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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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학교 다녀왔습니다

2006.04.24 04:06

오연희 조회 수:875 추천:194

‘아버지학교’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강의 장소가 가까워 좋은 기회인 것 같아 남편에게 적극 권했다.  아버지 학교 강사라면 몰라도 학생이라면 별 흥미 없다는 말투다. 좋은 아빠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늘 새로운 깨달음이 있는 법인데 안타까웠다. 남편의 의사만 존중해 주다 보면 도무지 일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무조건 등록을 했다. 언제 어디로 꼭 가라고 일러 주었더니 반응이 영 신통치가 않다.  강요하는 듯이 들리면 역효과라도 날까 싶어 첫날만 가보고 싫으면 관두라고 한 발 물러섰다. 등 떠밀려 가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녀온 얼굴을 살펴보니 싫지 않은 모양이다. 아는 분들도 많고 강의 내용이 꽤 재미 있었다고 한다. 비즈니스 때문에 출장을 가야 되는 관계로 꼬빡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불참을 아쉬워 하는걸 보면 뭔가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바쁜 중에도 숙제 한다며 끙끙대는 모습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났다.  마지막 날에는 아내들을 초청했다. 다 큰 어른들이 “나는 아버지 입니다” 합창하는 모습에 코가 시큰했다. 아내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은 참으로 가슴 뭉클한 광경이었다. 부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분들의 간증이 줄줄이 쏟아졌다. 이땅에 아름다운 부부, 화목한 가정만 존재할 것 같았다.  

‘아내가 사랑스러운 이유 20가지’ 를 적어 오라는 숙제로 주최측에서 책받침을  만들어 주었다.  20가지를 생각해 내느라 흰머리가 더 늘었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도 하고, 짐작도 못했던 내용들을 읽으며 행복감에 젖었다.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부엌 한쪽 구석에다가 붙여 놓았다. 딸과 아들이 오며 가며 읽는다. 눈을 박고 자세히 읽는다.  슬쩍 훔쳐보니 얼굴 옆 모습 사이로 웃음꽃이 번진다.  

‘아버지학교’에 이어 ‘어머니학교’가 있었다. 어머니 학교 수료자들로 구성된 자원 봉사자들이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비슷한 연배의 분들로 조를 편성해 놓았는데 조를 이끌어가는 조장 역시 어머니 학교를 수료한 봉사자였다.  봉사자 참여를 위해 자비를 들여 멀리서 오신 분도 몇 분 계셨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 하나로 어려운 시간을 내어 오는 분들이 많았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얼른 저녁 챙겨주고 달려왔다는 어느 엄마의 말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강의에 참석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엄마 어디가?” 어린 아들이 묻더란다.  “어머니 학교에…” “그긴 왜가?” “좋은 엄마 되려고…” “우리랑 같이 있어 주는 것이 더 좋은 엄만데…” 라는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고 한다.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인지 아이의 말에도 마음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  반면, 자녀를 위해 전업주부의 길을 택한 분의 애로도 그에 못지 않은 듯 했다.  자녀로 인해 힘든 고비를 넘어온 어머니의 감사와 겸허함이 묻어났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어머니들은 지극히 사적인 것은 털어놓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하자 숨겨진 아픔들을 하나 둘 내 놓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작은 부인 자식으로서 성장해온 딸들의 아픔도 있었고, 부부사이의 불협화음으로 인한 상처들도 담담하게 때로는 목이 메이는 듯 쏟아 놓았다.  치유 받지 못하고 살아온 어머니들의 이런저런 아픔이 참석한 모든 어머니들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쓰다듬어 가며 살아오지 못했던 우리 어머니들이 지난 시간으로의 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프랑스의 천재시인 랭보는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한탄했다. 정말 이땅에 상처 없는 영혼은 드문 것 같다.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화해와 용서를 일구어 내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약함에 비하여 아버지, 어머니라는 책임감의 무게가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학교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는 곳은 아니겠지만, 늘 배우는 자세로 매사를 진지하게 대하면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부모도 성숙해 갈수 있으리라 믿어졌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6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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