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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면...

2006.02.13 07:11

오연희 조회 수:1073 추천:213


학교 근처에서 아파트를 얻어 친구들과 자취를 하는 아들이 몇 주만에 집에 오는 날이다.

딩동! 소리와 함께 산더미 같은 빨래 통이 걸어 들어온다.

세탁해야 할 옷가지랑 때가 꼬질꼬질한 이불과 베개가 거실바닥에 널브러진다.

얼굴을 보니 수염도 제대로 깍지 않은 거무티티한 얼굴에 게으름이 줄줄 흐른다. 싫은 소리가 목까지 올라오지만 침 한번 꿀꺽 삼킨다.

집에 오는 것도 저를 보고 싶어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얼굴 보여주러 온다는 말투다. "어이구 고마워라" 한마디 하면 엄마 말속의 은근한 뜻을 알아 차리고는 낄낄 웃는다.

학교이야기 친구이야기 교회이야기 등등…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책도 읽고 TV도 보고 쇼파에서 뒹굴거리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뒷마당에 있는 농구 골대에서 펄쩍펄쩍 뛰다가 근처에 있는 화분을 온통 망가뜨려 놓기도 한다.

한나절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싶더니 어느 사인가 보이지를 않는다.

친구 만날 일이 많다고 한다. 아들에겐 고등학교 친구 대학친구 교회친구.. 등등 여러 부류의 친구가 있다.

부모보다는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즐거워 하는 우리 아이들 부모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약간의 섭섭함과 함께 깊은 안도감을 갖게 된다.

흔히 친구가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그 사람됨을 알고자 하면 그 친구가 누구인가를 알아보라"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을 비롯해서 친구가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주는 참으로 많은 속담이나 격언을 우린 알고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좋은 친구를 사귀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혹시 친구가 다녀가고 나면 "공부는 잘하니?" " 부모님은 무슨 일 하시니?" 등등…겉으로 보이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생각이 건강한 지에 관심을 가져야 될 것 같다.

삶의 에너지가 있는 사람 같이 있으면 힘이 솟아나는 친구면 좋겠다. "친구를 잘못 만나서…"라는 말을 종종 듣는 바라 무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모처럼 호감을 가진 친구인데 부모의 잘못된 편견에 의하여 좋은 친구 사귈 기회를 놓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할 것 같다.

필자도 물론 내 아이가 수준이 높은 친구들을 사귀기 원한다.

좋은 학교에 가길 원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상이 높은 친구들과 사귀다 보면 내 아이도 좀 더 높은 꿈을 가질 것 같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아들과 친하게 지내온 그 아이는 부모들이 흔히 기대하기 쉬운 그런 수준의 아이는 아니었다.

춤추고 노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로 보였다.

하지만 그 친구의 밝은 성품과 퐁퐁 솟는 에너지가 내성적인 성품을 가진 필자의 아들에게로 출렁대며 흘러온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눈 여겨 보니 열심히 공부해서 뭔가를 이루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주위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을 높은 곳에 두어라. 태양을 향해 열심히 쏘다 보면 별이라고 맞출 수 있다.." 어디 선가 줏어 들은 명언을 아들 훈계하느라고 필자가 써먹은 적이 있다.

엄마가 하는 많은 잔소리 중에 하나로 흘러 듣는 것 같았는데 아들은 바로 이 말을 마음에 담고 있다가 그 친구에게 들려 주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충고로 받아들인 그 아이가 자신만의 성실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든 면에서 아들이 더욱 좋아하는 친구가 되었다.

그 아이들의 우정을 보면서 나보다 수준이 높은 친구를 갖는 것도 유익한 일이지만 꿈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어 생각의 수준을 같이 높여갈 수 있도록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참 즐겁고 귀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모든 면에서 다 훌륭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진정한 조언에 서로의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잘 지켜나감으로써 인생의 즐거움을 더할 줄 아는 우리 아이들이 되면 좋겠다.



신문발행일 :2006.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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