고
다 맡긴 채 앉았구나
바람에 넉넉한 숨을
안 쉬는 척 살고 있다.
2003년 泰學社 간 우리시대. 현대시조100인선 <새벽별>에서
위의 두 작품을 통하여 시인의 모습을 우리는 곧 바로 읽을 수 있다. 모진 바람 불어와도 오히려 굳게 침잠하는 내면의 세계를 내 비치고 있다. 이는 연륜에서 오는 깨달음도 있겠으나 “지금은 어디 섰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던져 온 자기수련을 위한 최면의 결과다.
고원 시인의 연대는 큰 전쟁을 두 번이나 겪은 조국 한국의 피비린내 나는 수난과 격동으로 점철된 역사의 중심에 서서 아픔과 비탄과 가난 속에 몸부림치던 세대이다. “서구 현대문학에 곧잘 등장하는 불안, 불신, 부조리, 소외, 권태, 쫓김, 심문, 벽, 단절 같은 주제, 소재, 모티브가 우리에게는 그대로 생활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시를 두고 씨름해 왔다. 그런 편력, 그리고 상처가 새로 아리도록 아프게 되살아난다.”고 회고하는 그는 2005년 8월에 “문학생활 60년”을 기념하고 2006년에 “고원문학전집” 5권이 김호길 시인(세계한민족작가연합 이사장)과 김동찬 시인(현 미주한국문협 회장)과 몇 명의 후배로 구성된 간행위원회에 의해 출판사 “고요아침”에서 발간되었다.
구름
구름이 있나 없나
바람이나 알까 말까
없으면서 보이고
보이는데 자취 없이
나그네
지나간 자리
밟고 섰는
그림자
귀뚜라미
너는 꼭
숨어서만
우는 정을 지녔더라
그런데도
작은 몸
터져라 기를 토해
눈물만
흘리는 사람
울려나는 메아리
시조의 멋이 울려 나는 수 십 편의 絶唱들 중에서도 이 작품들은 “나는 오나가나 나그네다.” 라고 “그래서 이 길손의 눈은 늘 젖어 있다.” 는 시인의 고백이요 우리들 이민자 누구나 공감하는 노래다. 고독이 핏줄 속에 아프게 흐르는 실향민에겐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귀뚜라미도 흘러가는 구름도 도무지 무심치 않다.
1947년부터 고국과 영국 그리고 미주에서 현재까지 간단없이 이어 온 그의 창작활동 범위는 시와 시조, 수상록과 기행문 그리고 문학 평론, 수필, 서평, 번역시, 영문시 등 문학 전반에 통달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숱한 고백이 남아 있다고, 꿈도 남아 있다고 갈파한다. 문학에의 정렬이 오히려 더욱 날로 뜨거워 감은 이 땅에서 오랜 동안 호흡을 한 뜨거운 캘리포니아 사막의 기온 때문이 아니고 평생을 그림자 같이 때로는 오히려 더 풍성한 그림자로 고원시인을 감싸주는 부인 고영아(미주중앙일보 편집위원직에서 은퇴. 현재 고정필진으로 있음)선생의 내조와 외조의 힘이라고 알게 모르게 자랑을 하는 지극한 애처가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교회의 장로님이다. 몇 년 전 장암으로 고생을 할 때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화로 자신의 건강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부탁하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이 시인의 주위엔 제자들이 늘 떠나지 않는 가 보다.
느닷없이
느닷없이 올지 몰라도 꽃 한 포기 더 심자구
훌쩍 가고 말더라도 꽃 한 포기 더 심자구
갑자기 그 날이 올 때 꽃이 아직 안 펴도
좁은 문으로
큰 길이 많지마는 좁은 길만 좋다더라
애타게 찾고 걷다 닫힌 문에 이른다네
이 문이 하도 좁아서 낮은 몸 다 비워야
떡 한 조각
떡 한 조각 받아 먹고 작은 술잔 비우고
썩은 살 썩은 피가 줄줄이 녹아라
온 몸이 지워져버려 자취 한 점 없거라
바람 얘기
그렇게 가는 건데 이대로 가는 건데
가면은 가는 대로 말 말고 가는 건데
그렇게 갈 길이 있어 그냥 가면 그만인 걸
* 위의 시조들은 지면관계로 원작과 달리 3행으로 압축했음 *
내일이 세상 끝 날일 지라도 뉴턴의 사과나무는 심겨지고 심자고 말들 한다. 허나 그 마지막 날에 피지 못할 지라도 꽃 한 포기 심자는 이 시인의 마음을 누가 가졌을 가. 성찬식을 할 때, 떡 한 조각도 작은 포도주 한 잔도 예사로 넘기지 않는 시인, 그는 편하고 넓은 길 대신 좁은 길을 택하고 좁은 문을 통과하려고 허약한 몸에 가진 것 비우고 비우며 날마다 낮아지고 있다. 이 원로시인의 세계는 거룩하게 성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미주 한국문학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시기는 1980년대 초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인의 가족이민이 시작하고 몇 년 후에 동부 뉴욕과 서부 L. A 에서 소수의 문인들이 문학단체를 만들고 앤솔러지를 펴내며 동호인 활동을 하게 된다. 1988년에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그는 1986년 시창작교실 (현재 글마루방)을 개설하여 오늘까지 후진들을 가르치고, 1988년부터 <문학세계>를 발행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미주의 양 대 일간지인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에서 실시하는 문예작품모집의 심사위원직을 해마다 맡아 수많은 신인들을 배출시키고 있다. 현재 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의 대부분이 직간접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한국의 현대시와 시조를 영역하여 미국출판사가 출판하게 하는 일을 그는 떠나 온 조국에 대한 극히 작은 사랑의 표시이고 빚갚기 라고 겸손하다. 개인적인 인연은 꼭 십년 전 내가 시인으로 거듭나게 된 1997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 작품모집에서 시작된다. 마종기 시인과 두 심시위원이 “그랜드 캐년에서” 라는 내 시를 입상작으로 선하여 1970년대 중반 이민으로 접었던 내 문학에의 꿈을 다시 펼치게 하는 동기부여의 행운을 얻게 되었다.
치자 꽃 소원
치자 꽃 핀 아침에
새 소리 흰 그림자
멀리 향을 맡자마자
칼라 꽃이 가슴을 연다.
이런 날
미국이 전쟁을
고만두면 좋겠다.
위의 시조는 아주 최근의 작품이다. 사실 근래의 작품에서는 고요와 平靜 속에 사색의
會悟와 悔悟가 깊은 信心을 투영한다. 그러나 그의 젊음은「時間表 없는 停車場」(1952)에서부터 「북소리에 타는 별」(1979)까지 荊棘의 철로를 달리며 항변과 개혁을 소리쳤다. 2 차 대전과 한국전쟁후의 사회적 혼란과 방랑의 旅路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신 지성인들을 향해 불신과 불안에 맞서 극복의 궤도를 찾으려 고뇌 하였다. 그는 때로 격하고 날카롭고 분노하고 슬펐다. 이제 꽃과 새가 어우러진 정원에서 향기를 가꾸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안락한 노후를 보내면서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다. 세상에 전쟁이 없는 날은 없을까? 시인의 신작 두 편을 아래에 더 내려놓는다.
향기의 소리
솔이 향을 쏟으면
향 소리가 들린다.
해와 달 농익어
별이 튀는 솔 향 소리.
입 가득
솔잎을 물고
푸른 소리를 마신다.
수국 숭어리
수북수북 인정 담아
맘이 트인 숭어리.
속상하고 뉘우칠 일
뭐 그리 많으냔다.
푸짐한
네 가슴 앞에
작은 손을 펴본다.
이 시인은 색과 향기가 소리로, 소리가 향이 되어 몸속으로 전이되며 삼라만상과 일체가 되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시와 시조를 기행문과 수상록을 그리고 평론을 얼마나 많이 기록했던가.
그 몸이 사색으로 채워지면 글로 비워내는 작업이 거듭하는 일생을 살면서 그는 하나의 악기가 되었다. 색과 향기와 소리가 조금만 건드려도 공명하는 아름다운 악기이다.
눈과 마음을 귀를 하늘을 향해 열어놓고 영혼을 풍요케 했던 그 행복을 나누어 가질
작은 손을 펴고 있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박계리가 고향인 고원시인은 1947년부터 1950년대에 신문 잡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후로 1952년 “時間表 없는停車場”(삼인시집)을 비롯하여 2003년 “춤추는 노을” 까지 열세권의 개인시집과 시조집 “새벽별”을 2001년에 출간 했다. 각 산문집 3권, 영시집 3권, 번역시집( 영시를 한국어로, 한국현대시와 시조를 영어로) 여러 권, 기타 학술저서 논문들이 있다. 혜화 전문을 거쳐 동국대학에서 김기림 교수에게 사사했고, UNESCO 장학생으로 영국의 Cambridge, Oxford에서 수학하고 1958년 동국대학에 복귀하여 영문학과를 졸업한다. 고원시인의 해외생활은 1963년에 시작 1974년 뉴욕대학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유수대학에서 교수생활이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학원을 개설, 후진을 배출하고 종합문예지를 발행하고 있다. 수상으로는 영시상, 미주문학상을 위시한 각종 공로상과 문학상, 한글학회의 국어운동 공로 표창, 시조문학상 대상(시조월드), 2006년에는 한국문인협회 해외한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0 | 조옥동의 時調散策(15)--- 선정주 詩人의 作品鑑常 | 조만연.조옥동 | 2008.03.18 | 706 |
29 | 당신 때문입니다---나태주 | 조만연.조옥동 | 2007.12.08 | 551 |
28 | 조옥동의 時調散策 -홍성란 詩人의 作品 鑑賞 | 조만연.조옥동 | 2007.12.08 | 870 |
27 | 김정희 시인의 시집 "세상을 닦고있다" 를 읽고---조옥동 | 조만연.조옥동 | 2007.11.26 | 556 |
» | 고원(高遠) 詩人의 作品 鑑賞 | 조만연.조옥동 | 2007.10.02 | 556 |
25 | 바람불어 그리운 날 ----- 홍성란 | 조만연.조옥동 | 2007.03.27 | 539 |
24 | 김영수 시인의 작품감상 [1] | 조옥동 | 2006.09.08 | 1389 |
23 | 선물 / 나태주 | 조만연.조옥동 | 2006.09.02 | 990 |
22 | 그래요 우리들, 우리들은요 -나태주 시 <봄날에>를 읽고 | 조옥동 | 2006.08.17 | 912 |
21 | 한혜영 시인의 작품 감상 | 조만연.조옥동 | 2006.06.10 | 916 |
20 | 김월한 시인의 항아리 頌 | 조만연.조옥동 | 2006.03.09 | 708 |
19 | 나태주 시인의 시조--애솔나무 | 조만연.조옥동 | 2005.12.10 | 1140 |
18 | 이재창 시인의 시조-- 달빛 누드 | 조옥동 | 2005.10.06 | 492 |
17 | 김호길 시인의 시조- 딱따구리- | 조옥동 | 2005.06.02 | 943 |
16 | 나순옥 시인의 작품 -고향- | 조만연.조옥동 | 2005.04.13 | 989 |
15 | 김동찬의 시조 나-무 | 조옥동 | 2004.12.17 | 751 |
14 | 홍오선의 뜨개질 | 조옥동 | 2004.12.04 | 780 |
13 | 낚시터에서---양점숙 | 조옥동 | 2004.08.13 | 587 |
12 | 아픈 손끼리 ---허영자 | 조만연 | 2004.01.17 | 595 |
11 | 시치미떼기---최승호 | 조만연 | 2004.01.17 | 6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