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제비
이월란(09/12/29)
버터내 풍기는 억양으로, 오늘 수제비 먹고 싶은데
아부형의 주문이 떨어지면
나는 뜬금없이 슬픈 배우처럼 마음이 가난해져
ALL PURPOSE 라는 포장을 뜯고 하얀 기억가루를 날리기 시작하네
눈물같은 정화수를 붓고 쫀득쫀득 반죽을 하네
낯선 땅에 빌붙어 살면서도
그는 가난한 엄마의 수제비를 먹고 자랐을까
마이노리티의 환율이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마다 밀반죽을 뜬 것일까
거센 혀의 무표정한 억양으로 비굴해질 때마다 수제비를 뜬 것일까
유년의 말랑말랑한 기억들도 다문다문 다시 빚어
뜨거운 삶 속에서 한 번씩 익혀내야 하듯
그제서야 구름처럼 둥둥 떠오르는 중년의 허기로
맑은장국처럼 펄펄 끓는 삶 속에 담방담방 떨구는 밀반죽
내가 얻어먹고 자란 가난을 푹푹 끓이며 살던 엄마는
비틀린 그녀의 꿈조각처럼 형상 없이 빚은 반죽 사이로
둥둥 뜨던 콩나물도 묵은김치도 무우쪼가리도 푹퍼진 감자도
모두 그녀가 견뎌내기 위해 가슴 밑바닥까지 긁어낸 고뇌였었네
꿀꿀 아기돼지처럼 나는 토실토실 미래의 살이 오르고
오른손 가득 엄마의 수제비가 달라붙을 때마다
찬물에 한 번씩 담그는 시린 가슴
고향이 가난해진 남편이 수제비 타령을 할 때마다
가난한 아내가 되어 한 끼 끼니를 쫀득쫀득 빚고 있네
쌀통 아껴 밀쳐두고 ALL PURPOSE의 밀가루를 꺼내어
가난해진 마음의 목적 하나 세워두고
슬픈 마음을 뜨네 기억을 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