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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놀라움>  삶의 놀라움이야말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 있는

                                                                     

삶의 놀라움에의 경험이야말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 있는 순간과 같다. 그 정상에서는 올려다 볼 수 있는 대상과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대상에 대하여 느끼는 생각이 보다 더 새롭기 때문이다. 정상에 올라 있으면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듯이 지극한 은혜의 위치에서 신령한 영의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열국의 아비이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놀라움을 경험했고, 모리아 산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할 때 여호와 사자의 음성을 들으며 놀라움을 또 경험했으니,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8:56) - 아마도 그리스도의 ‘때’란 아브라함이 보고 기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리키는 듯하다. “볼 것을” - 이 말의 헬, ‘아이돈’은 눈을 통하여 단순히 본다는 뜻보다 어떤 대상의 실제 인식을 말한다. 모세도 고령에 시내 산에 올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움을 경험했고, 홍해를 가르는 엄청난 놀라움,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낳으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 바닷물 위를 걸으셨고, 오병이어로 5000 명 이상을 배불리 먹이셨으며, 갈보리 산정에 오르시어 십자가 고통으로 이룩한 지극한 고난의 놀라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서의 환희 가득한 부활의 놀라움, 승천하심의 놀라움, 온갖 놀라움으로 가득한 천상천하에 다시 엄청난 놀라움으로 오실 재림의 날이 가까이 도래하고 있다. 이와 같이 놀라움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놀라움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보다 가치 있는 존재는 놀라움의 반복으로 감지 된다. 놀라움을 실감 있게 경험한 자만이 또 다른 놀라움을 발견하게 되고 그 진수를 감지하며 발견한 놀라움의 가치를 소유한 자가 새로운 창조의 꿈을 꿀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놀라움에 처해 본 사람은 끊임없이 놀라움에의 갈망에 젖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삶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은 놀라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택하신다. 그러므로 삶의 놀라움은 거룩한 경지에 이르는 지름길에 놓인 디딤돌이다. 또 다른 놀라움을 만나러 가는 삶의 여정이다. 삶의 놀라움은 인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갈망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쉬지 않으시고 우리 영()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지 않는가! 이미 놀라움을 경험한 자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더욱 확실하게 갖게 되며 놀라움의 경험을 반복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불을 지피러 오셨다. 그 불은 성령의 불이다. 인류의 삶에 놀라움을 덧입 히시려고 오셨다. 인류에게 놀라움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믿는 자만이 놀라움의 진수를 만난다. 놀라움은 인간보다 하나님께서 더욱 원하시는 영적 세계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놀라움을 경험하기를 목 마른 사슴보다 더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가장 큰 놀라움을 인간에게 선사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인간은 다르다. 주신 은혜의 놀라움을 놀라움 그대로를 유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질시키는 우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다. 성경 (5:1-47)에 나타난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보아라. 물론 그는 예수께 병 고침을 받았지만 베데스다 물이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을 믿고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는 병자를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 하면 될 텐데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고 구차한 말을 하였다. 주님의 질문에 맞는 답을 하지 못했다. 이는 병자가 자기의 본분을 이미 잊고 있는 증거이다. 자기의 본분은 "낫고자 함"인데, 38년간의 오랜 병에 찌들어 있기에 정신적인 불안(못에 들어가야 한다는)에 싸여 "낫고자 함"을 이미 잊고 있었다. 인생들에게서 이와 같은 예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은혜를 통한 감동으로 덕을 세우면 본분을 잃지 않을 텐데, 오랜 세월 본질 자체가 변질됨을 의식조차 못하는 동안  때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섬김이 초대교회를 따르지 못하는 이유도 이에서 지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가 오랜 세월을 거듭할수록 첫번 믿음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5:14)”고 하셨다. 죄를 범치 않고 사는 삶-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향해 베푸시는 지극한 삶의 놀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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