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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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따뜻한 가정

2007.05.21 03:02

오연희 조회 수:912 추천:182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범인 조승희군이 나의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라 가슴이 더 철컹거렸다. 자기 갈 길을 스스로 찾아 갈 수 있는, 조금은 안심해도 되는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차’ 싶었다. 조승희가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는 점이 정신적인 문제행동 중의 하나로 부각되면서, 동서양의 문화차이에 대한 진지한 의견들이 나오고있다. 내 아이들의 행동을 떠올려 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오래 전 ‘어디 엄마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라고 말해놓고 나중에는 ‘왜 엄마가 말하는데 딴 데를 보냐고’ 상반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문화혼란을 겪는 이민가정의 롤모델이 바로 우리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불편해 한적이 있었다면 그 것은 엄마 잘못이다.”는 말과 함께 이메일을 보냈다. 주말이라 집에 온 아들이 엄마 눈을 반듯하게 쳐다본다. 늘 보던 그 눈빛인데 좀 오버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문화차이에 대해 서로의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덕분에 아들과는 조금 더 친해진 느낌이다.

가정의 달이다. 며칠 전 ‘한국 어머니날’에는 한국계시는 양가 어머님께 인사를 드렸고, ‘미국 어머니날’에는 나의 애들에게 인사를 받았다.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제날짜 맞추느라 바짝 신경을 썼다. 애들 역시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저 딴에는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사실 가정이란 늘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있었는데 특별히 가정의 달이라고 다를 것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린 특별한 날을 통하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가정, 늦은 결혼이나 또는 독신생활, 결혼을 했더라도 자녀를 낳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는 요즈음에는 ‘가정’ 의 의미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기러기가족으로 살아가는 가정 또한 오래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또 하나의 가정 형태이다.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를 벗어났다고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잠시일수도 있고 지속적일수도 있지만 마음이 닿아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가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가정이지만 그 속에 마음이 닿아있는 그 누구도 없다면 ‘가정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도 내 연약함을 드러내도 안전하게 느껴지는 곳이 진정한 가정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하여 오래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다. 부부도 자녀도 나와는 다른 인격체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행복한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으로 나눠지는 것 같다. 아무 일도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면 상처 받기가 더 쉽다.

상처란 많은 경우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때 생긴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녀 역시 그렇다. 거친 말투, 화난 음성, 그리고 지나친 충고의 말은 심정적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대개는 잘 극복하여 더 끈끈한 가족애로 뭉쳐지지만 자칫 회복할 기회를 놓치면 남보다 못한 인연이 되기도 한다.

늘 따뜻한 이야기만 주고 받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가정이란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를 함께 풀어가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존재하는 곳이 아닐까. 따뜻한 울타리 속에 내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울타리가 되어 가족을 돌보기도 하며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간다. 가족이라고 하여 물리적으로 늘 함께 있을 수는 없다.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도 잘 매니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쁜 이민생활에 쫓겨 자녀와 혹은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을지라도 5월이 다 가기전에 짬을 내서라도 하늘을 바라보자. 하늘은 언제나 그곳에 있지만 부모님이나 자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을 외롭게 하지 않는 것이 내가 외로워지지 않는 길이 아닐까.

ohyeonhee@hotmail.com

2007년 5월 21일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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