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나무의 시간/ 김명리
2010.12.02 23:40
산벚나무의 시간
김명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산벚나무의 꽃잎 중에는
미묘하게 물소리를 내는 꽃잎들이 있다
낙담한 사람의 애간장을 쓸어 담으려고
들릴 듯 말 듯 적요한 물소리로
범피중류의 꽃잔치를 열어 주는 산벚나무 꽃잎들
겨우내 해거름 물소리로 빚은 범종을
나뭇잎 사이마다 걸어 두었으니
사월 산벚나무 아찔한 높이에
용케도 녹지 않은 마른 눈발들이 있다
짓무르고 움푹 팬 상처들도
눈발 인 나뭇결 속으로 고요히 잠겨 가는 걸까
산그늘 오부 능선에선 부르르 떨며
꽃이 꽃그림자의 봉합선 속으로 들어가는 소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슬픔에도
저마다의 생로병사가 있다는 듯
물소리 붐비는 저녁의 문간엔
제 꽃잎 지우고서도 잎 틔우는 산벚나무
어디로 갈 거냐고 묻지는 않으면서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흘러오는 생의 기척들
—《문장웹진》 2010년 12월호
---------------
김명리 / 1959년 대구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명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산벚나무의 꽃잎 중에는
미묘하게 물소리를 내는 꽃잎들이 있다
낙담한 사람의 애간장을 쓸어 담으려고
들릴 듯 말 듯 적요한 물소리로
범피중류의 꽃잔치를 열어 주는 산벚나무 꽃잎들
겨우내 해거름 물소리로 빚은 범종을
나뭇잎 사이마다 걸어 두었으니
사월 산벚나무 아찔한 높이에
용케도 녹지 않은 마른 눈발들이 있다
짓무르고 움푹 팬 상처들도
눈발 인 나뭇결 속으로 고요히 잠겨 가는 걸까
산그늘 오부 능선에선 부르르 떨며
꽃이 꽃그림자의 봉합선 속으로 들어가는 소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슬픔에도
저마다의 생로병사가 있다는 듯
물소리 붐비는 저녁의 문간엔
제 꽃잎 지우고서도 잎 틔우는 산벚나무
어디로 갈 거냐고 묻지는 않으면서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흘러오는 생의 기척들
—《문장웹진》 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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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리 / 1959년 대구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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