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이월란(09/12/27)
그는 저 광활한 사막 너머에 있고
전화는 내 손 안에 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낼 줄 아는
작은 손전화
내가 기억하는 건 연기처럼 흩날리는
영혼의 매캐함 뿐인데
주머니 속 전화는
꽃잎처럼 얇고 작은 뇌파 속에
그의 번호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발췌해 온 영혼은
연기처럼 떠돌던 그 영혼은
인간의 형상을 점점 닮아가고
번호를 누르는 나의 손가락은 자꾸만 짧아지고
나는 날이 갈수록 용건이 궁해진다
애초부터 없었던
영혼에게도, 육신에게도 차마 털어 놓을 수 없어
섬뜩하도록 간단한 그 용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