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7 19:10
산그늘, 저 등걸아! - 이만구(李滿九)
내가 이곳의 아스팔트 산길을 걸은 지 오래다. 순례의 길이라 불리는 이 길에는 떡시루 둘레의 시룻번처럼 도톰하게 놓인 햇볕에 그을린 중앙선 블록 위에 12피트마다 야광 식별핀이 박혀있다
산은 우거진 육산도 아니요, 그렇다고 돌산도 아닌 바윗돌 잘 생긴 산허리의 등선을 깎아 놓은 둘레길. 그 돌아가는 산책길의 산과 산사이, 겨울엔 장맛비로 봇물이 차고 넘치는 강물 흐른다
날이 저무는 골짜기 숲 속, 산그늘이 진 등걸. 그것은 죽어간 자의 유령처럼 희게 보이기도 하였고, 민들레 홀씨 날리던 오월의 이곳은 가끔은 흰 눈이 내리는 버몬트 산을 생각게 했다
우거진 나뭇잎이 단풍 들기 시작하는 11월, 말라서 비틀어져 부러진 나무 등걸들이 듬성하게 보인다. 밑동에서부터 살아보겠다 비집고 나온 몇 개의 잔가지들 있어, 그 질긴 삶의 기운이 애도하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무는 혼자 느끼는 사랑과 증오에서 고립되어, 천둥 치고 번개 맞고 우듬지 꺾어져도, 숨겨진 뿌리가 있어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저물녘, 희게 비치는 저 나무 등걸이 어렴풋이 그 누구의 넋 인양 다가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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