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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놀라움> 삶의 놀라움은 우리를 하나님과 멀리 있게 하지 않는다
2016.12.25 12:12
<삶의 놀라움> 삶의 놀라움은 우리를 하나님과 멀리 있게 하지 않는다
삶의 놀라움은 우리를 하나님과 멀리 있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놀라움으로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모셔들이려 한다. 놀라움은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돋보이게 하지도 않는다. 가까이 모시고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를 이끈다. 놀라움을 통해 온전한 사랑이신 하나님(요일4:17)을 만나게 됨으로 우리의 영은 하나님 사랑의 품에 안기게 된다. 삶에서 내가 놀라움을 만나는 것은 세상을 살고 있는 나 아닌 또 다른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놀래키는 그 누가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끔 나를 잡아 끌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자장가를 불러 잠을 재우기도 하고 때로는 웃거나 심하게 울리기도 한다. 잠을 자는 나를 흔들어 깨우기도 하며 깨어 있는 나를 잠 속에 빠뜨리기도 한다. 때로는 삶의 기쁨을 경험하거나 죽음의 경지를 돌아보게도 한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더욱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게 되는데 신비롭게도 놀라움은 미래를 내다보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삶의 놀라움에 대한 경험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그 놀라움의 감각은 무디어지지 않는다. 더 더욱 그 자체를 선명하게 하고 우리의 영적 모습에 점점 더가까이 다가온다. 놀라움은 그 놀라움만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놀라움을 몰고 온다. 작은 파도가 큰 파도를 밀어 오듯이, 와서 해일을 퍼붓듯이. 놀라움의 연속인 인생, 아니 끊임없이 경험하는 영적세계를 가져보라. 놀라움 속에 임재하시는 주님을 만나 뵙게 된다. 삶의 놀라움은 100%의 완전으로 닥아와 주기 때문이다. 온전한 사랑은 양 99마리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1마리의 양을 찾으시는 주님의 심정은 양 100 마리를 채울 100%의 온전한 사랑을 추구함에 있다. 99 마리는 언제나 완전에 이르지 못하는 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100을 채우므로 완전에 닿아 있다. 낳음도 죽음도 매우 큰 놀라움이다. 낳음은 순수의 시작의 놀라움이며 죽음은 끝이 아니기에 더욱 큰 놀라움이다. 이는 100%의 온전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눅22:19)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 하심은 지극한 놀라움의 극적 신비를 내포하고 있음에랴! 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놀라움의 영원한 증표이다. 이로써 인생은 그 존재 가치를 더욱 높이게 된다. 성경, 기도, 찬양, 성찬, 세례, 십자가, 부활 등은 요동하는 파도와 같이 놀라움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원료들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떡으로, 그의 피를 잔으로 말씀하심을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 분명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다른 오해의 소지는 있을 수 없었다. 떡이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떡은 그의 몸을 상징할 뿐이다. 이것은(고전10:16,17) 성찬식의 떡을 떼는 것을 통하여 신자들에 의해 구성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되는 교회의 하나됨과 성도들이 서로 지체로서 교제를 나누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예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고 하신 비유와 비슷하다. “새 언약”은 예수께서 흘리신 피에 근거한 새 언약이다(렘31:31). 우리는 성경에서 언약에는 피가 요구되어지 는 사실을 알 수 있다(창6:18;8:20;출24:6,7). 이것은 상호간에 맺어진 언약이 생명을 두고 맺어진 다는 언약의 엄중성과 공의성을 나타내기 위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당신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당신을 믿는 그의 백성들과의 영원한 새 언약을 세우셨다(히7:22;8:6). 이는 삶에의 지극한 놀라움 중의 놀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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