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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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2007.07.09 08:20

오연희 조회 수:1019 추천:217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뒹굴 거릴 때도 있지만 대개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책이나 신문을 읽곤 한다. 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들 중에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어떤 부정적인 생각에 붙잡혀 꼼짝 못할 때도 있다. 씁쓸한 기억을 돌이키기 보다는 평안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억 쪽으로 나를 몰아가려 애쓴다.

이빨 닦고 세수하고 손발 씻고 잠옷을 갈아입는다. 비슷한 시간에 남편도 그 일을 한다. 하나의 수건으로 온몸을 닦던 남편이 몸의 부위에 따라 세 개의 수건으로 구분 지어 놓은 나를 힐끗 본다. 왜 자신의 몸을 차별하냐고 한마디 던진다. 얼굴 닦는 수건으로 어떻게 발을 닦느냐고 반박을 한다. 치솔이 이렇게 많이 닳았는데 왜 새것으로 바꾸지 않느냐고 반박의 도를 높인다. 닳은 것이 부드러워 좋다고 한다. 변명 아니냐고 뒤집어 씌운다.

시시콜콜한 대화지만 평소의 관계가 탄탄하지 못할 때는 불화의 불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불미한 사건들의 발단은 모두 이렇게 미미한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에 와 닿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의 시작 역시 이런 미미함 속에 있을 것이다.

미미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캐내고 싶었다. 지극히 평범한 엄마인 좋은 엄마의 조건으로 따지자면 한참 뒤에 서 있어야 할 내가 지난 2002년부터 만 5년 동안 중앙일보 교육섹션에 '학부모 칼럼'을 썼다. 시작당시 딸은 대학생이고 아들은 고등학생 이었다.

두 아이들과 함께했던 지난 15년 동안의 미국생활을 나름대로 그려나갔다.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잘 못 그렸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웠다가 다시 그릴 수 있는 부분보다 지울 수도 덧칠 할 수도 없는 부분이 더 많았지만 잘못된 부분을 알아 차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내가 쓴 글이 나를 부끄럽게 하기도 하고 나를 세우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내 속에서 그리고 나의 밖에서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보며 '감사'라는 말 외에는 할 것이 없다.

그냥 입바른 소리의 '감사'가 아니라 무릎 온전히 끊고 올려드리고 싶은 그런 '감사'이다. 글과 관련된 다소의 아픔도 있었지만 그 아픔조차 합력하려 선을 이루시는 그분의 은혜였음을 깨닫는다.

얼마 전에는 그 동안 써 온 칼럼을 수정 보완한 것과 국내외 지면이나 방송을 통해 발표한 글들을 모아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묶어진 내 책을 읽으며 진실된 글과 가식된 글이 구분이 되어지고 또한 글의 깊이가 다름을 알게 되었다. 대개 '진실된 글'이란 내 실제의 삶이 그 글을 잘 받쳐 준 경우이고 가식된 글은 그 반대일 경우이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 지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그 동안 나의 글을 애독해 주시고 이모저모로 격려의 말씀을 주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우리모두의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마음을 표현한 졸시 한편을 끝으로 '학부모일기' 필진의 필을 놓는다.

"감사합니다."

나의 아이들아/오연희

내가 낳았지만 내가 아닌 존재
기쁨 중에 가장 크고
아픔 중에 가장 깊은
사랑 같고 집착 같고 본능 같기도 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 속에 있는
나의 아이들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것들 중
지우고 싶은 말행동
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의 생각 속에서
골라내고 싶다

고백컨대 엄마는
아이로 가득찬 어른이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못했고
아는 것을 제대로 가르칠 줄 몰랐고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이라는 말
가슴으로 받지 못했다

이제
내 안의 아이도 이 만큼 컸고
내 밖의 아이인 너희도 저 만큼 자랐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거기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애가 마르니
너희들은 나에게 진정
무엇일까.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7.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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