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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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돈을 주웠어요

2006.09.11 04:17

오연희 조회 수:1021 추천:189

아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 타이식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몇 번 간적이 있는 레스토랑인데 늘 그렇듯이 그날도 파킹이 만만치 않아 근처를 빙빙 돌다가 간신히 세워놓고 들어갔다.

나와 딸이 먼저 도착해서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잡고 연 이어 남편과 아들이 들어 왔다.

메뉴판이 나와서 오더를 하고 무심코 눈을 드는데 아들이 앉은 쪽 식탁 위에 20불 짜리 지폐가 한 장 보였다.

"어…돈이네…니꺼니?" 하고 물었더니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이상하네…어쩌지…" 하는데 "엄마 이거 우리 가져요." 딸이 야무지게 한마디 던졌다. 의아한 듯 쳐다보았더니 며칠 전 딸이 다니는 학교 근처 식당에서 꼭 같은 경험을 했다면서 사연을 털어 놓았다. 식탁 밑에 떨어진 돈을 주웠다.

남의 것은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종업원을 불렀다.

그런데 너무 좋아하면서 "댕큐!" 하고는 자기 주머니에 쓱싹 집어넣고 끝이었다는 얘기다.

'정직은 바보' 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상황이 눈앞에 훤하게 그려졌다. 딸이 느꼈을 기분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찜찜했다.

똑 같은 상황이 벌어질게 뻔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큰 돈이라면 겁이 나서라도 조치를 취하겠지만 20불가지고 요란 떠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이런저런 의견이 오고 갔다. 식사값에 보태기로 결론이 내려졌다. 팁을 듬뿍 놓기로 했다. 결국 딸의 사연이 반영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왠지 기분이 유쾌하지가 않았다. 다음날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 일로 난 기분이 좋지않다고 고백 했다.

다음에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건지 좀더 생각해 보자고 의견을 냈다. 애들 앞에서만 아니었다면 20불 가지고 이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 말해 놓고도 속이 켕겼다.

어쨌든 이런 일을 계기로 정직과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좀 더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돈을 주웠어요" 라는 제목으로 내가 관여하고 있는 몇 개의 사이트에 사연을 띄웠다. 내용 말미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남겼다.

참으로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왔다. '잃어버린 자를 찾지 못했을 때에 제사장이나 교회에 바치는 것은 성경적인 배경을 가집니다.' 라는 글을 남기신 어느 교회 목사님도 있었고 열심인 신앙생활과는 달리 정직하지 못한 이유로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비자 면제국'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정직을 강조하신 분도 있었다.

또한 검표원이 펀칭하지 않아 다음에 사용 가능한 기차표지만 반드시 찢어버리는 어느 미국인을 보고 미국의 힘을 보았다는 분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대체로 우회적인 표현들이었다.

미국 초등학교 교사라는 한 분은 필자의 질문에 가장 직설적인 답을 남겼다.

당연히 돌려줘야 하지만 주운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전혀 돌려 줄 길도 없을 때엔 '주운 사람이 임자' 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이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돈을 돌려 주면 되려 복잡해 지는 경우도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주운사람이 임자' 라는 답이 나의 상황에 비추어 가장 솔직한 답이고 그리고 가장 듣고 싶은 답일지라도 '정직' 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어쩐지 주춤하게 된다.

정직한 것이 얼마나 마음 편하고 기분 좋은 일이지 우린 종종 경험한다. 은행 ATM 머신 스크린에 뜬 "Would you like another transaction?" 이라는 구절과 함께 은행카드가 그대로 꽂혀 있을 때 현금만 인출하고 카드가 나오기도 전에 휙 떠나버린 이전 사용자의 성급한 뒷모습을 떠올린다.

우리자신과 너무도 닮은 그를 생각하며 카드를 빼 입금봉투에 넣어 은행에 넣어주고 온다.

너무 당연한 일을 했음에도 얼마나 가뿐한지 모른다. 정직했던 순간을 이야기 할 때의 얼굴만큼 환하고 빛나는 표정이 어디 있으랴

정직해도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려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앞서야 할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정직 이것저것 자로 재지 않아도 되는 '정직한 바보'가 가득한 세상 생각만 해도 참 편하다.

그런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못한 책임 앞에 나를 비롯해 우리 부모들 대부분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할 것 같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6. 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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