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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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로또와 크레딧

2006.10.02 09:24

오연희 조회 수:1001 추천:190


필자의 남편은 출장이 잦은 편이다. 비행기를 타야 할 정도의 장거리 출장도 있지만 가까운 곳은 직접 운전해서 다녀오기도 한다. 워낙 넓은 미국 땅이라 한번 움직였다 하면 운전 시간이 길어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하다.


마켓에서 챙겨간 말씀 테이프도 듣고 라디오 방송도 듣고 노래도 부르는 등 오랜 운전시간의 지겨움을 줄이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다. 돌아오는 시간이 주로 밤이라 쏟아지는 졸음을 쫓는 것이 가장 힘든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다섯 시간이 가뿐하게 지나 가더라며 실실 웃는다. 생전 처음으로 로또를 하나 샀는데 바로 그 로또가 당첨되면 그 돈으로 뭘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오다 보니 어찌나 재미가 있던지 시간이 금방 지나 가더라는 얘기다.


출장을 다녀온 다음날 저녁산책을 하면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아무래도 부동산 투자가 안전할 것 같아. 장학재단을 설립하면 보람 있을 것 같고" "기부하라는 곳도 많고 친척들도 손을 많이 내민 다던데요" "그 많은 돈 뭐해 좀 주면 되지" "그게 아니고 원하는 만큼 안주면 섭섭해 하고 그러다가 관계가 깨진다니까 문제죠. 그리고 불로 소득이라 헤프게 쓰다 보면 그 많던 돈 순식간에 사라진다네요." 돈의 쓰임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아 참 당신 안 버릴께"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생각난 듯이 아니 인심이라도 쓰듯이 남편이 한마디 던진다. 남편의 허리를 쿡 찌르며 한바탕 웃음으로 끝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웃을 일이 아니다. 왜 우리는 로토 당첨을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는 것과 함께 떠올리는 걸까? 로또 당첨자의 상당수가 당첨전보다 훨씬 불행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세상 웬만큼 산 어른들도 엄청난 돈 앞에서는 판단력이 쉽게 무너지는 모양이다. 어쩌면 사람이 그만큼 약한 존재라는 의미도 될 것 같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로또처럼 돈벼락을 맞아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에 비하면 자신의 수입에 어울리지 않는 분에 넘치는 생활로 인한 어려움이 더 심각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과의 관계처럼 크레딧을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크레딧이 쌓이면 돈 빌려 쓰라고 권하는 메일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빌려 쓸 수 있는 금액이 인쇄된 가짜 체크를 보며 가슴이 쿵쾅거린 적이 있다. 공짜로 돈을 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 허황된 상상에 젖는다.


크레딧의 나라 미국에서 어른도 저지르기 쉬운 함정에 우리 아이들이 빠지지 않도록 부모들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부모 곁을 떠나는 나이 즈음부터 크레딧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떠나기 전에 돈이 사람의 인격을 망가트릴 수도 있음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돈벼락 잘못 맞아서 삶이 망가지는 로또와는 성질이 다르지만 과소비 역시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 간섭을 떠나 누리는 자유가 자칫 자제력 잃은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크레딧 카드는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소' 일수도 있다. 학생 때 멋모르고 여러 개의 크레딧카드 이리저리 메꿔가며 쓰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빛 갚느라 혼나는 경우를 본적이 있다.


최소한의 금액만 내거나 만기일을 넘기거나 했을 때 붙는 수수료가 어떤 식으로 사람을 옭아 매는지 그것으로 인해 사람이 얼마나 치사해 질 수 있는지 경험하지 않고도 깨닫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필자가 아는 그 댁 아이는 컴퓨터 카메라 옷 책상 침대 등등..모든 것이 최신형 메이커 제품이다. 멀쩡한 카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헐값으로 친구에게 팔고 더 신제품으로 다시 사거나 주위에 인심도 잘 쓴다. 선한 일을 위해 먼 나라에 살고 있는 그 부모의 경제력을 뻔히 아는 바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간섭할 입장도 아니어서 지켜볼 따름이다. 자신의 수입 규모에 맞게 생활을 꾸려가도록 바탕을 다져주는 것이 우리 부모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소중한 것들을 다 잃을 수 있는 일이 로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문발행일 :2006.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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