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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놀라움>  개인이나 공동체에서 부르심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

  

삶의 놀라움에서 개인이나 공동체를 부르심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 놀라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직접 부르시거나 친히 만져주실 때도 있다. 동굴 앞에 엘리야를 만지신 (왕상 19:13)처럼, 이는 지극한 놀라움이 아닐 없다. 인간은 놀라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은 개인 대로 공동체는 공동체 대로 지극히 비밀스러운 만남 속에서 안식을 취하게 된다. 이런 놀라움을 경험하고 나서야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믿기도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무한히 낮아진다. 여지없이 자신을 비우게 된다. 자신을 온전히 비웠을 자리에 참으로 소중함이 담기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스스로 낮아지셔서 쓰리고 아픈 십자가의 고통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받으셔서 비운 자리를 채우셨다. 그러므로 자신을 비운 자만이 그리스도의 일부라도 이해할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와 안식이 가능해진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이시다. 구주를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면 모임 안에 그리스도는 긍휼의 주님으로 임재하신다 (18:20). 삶의 참다운 놀라움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삶이다. 고난의 그리스도, 기쁨의 그리스도, 용서의 그리스도,  부활의 그리스도, 구세주 그리스도를 여기서 만나게 된다. 오순절 성령 체험이야먈로 피할 없었던 귀한 놀라움이었다. 놀라움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지금도 계속 변화일로로 확산되고 있다.    

 태만, 적개심, 교만, 시기, 질투 등은 놀라움과 공존할 수없다. 놀라움은 순수 자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놀라움은 용감하게도 삶의 새출발을 명령하기도 한다. 삶의 놀라움은 자리에 사랑의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놀라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상처는 누구로부터 주어지는가. 놀라움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이런 것들은 곳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 가정, 이웃 가까운 나의 주변으로부터 또는 그리 멀지 않은 나의 환경으로부터 왔고 오고 있다. 그렇기에 상처는 아프고 놀라움은 더욱 뜨거운 감동을 준다.

 용서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절실해 온다. 용서는 내가 받아야 하지만 내가 남에게도 주어야 하는 절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당신을 용서합니다라는 진실한 표현이 우리의 삶에 놀라움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펼치시는 사랑의 귀한 단면이기도 하다. 용서 받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욱 불행한 사람이다. 용서는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놀랍고 신비로운 행위이다. 용서한 자나 용서 받은 자는 마음 한몸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은 지극한 놀라움처럼,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의 가슴은 칠한 무덤이다. 이미 회로 들러쳐져 있으므로 변화의 여지가 없이 막힌 공간이다. 남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내가 받은 용서는 참용서일까? 남으로부터 내가 용서함을 받았을지라도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남이 나를 용서했을 지라도 끝내 용서로 남지 못하고 용서 이전의 자리에 도로 갇힌 수밖에 없다.         

 삶의 놀라움은 하나님을 찾는 기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일생도 편의 기도와 같다. 어떤 이는 인생을 일장춘몽의 연극이라고 단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간절한 삶을 사는 사람의 평생은 간절함이 넘치는 편의 기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런 삶으로 하나님과의 동행이 가능해진다. 아니면 몸은 살았으나 영은 죽은 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저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간절한 고백을 들으시려고 나를 세상에 보내셨음에 놀라움 또한 측량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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