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懶翁,1320~1376) : 여수여풍(如水如風 물 같이 바람 같이)

 

나옹은 신륵사와 인연이 깊어 그 유적들이 현재에도 남아 있거니와 그의 남한강 시는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사이의 경계를 어찌 벗어나야 하는지 새로운 경지를 열어 보인다. 과연 우리는 물 같이 바람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목은 이색(1328~1396) : 여강미회(驪江迷懷 여강에서 어지러운 회포를 풀다)

 

여주의 남한강을 여강이라 하는데 유학자 이색은 나옹 선사가 신륵사에서 입적한 뒤 그 비문을 쓰기도 하였다. 여말선초의 비운의 시대에 여주 신륵사의 남한강은 강호문학의 귀향처가 되고 있었던 듯.

 

 

天地無涯生有涯 천지는 무한하고 인생은 유한하거늘

浩然歸至欲何之 호연지기의 뜻 품어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驪江一曲山如畵 여강 물굽이의 산줄기 한 폭의 그림 같아

半似丹靑半似詩 반쯤은 단청의 벽화인 듯 반쯤은 시인 듯

 

 

이규보(1168~1241) : 사평강에서 배를 띄우고(莎平江泛舟)

 

이규보는 고려 왕경 개경에서 살았지만 본디 여주가 고향이어서 남한강 유람 시편들을 남겼다. 사평강은 오늘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 쪽의 한강을 일컫던 고려시대의 명칭이었다. 개성에서 임진강을 건너 김포 쪽의 육로로 신사동 쪽에 닿으면 남한강 수운의 출발지로서 포구가 형성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의 시는 서울 신사동의 포구에서 배를 띄워 여주가 멀리 바라보이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남한강일대의 풍광을 읊은 유람시이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 고전번역서-동국이상국집/ 다만 한글 번역은 필자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른 것임)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K

 

 

江遠天低襯 강 멀리에 하늘이 나직이 붙었는데

舟行岸趁移 배가 가니 언덕이 따라서 움직인다

薄雲橫似素 엷은 구름은 흰 비단처럼 비껴들고

疎雨散如絲 성긴 비는 실처럼 흩어져 내린다

灘險水流疾 여울이 험하니 물도 빠르게 흐른다

峰多山盡遲 봉우리가 하도 많으니 산이 끝나기 더디다

沈吟費回首 흥얼거리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正是望鄕是 어느새 내 고향 바라보게 된다

 

 

이규보 : 견탄(犬灘)

 

견탄은 문경시 호계면 견탄리에 놓인 낙동강 상류 발원지 중의 하나이다. 이규보는 남쪽 지방을 여행하고 나서 상주 쪽의 낙동강에서 배를 띄워 최상류가 되는 견탄으로 선상유람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 그는 육로를 택하여 진남호반과 고모산성을 거쳐 문경읍 관음리의 하늘재를 넘고 송계계곡을 지나 다시 월악나루에서 배를 타고 남한강과 임진강 수로로 하여 왕경 개경으로 귀환하게 될 것이다.

 

 

淸曉發龍浦 첫새벽에 용포에서 배를 띄워

黃昏泊犬灘 황혼이 되어서야 견탄에 정박하였네

點雲欺落日 간교한 구름 지는 해를 놀려 대고

狼石操狂灡 험상궂은 바위는 거세게 물살을 가로막는다

水國秋先泠 수국(水國)에 가을이 먼저 서늘하고

船亭夜更寒 배 안의 밤공기가 더욱 차다

江山眞勝畵 강산이 참으로 그림보다 나으니

莫作畵圖看 혹시라도 그림으로 착각하지 마소

 

 

이황 : 동호 독서당 옆 정원의 정자를 우연히 거닐다가 소강절의 문체를 본 따서 시를 짓다(湖上園亭偶出效康節體)

 

동호(東湖)의 독서당에서 이황은 두 차례 사가독서를 하였는데 용봉산 자락에 있었다는 이 독서당의 정확한 위치조차 오늘에는 가늠하지 못한다. 붉은 치마 입은 기생들이 따라주는 술은 그 치마폭에 놀아나는 것일지언정 제대로 된 풍류가 아니라고 이 시는 읊는다.

독서당의 선비들 중에서는 정자에 기생 불러 술판을 벌인 이들도 더러 있었던 것이었을까. 강마을 집들과 그 너머로 보이는 저자도(닦섬) 모래톱의 갈매기들은 아무 것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다. 시인 또한 어디에도 매어 있지 아니하다. 스스로 한가롭고 스스로 즐기고 있다. 독서당의 문인이던 때에도 이황의 음풍명월 자세에는 흐트러짐이 조금도 없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한국문집총간-퇴계집/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M

다만 ‘퇴계집’은 한문 원문만 저장되어 있을 뿐 번역은 되어 있지 않다)

 

 

何限名園漢水頭 어찌 아름다운 경치가 한강수 강가에 한정이 있을까마는

閒來無處不堪遊 한가한 몸이라 찾아드는 곳마다 노닐기에 그만이네.

白魚切玉家家興 흰 물고기 가늘게 저미느라 강마을 집집마다 흥겹고

黃菊排金院院秋 누런 국화 금빛을 뱉어내니 집 마당들마다 가을이 깊네.

酌酒喜臨高榭豁 술 마시고 높은 정자에 기꺼이 올라서매 마음은 활달한데

題詩愛向曲闌幽 굽은 난간을 사랑한 옛 시인 따라 시를 읊으니 더욱 그윽하네.

更知易厭紅裙醉 붉은 치마 기생 따라주는 술은 금방 싫증이 나는 것이거늘

要學沙鷗浩蕩吟 모래톱 갈매기 흥겹게 노는 모습이나 본떠야 하겠네.

 

 

정철(鄭澈,1536~1593) : 광나루에 늦게 당도하여

 

1567년 7월에 즉위한 16세의 선조는 산림의 영수 소리를 듣는 이황에게 서정쇄신의 총지휘를 맡기고자 하였으나 8월 초순에 이황은 이를 뿌리치고 남한강 뱃길 따라 낙향을 하고야 만다. 송강 정철은 존경하는 퇴계를 전송하고자 광나루로 달려왔으나 이미 배는 떠났으니 그립고 서운한 감회를 읊었다.

 

 

追到廣陵上 부랴사랴 광나루로 달려왔건만

仙舟已杳冥 선생님의 배는 이미 눈에서 아득해

秋風滿江思 가을바람 스산한 강가에서 님이 하 그리워

斜日獨登亭 저물녘에 나 홀로 정자에 올랐네

 

 

기대승과 이황의 동호 전별시 화답시

 

1569년 음력 3월 4일 70세의 이황은 창덕궁에서 임금에게 하직을 고하고 고향 가는 배를 타려고 동호로 나오는데 조정 신료들이 대거 전송을 하였다. 우의정 홍섬의 전별시와 이황의 화답시가 전한다. 그는 사가독서의 동문이기도 했던 정유길의 별장 ‘몽뢰점’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고 떠나려 하는데 기대승, 박순 등이 하도 만류하여 배를 타고 닦섬(저자도)으로 들어가 전별연을 갖는다. 기대승 등과 함께 봉은사에서 다시 하룻밤 유숙을 하고 다음날 드디어 표표히 나라에서 내주는 관선을 타고 두모포를 벗어난다.

관선은 양평의 양수리에서 서울로 회항하고 이황은 배를 갈아타는데 날씨가 험악해진데다가 건강마저 좋지 않아 뱃길이 지연되고 있다. 이포 나루는 김안국이 유배생활을 보냈던 곳이었고 이황이 직접 찾기도 했던 강나루였다. 여주 신륵사를 이황은 여러 번 찾았는데 이른바 ‘퇴계 운동법’을 터득하게 된 곳이기도 했다. 배 멀미가 심하여 이황은 충주 금천나루(오늘의 중앙탑공원)에서 상륙하여 말을 타고 육로로 하여 단양에 닿아 죽령을 넘는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었지만 수로 때와는 달리 오히려 건강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였다. 그는 3월 17일에 안동 고향의 도산서당에 당도하였다. 조정을 떠나던 날로부터 따지면 13일이고 수로와 육로의 노정만 꼽아도 꼬박 열하루걸이의 행로였다.

 

 

기대승의 전별시

 

漢江滔滔日夜流 한강수야 넘실넘실 밤낮으로 흐르지만

先生此去若爲留 떠나시려는 우리 선생님 어찌하면 머무시게 할까

沙邊拽纜遲徊處 강변에 닻줄 내리기를 늦추며 이리저리 배회하건만

不盡離腸萬斛愁 애 끊는 간장에 시름만 가득가득 고여 오는구나.

 

 

이황의 화답시 (저자도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쓴 것이다)

 

列坐方舟盡勝流 배 안에 앉아 있는 이들 참으로 빼어난 선비들이려니

歸心終日爲牽留 돌아가려는 이 마음을 종일토록 붙들어두고만 있네.

願將漢水添行硯 이 한강수를 통째 내 벼루의 물로 삼아서

寫出臨分無限愁 고별의 애틋함 무한정으로 나타내 보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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