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 이병률

2010.11.29 22:41

kimheejooh 조회 수:343 추천:16

찬란-  이병률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

니 찬란하다

흑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니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

우는 일도 찬란하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쳐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하다

(중략)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

다는 기분이 드는것도

다 찬란하다







회복기의 환자는 죽음이라는 망각의 강으로부터 돌아왔기에 지극히 사소한 장면들까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감탄할 줄 안다.

보들레르는 이것이 영원한 유년을 살고자 하는 예술가의 정신이라고 했다. 꽉 찬 이 충만감 속에서 우리는 아픔마저 눈부시게 한다

(손택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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