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歸蜀途)/ 서정주

2014.05.08 03:25

박영숙영 조회 수:914 추천:29

귀촉도(歸蜀途)/ 서정주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어 줄걸, 슬은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구비 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귀촉도, 서정주 '설화와 불교의 접목/촉나라의 망제는 평소 자신이 신임했던 '별령'이라는 신하에게 배신을 당해 국외로 추방된다. 하루 아침에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난 그는 그만 화병을 얻어 타국에서 죽게 된다. 그 후 사람들은 망제가 죽어서 귀촉도가 되었다고 믿었다.

귀촉도는 저녁부터 새벽무렵까지 귀촉귀촉하며 촉나라를 몹시 그리워한다고 생각했다. 이 귀촉도에는 그리움과 한의 정서가 깊이 베어있다. 귀촉도 울음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문득 슬프게 만드는 애수성이 담겨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귀촉도 울음소리에 담긴 한의 정서를 자기화 했다. 귀촉도의 울음소리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서 생긴 정한 투영하여 자신의 처절한 심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설화를 창조적으로 변형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에는 설화의 창조적 변용과 함께 불교적 내세관이 보인다. 서역과 파촉이라는 시어는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정토와 관련이 있다. 현세의 보살들이 해탈하여 도달하게 되는 이상적인 내세가 바로 서방 정토이다. 이 서방정토는 쉽게 불교적 저승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는 사랑하는 임이 죽어서 서방정토에 당연히 갔으리라고 믿는다.

이것은 화자가 대상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불교적을 극복하려했다는 방증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교적 내세관으로 임의 죽음을 극복하려는 화자의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화자는 죽은 임이 가는 곳이 진달래 꽃비가 오고, 피리를 불며 가는 곳인 극락의 세계라고 믿었지만, 현세에 남겨진 화자는 이것도 큰 위안이 되지 못하고 임을 잃은 슬픔을 위로해주지 못한다.

화자는 극락정토에서 임이 자신을 기다려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극락정토에서 재회하고픈 소망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다만 임이 부재하는 상황을 충실하게 슬퍼한다. 그래서 이 시는 불교적 내세관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으나, 그것에 대한 깊은 공감과 기대는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시는 아픔의 승화보다는 아픔 자체에 주목하고 있는 시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암송하거나 애송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은 아픔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기 보다는 그 아픔을 어떻게 극복했느냐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유튜브 박영숙영 영상'시모음' 박영숙영 2020.01.10 158
공지 박정희/ 외국학자들의 평가 박영숙영 2018.03.01 938
공지 AP종군기자의 사진을 통해 다시 보는 1950~53년 韓國戰爭 박영숙영 2015.07.26 2178
공지 박정희 대통령의 시 모음 박영숙영 2015.07.06 1662
공지 이순신 장군의 어록 박영숙영 2013.02.22 1585
공지 세계의 냉정한 평가 ㅡ박정희 박영숙영 2012.03.14 857
공지 저작권 문제있음 알려주시면 곧 삭제하겠습니다. 박영숙영 2009.09.02 827
공지 슬픈역사 ,기억해야 할 자료들 박영숙 2009.01.26 963
공지 박정희 대통령의 명언 박영숙 2009.01.26 2722
공지 박정희와 맥도널드 더글라스사 중역의 증언 박영숙 2009.01.26 1295
153 대상과인식과정 박영숙영 2019.06.06 68
152 그날이 오면 (심훈) 박영숙영 2019.04.04 286
151 이황의 풍물시/ 문경새재/ 한벽루/ 정약용/신경림 목계장터 박영숙영 2018.01.27 417
150 나옹/ 목은 이색/이규보/ 정철/기대승과 이황의 동호 전별 시 화답시 박영숙영 2018.01.27 593
149 아, 우리나라 국기, 태극기 [스크랩] 박영숙영 2016.06.20 573
148 옛날 옛적의 귀한 이미지 자료 박영숙영 2016.04.09 329
147 짚신신고 이렇게도 못살았는데 박영숙영 2015.08.04 376
146 꽃등/ 류시화 박영숙영 2015.06.14 375
145 <'感興' 중 - 白居易> 박영숙영 2015.05.12 150
144 화비화(花非花) - 백거이 박영숙영 2015.05.12 1776
143 낙서재(樂書齋) _ 고산 윤선도 박영숙영 2015.05.12 433
142 바다를 가르며(泛海 범해) _ 최치원 박영숙영 2015.05.12 440
141 俊禪子(준선자) - 淸虛休靜(청허휴정) 박영숙영 2015.05.12 201
140 퇴계가 두향에게 보냈다고 전해진 시 박영숙영 2015.05.12 434
139 집착하지 않는 삶 박영숙영 2014.09.07 237
138 >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 박영숙영 2014.09.07 267
137 > 오만가지 생각이 한 점 눈송이다,< 청허 휴정 선사 박영숙영 2014.07.16 730
136 長恨歌(장한가) - 백거이 박영숙영 2014.09.07 9761
135 춘산에 / 우탁 박영숙영 2014.06.18 246
134 고시조 모음 박영숙영 2014.06.18 19126
133 [시조모음 ]<백설이 자자진 골에> 묵은 이색 박영숙영 2014.06.24 11123
132 靜夜思(정야사) - 이백 (중국명시) 박영숙영 2014.05.08 2392
131 도연명 陶淵明, 중국 晉나라 시인 박영숙영 2014.06.18 247
130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박영숙영 2014.06.16 216
129 賦得高原草送別(부득고원초송별)-백거이 (중국명시) 박영숙영 2014.05.08 776
128 遊子吟(유자음)-맹교 (중국명시) 박영숙영 2014.05.08 3175
127 파초우 /조지훈 박영숙영 2014.05.08 2616
126 고사(古寺)" /조지훈 박영숙영 2014.05.08 565
125 신부/ 서정주 박영숙영 2014.05.08 359
» 귀촉도(歸蜀途)/ 서정주 박영숙영 2014.05.08 914
123 벽(壁)/ 서정주 박영숙영 2014.05.08 1818
122 봄이 오면 산에 들에 /홍성란 박영숙영 2014.05.07 261
121 홍성란 /바람불어 그리운 날 박영숙영 2014.05.07 240
120 따뜻한 슬픔 ...홍성란 박영숙영 2014.05.07 324
119 홍성란 /들길 따라서 박영숙영 2014.05.07 525
118 홍성란 / 명자꽃 박영숙영 2014.05.07 835
117 시조대상 수상작 모음/ 홍성란, 정수자 박영숙영 2014.05.07 434
116 正月二日立春 [입춘]/ 퇴계 이황 박영숙영 2014.02.16 907
115 조국의 영웅 "안중근 의사 어머니 편지"ㅡ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박영숙영 2014.02.14 767
114 신부 /서정주 박영숙영 2014.02.10 5732
113 파초우(芭蕉雨)/詩: 조지훈 박영숙영 2014.02.10 826
112 "不變(불변)" /학명선사 박영숙영 2014.02.06 574
111 靜坐然後知平日之氣浮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 박영숙영 2014.02.06 443
110 冬夜(동야) - 金三宜堂(김삼의당) 박영숙영 2014.02.06 427
109 思齋 / <眞樂在閑居 金正國(1485~1541)> 박영숙영 2014.02.06 249
108 [스크랩]황진이 시모음 박영숙영 2013.07.05 4182
107 遣憂(견우) - 丁若鏞(정약용) 박영숙영 2014.02.06 286
106 不疎亦不親(불소역불친) 박영숙영 2014.02.06 399
105 (詩)로 보는 이순신의 생각 읽기 박영숙영 2013.02.22 732
104 이순신 장군의 시조 모음 박영숙영 2013.02.22 7043
103 한국의 위인, 성웅 이순신 장군의 명언 박영숙영 2013.02.22 688
102 (가노라 삼각산아) - 김상헌 박영숙영 2013.02.22 1725
101 (장백산에 기를 꽂고) - 김종서 박영숙영 2013.02.22 803
100 (한 손에 가시 쥐고)- 우 탁 박영숙영 2013.02.22 511
99 (샛별지자 종다리 떳다) - 김천택 박영숙영 2013.02.22 636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84
어제:
81
전체:
883,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