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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어떤 죽음

2006.03.13 03:49

오연희 조회 수:980 추천:199


얼마 전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느 기업인의 딸의 죽음을 두고 “왜! 무엇 때문에, 뭐가 부족해서.” 등등 분분한 말들이 떠돌았다. 딸을 잃은 그 분도 일류, 최고라는 물질적 풍요에 가려 가족이라는 등잔 밑을 살피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안타까워 하는 분들도 있었고, 딸을 잃은 슬픔과 지나온 시간들의 반성, 앞으로의 생각에 많은 잠을 뒤척일지도 모르겠다며 같은 부모 입장에서 그 기업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는 동정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자식이 병이나 사고로 죽어도 부모의 가슴은 피멍이 드는데 젊은 나이의 자녀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부모의 가슴에 대못하나 박는 일일 것이다. 죽음쪽을 선택한 그 순간을 상상하다 보면 온몸이 떨려오고 높은 성적, 이름있는 학교 진학, 좋은 조건의 배우자, 든든한 직장... 등등 보통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참으로 하찮게 여겨진다.

최근 몇 년 사이 필자는 자녀를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 보낸 몇 명의 부모님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모두 사고사이다. 10대와 20대 초반의 자녀를 떠나 보내고 달라진 그들의 삶은 처절하다. 사연을 알아서 인지 모르지만 그 분들의 눈과 가슴은 늘 젖어있는 것 같다.

작년 여름 필자가 한국 방문 했을 때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했던 한국을 5년 만에 다니러 왔다는 한 엄마를 만났다. 10살짜리 큰 아들이 아파트에서 놀다가 후진하는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둔 후 정신병자처럼 방황했던 사연을 들으면서, 형의 사고 장면을 눈앞에서 모두 지켜보았던 작은 아이의 깊어진 눈빛을 보면서 어떤 위로의 단어도 이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20대초반의 외아들을 갑자기 잃고 망연해 있던 한 아버지를 알고 있다. 어떻게 세상에 왔던 간에 살아있는 것들은 다 사랑 받을 만하다는 그분의 말에 필자는 목이 메였다. 생명의 귀함에 대하여 갖게 된 그의 깨달음이 너무도 아프고 진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일년에 몇 번 정기적으로 가는 공원묘지가 있다. 그곳에 가면 묘지 근처를 둘러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다. 거의 4년 동안 보아온 특이한 현상은 보통의 묘에는 꽃병이 하나인 것에 비해 이십대 초반의 망자가 묻힌 비석에는 세 개의 꽃병이 나란히 준비되어 있다. 부모의 요청에 의하여 그렇게 한 것인지 묘지의 룰인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새로 생긴 20대 초반의 또 다른 망자 비석에도 역시 세 개의 꽃병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심정을 헤아려 보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날은 괜히 하늘을 쳐다본다. 세상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맑기도 하다.

모든 죽음은 슬프다. 아흔 셋에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 장례식을 다녀온 이웃 분에게 “호상이네요” 했다가 무안을 당한 일이 있다. “아무리 오래 사셨어도 부모님의 떠남은 늘 아쉬운 거랍니다.” 라는 그 이웃의 답에 사랑은 늘 아쉬운 것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하물며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이랴.

방학을 맞아 집에 온 필자의 딸과 목숨을 포기한 성공한 기업가의 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공원을 걸었다.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지나가는 엄마의 얼굴이 참 행복해 보였다. 딸은 그 아기가 너무 귀엽다고 난리다. 다가가서는 아기냄새가 솔솔 나는 볼을 만져본다. 아기엄마에게 너무 귀여운 아기라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얘, 네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이유를 아니?” 하고 물었다. 응…응… 생각하는 듯 하더니 엄마 아빠의 딸, 하나님의 자녀, 동생의 누나..어쩌고 저쩌고 한참을 줏어 섬긴다. “그럼 다 맞지” “그런데 또 있다” “이 땅에 생명을 탄생시킬 고귀한 몸이야” 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더 좋은 답이 있겠지만 딸이 너무 귀엽다고 아우성인 아기를 보며 그런 말이 생각 났나 보다. 말해놓고 보니 한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사실이 너무 귀한 일 같다. 그리고 그 귀한 생명을 온 정성으로 키우는 부모님을 생각해 본다.



신문 발행일:2006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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