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서
이월란(09/12/28)
몇 십 년 간의 허기를 바수어
불립문자처럼 도열한 이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단단하지 못한 섬을 찾아 파도같은 이빨 자국을 남길 때면
끼니 사이로 새어드는 이방인의 과즙에 이가 시리기도 했었지
생목소리 절단하는 칼날처럼 날카로워지던 날들
되새김질하는 허드렛일로 거대한 생을 지탱해온
꿈속에서 이빨 하나 휑하니 빠져버리던 날
아버지의 부고를 듣던 그 눈오던 날밤
이국의 눈밭에 엎어져 한 입 가득 눈을 베어문 듯 시려와
나는 울다 울다 옆에 누운 따뜻한 체온에 이빨을 박곤
이빨 없는 아이를 배고 말았지
“생후 6개월이면 이빨이 나기 시작합니다”
샅샅이 폭로된 육신의 비밀대로 침에 절은 이가 좌르르 나던
아이는 단단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잉글리시포인터가 되어버렸고
아래 위로 생이빨을 네 개나 빼버리곤 교정을 마친 아이의
이빨이 바비인형처럼 웃고 있는데
천장에 붙은 오프라 윈프리는 토크쇼의 결론에 혼자 도달한 듯
Wait, Wait, Wait!
돌출한 그녀의 앞니가 숨넘어간 순간의 결론을 잘개 부수어
내 입속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슬픔의 벌레가 살이 오르는 충치같은 기억들은
뿌리째 뽑아버리자고 친절한 의사의 마스크가 말을 흘린다
“자, 아아 해보세요. 이번엔 좀 시릴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