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얽힌 옛이야기 한 토막

2004.01.17 07:16

오정방 조회 수:895 추천:174

폭설에 얽힌 옛이야기 한 토막

오정방


1969년의 일이니까 벌써 33년 전의 일입니다. 많은 분들의 기억에도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을 얘깁니다.
그 해 2월 초에 영동지역에 큰 눈이 내렸고 특별히 설악산에는 엄청난
양의 눈이 쏟아졌습니다.
한국산악회(회장 이은상/1945 창립)와 조선일보사(사장 방우영)가 공동
으로 설악산에 파견한 제1회 해외원정 등반훈련대가 눈사태로 조난 당하여
이희성 대장(현역 육군중령/당시 43세)등 10명의 산악인들이 뜻을 이루지
못한채 눈속에서 잠들어야 했던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때가
바로 2월 14일이었는데 계속되는 강설로 시신을 발굴하지 못하다가 보름이
지나서야 3월 1일과 3일에 10구의 시신을 눈더미에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3월 5일 현지에서 장례를 지내고 설악동 입구 노루목 언덕에 10동지의
무덤을 만들어 눞이고 나중에 위령탑을 세워 지금도 그들은 설악의 고혼이
되어 눈날리는 설악을 맴돌고 있을것입니다.
나는 그 때 한국산악회 회원으로 사무국장의 직무를 맡고 있었는데 저들을
오랜 기간동안의 준비과정을 통해 지켜 본 뒤 설악산에 출발시켜 두고
주흘산에 주말 등산을 다녀왔는데 오는 길에 거기도 많은 양의 눈이 내려서
소나무 가지들이 쭉쭉 찢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귀경하여 TV를 보고서야 사고
소식을 듣고 회관으로 나가 사고 수습에 임했습니다.
모두 21명의 본부요원과 훈련대원들을 보냈는데 천불동계곡에 설치한 3개의
텐트를 덮친 것입니다. 군,관,민 합동 수색대의 수고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고 사무실에서는 수시로 보고되는 구조소식에 잠못드는 수많은 밤을
산악동지들이 지켰습니다.
저들이 떠나기 전에 산악회가 있던 종로 2가 뒷골목 낙원동의 조양여관에서
한 열흘간 장비및 식량들을 구입 포장하느라고 애를 썼는데 간간히 무료할 때
기타를 치면서 부른 노래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클레멘 타인 곡에 붙여서..

< 엄마엄마 나죽거든 설악산에 묻어주
앞산에다 묻지말고 설악산에 묻어주
비가오면 덮어주고 눈이오면 쓸어주
친구들이 찾아오면 산에갔다 전해주>

정말 노래대로 저들은 얼마 뒤에 설악산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조난 사망한 10동지는 이희성 대장을 포함하여 부대장 남궁기, 김동기씨
대원으로 임경식, 박은명, 변명수, 박명수, 오준보, 이만수, 김종철(무순)씨
였는데 간 밤에 이곳에 눈이 많이 내리니 갑자기 그 대가 생각 났습니다.

쓸어 안으니 차가운 몸들 / 내 체온을 가르고 싶다
숨 소리가 왜 없나 / 내 호홉을 불어 넣었으면
그대들 흔들어보다 못해 / 눈 쌓인 산을 바라본다

아까운 그대들이라 / 거칠은 세상에 오래 안 두고
깨끗한 그대들이라 / 흙먼지 속에 참아 못 묻어
하늘이 설악 명산을 골라 / 흰 눈 속에 감추시던가

이 한밤 그대들 그려 / 산 아래 홀로 섰으니
천봉 만학이 / 달도 희고 눈도 흰데
어디서 귀익은 목소리 / 들리는 것만 같다

못 다 푼 그 의욕 / 다 못 태운 그 정열
젊은 동지들 / 야호 소리 들리거든
그 속에 같이 석여서 / 마저 풀고 태우게

눈 속에 꿈을 묻은 채 / 깨지 못한 원혼이라
산에 들에 눈이 내리면 / 그 모습 떠올라 어이할꼬
이 산에 눈이 쌓일제 / 비 들고 눈 쓸러 찾아오마

우리는 그대들 잃고 / 통곡으로 목이 메어도
그대들은 이 산에서 / 산꽃처럼 산새처럼
즐거이 웃으며 노래하며 / 어깨 걸고 노니리라

어제는 우리 동지 / 오늘은 설악의 천사
수 많은 산악인들 /이산 두루 밟을 적에
발 앞을 이끌어 주는 /수호신이 되소서

1969. 3. 5
노산 이은상

이 시조는 장례식에서 읊은 조시 <설악산 조난 10동지 영전에> 인데
눈이 오면 비 들고 눈 쓸러 찾아 가신다던 노산 선생님도 '82년도에
작고하셨으니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누가 그 10동지의
무덤 위에 덮인 흰눈을 쓸어주고 있을까?


눈 내리는
포틀랜드에서
200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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