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4
어제:
6
전체:
1,291,795

이달의 작가

'딸이 좋다구요?'

2006.11.27 07:47

오연희 조회 수:898 추천:184

요즘 엄마들끼리 모이면 입을 모으는 이야기 소재 중에 하나가 '딸이 좋다' 이다.

살가운 딸이 무덤덤한 아들보다 좋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아들만 있는 집 엄마는 안됐다' 까지 딸의 주가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세월 같다.

필자 역시 '딸이 좋다'에 편승하는 편이다. 남자는 원래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며 기대를 접었는데도 무심한 아들이 섭섭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그냥 요…" 용건 없이 전화 한적이 없는 아들이 '그냥' 전화를 했다고 한다. '별일이네…'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너…뭔 일 있냐?" 하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지금 튜터하려고 학생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요… 바로 앞차가 엄마차와 같아서요…" 라는 어이없는 답변에 정신이 멍멍 했다.

같은 차종의 차가 수도 없이 달리고 있었는데 그 순간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묘한 감격과 함께 아들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바로 며칠 전 아들의 절친한 친구 엄마가 돌아가셨다.

친구 몇 명이 학교수업을 끝낸 늦은 오후 7시간의 밤길을 달려 다음날 있을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날 친구들과 함께 친구 엄마가 잠든 관을 들었다고 한다.

그곳을 다녀온 날부터 아들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은연중에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곁에 머무를 줄 알았던 존재가 한 순간 영원한 나라로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들의 마음을 흔든 모양이다.

돌아가신 친구엄마의 나이가 엄마 나이라는둥.. 암검사는 정기적으로 하고 계시냐는둥…운동을 꼭 하라는둥…아들에 대한 짝사랑만 키워왔던 엄마였던지라 코가 시큰거렸다. 아들걱정 듣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하고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요즘 프로풋볼 선수인 하인즈 워드를 선두로 혼혈 자녀들의 성공스토리가 심심찮게 기사화 되고 있다. 혼혈자녀를 낳은 후 이국 땅에서 겪어내야 했던 그 어머니들의 굴곡의 삶이 회자되곤 한다. 며칠 전 성공한 혼혈 모델인 '우르슐라 메이스'에 대한 기사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어머니' 며 "어머니 때문에 삐뚤어지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필자는 한참동안 가슴이 벅차 올랐다. '어머니' 라는 이름이 너무 빛나고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 때문에 삐뚤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흘려 듣지 않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정말 그 어머니들 자녀들이 훈계를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한 때는 없었을까. 혹 그런 적이 있었다 할지라도 때가 되어 그 자녀의 입을 통해 듣는 "어머니 때문에 삐뚤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감격이다.

어머니들의 이런저런 자녀 성공담을 들으면 아니 성공한 자녀들이 어머니께 감사하는 '감동의 구절' 들을 대하면 부쩍 부담이 생긴다.

감정이 앞서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말하고 행동했던 순간이 떠올라 가슴이 뜨끔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다정한 전화 한 통에 힘입어 주말이라 집에 온 아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은근히 물었다. "엄마가 좀 교양 없이 굴었지?" "교양이 뭐에요?" "으응…교양이 없다는 말은…쉽게 말하면 …무식하게 굴었다는…영어로 날리지가 없다는…" 아들이 빙긋이 웃더니….엄마를 위로하는 한마디 툭 뱉는다.

보통 자녀가 스물이 되면 그 어머니의 나이가 이르면 40대 늦으면 50대 드물게는 60대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아들친구 엄마처럼 일찍 세상을 뜨는 분도 있지만 사실 아직은 젊고 건강한 나이이다. 세월이 더 지나 부모의 나이가 70 80 아니 90이 되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녀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에도 우리 자녀들의 부모사랑은 변함이 없을까.

외국에 있다는 핑계로 또는 나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연로한 우리의 부모들에게 자식도리를 제대로 하고 살았는지 돌아본다.

부모를 공경하는 삶의 본을 보이지 못했으면서 자식에게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혹시 없었는지 모르겠다.

염치없는 기대만 버리면 아들이든 딸이든 부모에게 기쁨이 되어 돌아오는 일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6. 11. 2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이곳의 글들은...♣ 오연희 2015.07.24 204
168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오연희 2007.07.09 1019
167 보통아이들 오연희 2007.06.26 886
166 따뜻한 가정 오연희 2007.05.21 912
165 돈을 주웠어요 오연희 2006.09.11 1021
164 고맙다 오연희 2007.03.19 1071
163 아침 편지 오연희 2007.04.30 978
162 '여전히 사랑합니다' 오연희 2007.02.12 933
161 책과 함께하는 인연 오연희 2007.01.08 1020
» '딸이 좋다구요?' 오연희 2006.11.27 898
159 '자녀친구, 부모친구'-그 후의 이야기 오연희 2006.10.27 914
158 로또와 크레딧 오연희 2006.10.02 1001
157 자식농사 그 이론과 실제 오연희 2006.08.21 923
156 한국인 오연희 2006.05.22 1038
155 학교 다녀왔습니다 오연희 2006.04.24 875
154 또 하나의 출발점에 서다 오연희 2006.04.03 940
153 담배피는 여자에 대한 편견 오연희 2006.06.20 1252
152 존 이야기 오연희 2006.07.10 879
151 어떤 죽음 오연희 2006.03.13 980
150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면... 오연희 2006.02.13 1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