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살아 있는
이월란(09/12/30)
나의 머리는 한 번도 생각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죠
나의 가슴은 한 번도 사랑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죠
잃어버린 가슴을 관통하는 시의 행간들을 먹고 살았어요
눈부신 빨래 뒤에는 때에 절은 일상이
강의실 뒤에는 아이 울음소리에 성급히 넘겨버린 책장이
나의 시들을 다시 읽어주고 있네요
당신의 바람은 천국의 아이를 배고 있다네요
사랑은 사랑할 때까지만 사랑이에요
그리곤 새들이 물어가 버리죠
꽃들이 앗아가 버리죠
당신의 아이들을 태우고 바닷가로 갔어요
파도마저도 나를 버리더군요
크리스마스 트리 위에 아이가 만든 천사를 세워 두고
잠든 아이들을 위해 세상의 마지막 아침을 구워요
아이들의 잠이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테잎으로 문틈을 봉하구요
백치의 질식을 꿈꾸어요 사랑에 미친 냉혈한을 꿈꾸어요
한 번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던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비극은 살아있다는 것
광기의 벼랑으로 떨어지는 생명을 받아 먹고
끝끝내 나를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그 세상이
이제야 내 속으로 갇히고 있네요
* 실비아 : 크리스틴 제프 감독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