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소(홍승주)
2011.02.02 17:58
웃는 소 - 홍승주 (1960 ~ )
희망정육점 쇼윈도 앞에서 진눈깨비 맞고 있던 소가
살얼음 낀 물통 속에 반 잠겨 웃고 있던 소가
머리뿐이던 그 소가, 이 밤
두 뿔로 어둠을 받으며 전속력으로 달려오네
발자국도 없이 내 속을 뛰어다니네
삐죽 올라온 보리싹 엉망을 만드네
내 안에서 한 석 달 가부좌를 틀고 있던 그 소가
먹은 것 되새김질하며
밤새 경을 외고 있던 그 소가
느닷없이
크 크 크 우네
크크크 크 크 크
웃어젖히네
정육점 머리뿐인 소는 왜 느닷없이 한밤 어둠을 받으며 전속력으로 달려와서는 크 크 크 울고 크크크 웃나. 머리뿐인 소는 죽은 소, 내 안의 소는 뭐, 마음 찾는다는 심우(尋牛). 둘 다 몸 없기는 마찬가지인 소. 육체를 입지 않고서는 초록지혜, 보리싹을 틔울 수도, 보리싹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없는 것. 그런데 육체도 없으면서 한밤 서로 엉켜 경련 일으키듯 울다가 웃다가. 일상 속 도리 없는 이 경련. 이게 다 죽음 앞의 생이라는 우리 신분의 불완전이 보내는 신호. 그렇지만 깨어 있으라는 사랑의 신호일지도 모르리. <이진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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