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산토끼' 작곡자와의 인연
2004.01.17 07:18
동요 '산토끼' 작곡자와의 인연
-이일래 선생님을 생각하며
오정방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는냐
깡충 깡충 뛰면서
어디로 가느냐
산 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 토실 밤토실
주워서 올테야"
한국 사람으로 한국말을 하는 사람치고 이 동요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요거나 가곡을 부르면서 작사자나 작곡자가 누구인지
미리 확인하고 나서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자연히 기억되면 모르되 작사, 작곡자를 미리 알아보는 경우는 아닌데 위의
"산토끼'는 이일래 선생님이 작곡하셨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머리 속에
남아 있어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아이들이 부르는 것을 들을 때엔 바로
작곡자 이일래 선생님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동요를 누가 작사하였
을까 궁금하여 아동문학가인 함동진 시인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았더니
'산토끼'의 작사도 이일래 선생님이 하셨다는 회신을 보내주셨다.
이일래 선생님은 내가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처남뻘이 되시는 분이다.
내가 결혼 전 처음 만났던 '60년대 중반에 이미 60을 바라보셨으니 우선
나이차이가 많았고 결혼 후에 자주 만나뵈었지만 호칭은 선생님이라 부른
기억이 나는데 선생님은 당신보다 나이가 적은 나의 장인어른에게 꼬박
꼬박 존대하였고 촌수 때문에 나의 장인께서는 조카인 이일래 선생님에게
반드시 하대하였다.
그 당시에 선생님이 '산토끼'의 작곡자인줄 알았던면 좀 더 자세히 이 노래를
만든 배경이나 동기등을 물어보았을 것을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고 본인도
말씀을 안해 주셨으니 알 도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 궁금한 것은 작품이 '산토끼' 하나 뿐인지 다른 작품이 더 있는지도
퍽 궁금하지만 이미 선생님은 작고하신지도 오래되었고 나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더 알아볼 방법도 없다.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은 별로 말씀을 많이 하지 않은 것이 기억난다. 당신의
형님은 극작가 이광래 선생님인데 나는 자주 만나지 못한 반면
이일래 선생님은 여러번 때마다 만나뵈었다. 막내 아드님이 그 뒤 기아(주)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아마 그도 지금은 50줄에 들어 섰을 것이다.
오늘 갑자기 '산토끼'가 흥얼거려져 작사, 작곡자인 이일래 선생님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어른이 생각날 것이다.
<2002. 4. 18>
*동요작가였던 이일래는 1938년 자신의 동요곡을 엮은
<조선동요작곡집>을 출판하였는데 이화여전 학장이었던
아펜셀러 박사의 영역가사까지 붙여 외국에도 우리
동요음악을 소개하였다. 이 곡집에는 "산토끼"를 비롯한
21곡이 실렸다.
"산토끼"는 이일래가 창녕의 이방초등학교에 교사로
재직중 어린이들에게 민족적 얼을 고취시키기 위해
작사/작곡했는데 항일사상과 동심이 잘 내포된 동요곡으로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너리 알려지게 되었다.
출판 당시 이일래는 마산에 있었던 호주선교원의
어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ㅡ 이상 주석은 아동문학가 함동진 님이 제공한 것임
-이일래 선생님을 생각하며
오정방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는냐
깡충 깡충 뛰면서
어디로 가느냐
산 고개 고개를
나 혼자 넘어서
토실 토실 밤토실
주워서 올테야"
한국 사람으로 한국말을 하는 사람치고 이 동요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요거나 가곡을 부르면서 작사자나 작곡자가 누구인지
미리 확인하고 나서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자연히 기억되면 모르되 작사, 작곡자를 미리 알아보는 경우는 아닌데 위의
"산토끼'는 이일래 선생님이 작곡하셨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머리 속에
남아 있어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아이들이 부르는 것을 들을 때엔 바로
작곡자 이일래 선생님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동요를 누가 작사하였
을까 궁금하여 아동문학가인 함동진 시인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았더니
'산토끼'의 작사도 이일래 선생님이 하셨다는 회신을 보내주셨다.
이일래 선생님은 내가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처남뻘이 되시는 분이다.
내가 결혼 전 처음 만났던 '60년대 중반에 이미 60을 바라보셨으니 우선
나이차이가 많았고 결혼 후에 자주 만나뵈었지만 호칭은 선생님이라 부른
기억이 나는데 선생님은 당신보다 나이가 적은 나의 장인어른에게 꼬박
꼬박 존대하였고 촌수 때문에 나의 장인께서는 조카인 이일래 선생님에게
반드시 하대하였다.
그 당시에 선생님이 '산토끼'의 작곡자인줄 알았던면 좀 더 자세히 이 노래를
만든 배경이나 동기등을 물어보았을 것을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고 본인도
말씀을 안해 주셨으니 알 도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 궁금한 것은 작품이 '산토끼' 하나 뿐인지 다른 작품이 더 있는지도
퍽 궁금하지만 이미 선생님은 작고하신지도 오래되었고 나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더 알아볼 방법도 없다.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은 별로 말씀을 많이 하지 않은 것이 기억난다. 당신의
형님은 극작가 이광래 선생님인데 나는 자주 만나지 못한 반면
이일래 선생님은 여러번 때마다 만나뵈었다. 막내 아드님이 그 뒤 기아(주)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아마 그도 지금은 50줄에 들어 섰을 것이다.
오늘 갑자기 '산토끼'가 흥얼거려져 작사, 작곡자인 이일래 선생님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어른이 생각날 것이다.
<2002. 4. 18>
*동요작가였던 이일래는 1938년 자신의 동요곡을 엮은
<조선동요작곡집>을 출판하였는데 이화여전 학장이었던
아펜셀러 박사의 영역가사까지 붙여 외국에도 우리
동요음악을 소개하였다. 이 곡집에는 "산토끼"를 비롯한
21곡이 실렸다.
"산토끼"는 이일래가 창녕의 이방초등학교에 교사로
재직중 어린이들에게 민족적 얼을 고취시키기 위해
작사/작곡했는데 항일사상과 동심이 잘 내포된 동요곡으로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너리 알려지게 되었다.
출판 당시 이일래는 마산에 있었던 호주선교원의
어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ㅡ 이상 주석은 아동문학가 함동진 님이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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