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관한 시모음

2015.06.14 17:14

박영숙영 조회 수:8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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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시<임영준>

 

모두 떠나는가

 

텅 빈 하늘아래
추레한 인내만이
선을 긋고 있는데
훌훌 털고 사라지는가

 

아직도 못다 지핀
詩들이 수두룩한데
가랑잎더미에
시름을 떠넘기고

 

굼뜬 나를 버려둔 채
황급히 떠나야만 하는가

 

 

 

 

 

 


11월의 시       <홍수희>

 

텅텅 비워
윙윙 우리라

 

다시는
빈 하늘만

 

가슴에
채워 넣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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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시       <이재곤>

 

맺히고,
익어서
지닐 수 없을때
텅텅 비워
빈몸으로라도 울리라

 

다시,
또 다시 살아도
지금같을 삶이 슬퍼서
그때도 지금 같이 울리라

 

눈에 들여도
가슴에 들여도
채워지지않는 삶의 한도막
슬퍼서 너무슬퍼서
텅텅 비워
빈몸으로라도 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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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시       <이임영>

 

어디선가 도사리고 있던
황량한 가을 바람이 몰아치며
모든 걸 다 거두어가는

 

11월에는
외롭지 않은 사람도
괜히 마음이 스산해지는 계절입니다

 

11월엔 누구도
절망감에 몸을 떨지 않게 해 주십시오.
가을 들녘이 황량해도
단지 가을걷이를 끝내고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가서
수확물이 그득한 곳간을 단속하는
풍요로운 농부의 마음이게 하여 주십시오

 

낮엔 낙엽이 쌓이는 길마다
낭만이 가득하고
밤이면 사람들이 사는 창문마다
따뜻한 불이 켜지게 하시고
지난 계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랑의 대화 속에
평화로움만 넘치게 하여 주소서

 

유리창을 흔드는 바람이야
머나먼 전설 속 나라에서 불어와
창문을 노크하는 동화인양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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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계절<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개끔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時祭 지내려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對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울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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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고 은>

 

낙엽을 연민하지 말아라
한자락 바람에
훨훨 날아가지 않느냐
그걸로 모자라거든
저쪽에서
새들도 날아가지 않느냐
보아라 그대 마음 저토록 눈부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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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박영근>


바람은
나무들이 끊임없이 떨구는 옛기억들을 받아
저렇게 또다른 길을 만들고
홀로 깊어질 만큼 깊어져
다른 이름으로 떠돌고 있는 우리들 그 헛된 아우성을
쓸어주는구나

 

혼자 걷는 길이 우리의 육신을 마르게 하는 동안
떨어질 한 잎살의 슬픔도 없이
바람 속으로 몸통과 가지를 치켜든 나무들

 

마음 속에 일렁이는 殘燈이여
누구를 불러야 하리
부디
깊어져라
삶이 더 헐벗은 날들을 받아들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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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이외수>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은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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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조용미>

 

한밤
물 마시러 나왔다 달빛이
거실 마루에
수은처럼 뽀얗게 내려앉아
숨쉬고 있는 걸
가만히 듣는다

 

창 밖으로 나뭇잎들이
물고기처럼
조용히 떠다니고 있다
더 깊은 곳으로

 

세상의 모든 굉음은
고요로 향하는 노선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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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이수희>

 

내 그림자가
고집을 피우고
슬그머니 꼬리가 무딜까봐
감나무 몇 잎이
가지를 놓지 못합니다
시간의 그늘을 저만치 두고
비릿한 눈물마저 마른
하늘 끝마저 멉니다
그가 내민
연서를 따라가다가
벌레먹은 낙엽이 되고
휑하게 길어진 돌담길
긴장한 상념도 움츠리며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걸립니다
땅위를 걷는 모든 각진 마음들이 뒹굴어
제 가슴만 헐어내고
제 허무함만 세우고
그래도 그의 가슴마다 기슭마다
세상의 뿌 리를 더 환하게
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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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최갑수>

 

저물 무렵 마루에 걸터 앉아
오래전 읽다 놓아두었던 시집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11월의 짧은 햇빛은
뭉툭하게 닳은 시집 모서리
그리운 것들
외로운 것들, 그리고 그 박의
소리나지 않는 것들의 주변에서만
잠시 어릉거리다 사라지고
여리고 순진한
사과 속 같은 11월의 그 햇빛들이
머물렀던 자리 11월의 바람은 또 불어와
시 몇 편을 슬렁슬렁 읽어내리거는
슬그머니 뒤돌아서 간다
그 동안의 나는
누군가가 덮어두었던 오래된 시집
바람도 읽다 만
사랑에 관한 그렇고 그런
서너 줄 시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다 무심코 주워보는 낙엽처럼
삶에 관한 기타 등등이 아니었을까,
시집을 덮고 고개를 들면
더이상 그리워할 일도
사랑할 일도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담담하기만 한 11월의 하늘
시집 갈피 사이
갸웃이 얼굴을 내민 단풍잎 한 장이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처럼
낯설고 겸연쩍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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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이창숙>

 

조용히 흔들림 없이, 손 내밀지 않고 두려움 없이,       
어둠과 사유하기,
나무들이 11월의 집을 짓고 있다
허름하게 집 지을 짚 몇단만 있으면 되지
다 읽지 못한 책은 그냥 덮어두고
쓰지 못한 시(詩)는 바람에게 들려주고
보고 싶음은 붉은 울음으로 떨궈내고
안쓰러움은 발 밑에 묻어 두지

 

한밤중에도 나무들은 사이사이 눈을 뜬다
흔적지우기 긴 몸 소름돋는 쓸쓸함 꼭꼭 쌓아두기
구석구석 빈자리 채워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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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조용미>

 

한밤
물 마시러 나왔다 달빛이
거실 마루에
수은처럼 뽀얗게 내려앉아
숨쉬고 있는 걸
가만히 듣는다

 

창 밖으로 나뭇잎들이
물고기처럼
조용히 떠다니고 있다
더 깊은 곳으로
세상의 모든 굉음은
고요로 향하는 노선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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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최정례>

 

느닷없이 큰 곰이
천장까지 닿는 검은 그것이 나타나
우리집 고양이를 아이들을 때려눕히고
나를 그러면?
함께 살자고 하면?
이 집 커튼을 찢고 들어와
돌이 된 내 심장을 두들기며
그러면 어떡하지?
창문의 불빛을 훔쳐보다가
느닷없이 현관문에 피아노에
차압딱지를 붙이는 집달리처럼
11월 어느 날
무심한 곰의 얼굴로 들이닥쳐서
TV에서 배 두들기며 웃는 코미디언들
얼굴 위에 재를 뿌리고
소파 위에 내 손바닥 위에
뜨거운 석탄을 올려놓으면
그러면?
이 집 사느라 진 빚
이자의 이자 때문에
넌 역전 앞에 가 신문지나 덮고 누워 있어라
그러는데도
기대고 싶고 조금은 은근히 살고 싶어지면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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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황인숙>

 

너희들은 이제
서로 맛을 느끼지 못하겠구나
11월
햇빛과 나뭇잎이
꼭 같은 맛이 된
11월

 

엄마, 잠깐 눈 좀 감아봐! 잠깐만
잠깐 잠깐 사이를 두고
은행잎이 뛰어내린다
11월의 가늘한
긴 햇살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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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 <이정림>
 
바람에
낙엽이 흩어지고 또 날린다.
찌푸린 하늘은 할미꽃
떨어져 날리는 잎사귀마냥 모두들 바쁘다.
푸시시한 얼굴에 초겨울 그림자가 스치고
쪼달림의 모습 모습이다.

 

잘 익은 밤나무
밤톨 한 알 없이 다 털리고
주황색 감나무에
달랑 까치밥 한 알뿐이다.

 

뿌연 하늘이 멍하니 내려 보이는 빈 벌판
허허로운 허수아비
심장도 멈추었다.

 

소용없는 바람만이 차가워서 흐느끼고
코스모스와 들국화도 흑흑 따라서 운다.
멀거니 할미꽃도 운다.
모두들 앙상하게 남아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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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진 란>


은색 바람으로 몸을 닦으며
시린 들판에 그대라고 써도 좋으리

 

살얼음 오싹한 하늘 웅덩이에
이마를 기대고 선 나목으로
꼭감은 그대 눈 속에서
불꽃같은 별밤을 꿈 꾸어도 좋으리
봄이 피는 꿈
눈밭에 떨어진 푸를 씨앗들
겨우내 바람 치대는 소리에 귀를 씻으며
하얀 적설로 눈사람이 되어도 좋은
망부석의 전설이 되어도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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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이해인>

 

나뭇잎에 지는 세월
고향은 가까이 있고
나의 모습 더없이
초라함을 깨달았네

 

푸른 계절 보내고
돌아와 묵도하는
생각의 나무여

 

영혼의 책갈피에
소중히 끼운 잎새
하나 하나 연륜 헤며
슬픔의 눈부심을 긍정하는 오후

 

햇빛에 실리어 오는
행복의 물방울 튕기며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조용히 겨울을 넘겨보는
11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지금 아닌 머언 훗날
넓은 하늘가에
너울대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별밭에 꽃밭에 나뭇잎 지는 세월
나의 원은 너무 커서
차라리 갈대처럼
여위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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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고혜경>

 

달빛에 홀로 선 나목
투명한 새벽에 젖어
멀어지는
가을의 마지막 얼굴 되어
볓 빛보다
더 시리게 떠나간다

 

사라져 흙이 되는 것마다
의미는 남아
이슬이 채 밟히지 못한 시간 앞에
때를 따라 아름답게 서성이는
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마른 잎
천 년을 두고도 남을
사랑보다 더 깊은 의미의 진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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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정희성>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나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나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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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노래 <김용택>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 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스칩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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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서<이정인>

 

따스한 봄 빛 향기에 끌려
빗장을 내리고
움 터 자란 새 순은
중년의 울타리에
하얀 목련처럼 감싸는 이 없이
피다 지고 

 

어설프게 타다 진
숯불인가!
무더운 밤
그리운 새벽바람 한 줄기는
어느 새 싸늘한 얼굴로
찾아와 있다.

 

갈잎 떨어지는
가을 숲에는
잎 새 보다 더 큰 비명으로
세월을 아파하는
역류의 모난 반란만
산만하게 흩어지고 

 

가지에는
마지막 남은 잎 새하나
어둔 밤하늘에
시리도록 하얀 얼굴로 떠 있는
보름달처럼
어둠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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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풍경, 하나 <진 란>

 

몇일 내내 퍼붓던 빗방울들이 멈추었다
목울음에 잠긴 세상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이어지는
눅눅한 사잇길에서 눈 악무는 아수라 여자
밤새 지나간 흔적 없는 텅 빈 길 위에
지친 몸으로 드러누었던 은행잎이
도시를 흔들어 깨우는 타이어에 휘쓸려
맨발의 무희처럼 달려가는데
비안개가 피어오르는 흐린 유리창에
당신은 누구시냐고
어디서 쉬었느냐고
젖은 속내 감추어 쓴 편지 한 장
새벽잠 속에 가만히
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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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나무<김경숙>

 

가진 것 없지만
둥지 하나 품고
바람 앞에 홀로 서서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도
이겨낼 수 있는
튼튼한 뿌리 있어

 

비워낸 시린 가지
천상 향해 높이 들고

 

흩어진 낙엽 위에
나이테를 키우는
11월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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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나무<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測光)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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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나무처럼         

 

                 <이해인>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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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月의 저녁

 

          <김  억>

 

바람에 불리우는
옷 벗은 나무수풀로
작은 새가 날아갈 때,
하늘에는 무거운 구름이 떠돌며
저녁해는 고요히도 넘어라.

 

고요히 서서, 귀 기울이며 보아라,
어둑한 설은 회한은 어두워지는 밤과 함께,
안식을 기다리는 맘 위에 내려오며,
빛깔도 없이, 핼금한 달은 또다시 울지 않는가.
나의 영이여, 너는 오늘도 어제와 같이,
혼자 머리를 숙이고 쪼그리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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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 저녁      

 

      <이성선>

 

벌레소리 고이던 나무 허리가 움푹 패였다
잎 없는 능선도 낮아져 그 아래 눕는다
가지 하나가 팔을 벌여 내 집을 두드린다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 듯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바라만 본다
저문 시간이 고개 숙이고 마을을 서성거리고
그의 머리 위로 별이 벼꽃처럼 드물다
낡은 문 창에 달빛이 조금씩 줄어든다
달 내리는 소리가 마당을 지나 헛간에 머문다
누군가 떠나고 난 자리가 세상보다 크고 깊다

 

나무가 하늘에 기대어 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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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이후 <이성선>

 

가을 들판이 다 비었다
바람만 찬란히 올 것이다

 

내 마음도 다 비었다
누가 또 올 것이냐

 

저녁 하늘 산머리
기러기 몇 마리 날아간다

 

그리운 사람아
내 빈 마음 들 끝으로

 

그대 새가 되어
언제 날아올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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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1월에는

 

               <김행숙>
 
느릿느릿 잠자리 날고
오후의 볕이 반짝 드는 골목길
가을 냄새가 시작된다

 

시들어가는 시간
사람들이 종종걸음 치는 저녁 때면
어김없이  등줄기가 시리다

 

갑자기 햇살이 엷어지고
나뭇잎 하나 툭! 떨어져 내리면
나도 옷깃을 여며야 한다
내일을 기약하는 마른 풀잎처럼
다시 마음을 다잡으리라
늦어도 11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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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가는 갈밭 길에서

 

                            <김동규>

 

처음에는 문득, 바람인 줄 알았다
娼婦의 賣笑같은 까칠한 소리로
살과 살을 비벼대다 드러눕던 몸짓,
바람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섰다가
혼절하는 몸소리로 제 허리를 꺾어
속 대를 쥐어 틀어 물기를 말리고
타오르는 들불의 꿈을 꾸며 잠이 든
늙은 갈대의 가쁜 숨소리
11월이 가는 갈밭 길에는,
빠른 걸음으로 노을이 오고
석양마다 숨이 멎던, 하루를 또 보듬으며
목 젖까지 속울음 차오르던 소리를
처음에는 문득, 바람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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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을 빠져나가며

 

                   <정진규>

 

흙담장에 걸린 먼지투성이 마른 씨래기 다발들
남루한 내 사랑들이 버석거린다
아직도 이파리들 땅에 내려놓지 못할 몇 그루 은행나무들이 이해되지 않으며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다른 이들의 철 지난 사랑이 이해되지 않는다
혼자서 돌아오는 밤거리 골목길에 버려진 고양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나는 자꾸 올라가고 있는데 계단들은 그만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비어지고 있다
빈 계단들이 허공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이제 너에게로 돌아가는 길은 위기로만 남아 있구나
골목길 들어서면 겨우 익숙한 저녁 냄새만 인색하게 나를 달랜다
이 또한 전 같지 않다
12월 때문에 11월은 가장 서둔다
끝나기 전에 끝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들통나고 있다
야적까지 하고 있는 빈터, 그빈터에서도 우리도 서둘러 끝내자
내리는 눈이라도 기념으로 맞아두자
마른 풀대들은 물론이거니와 나무와 나무들 사이가 분명해지고
강가에 서면 흐르는 물소리들도 한껏 야위어 속살 다아 보인다
서로 벌어져 있다
가장 견고하다는 네 사유의 책갈피도 여며지지 않는다
머물렀다고 할 수 없다
서둘러 11월은 빠져나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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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을 보내며

 

             <정아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늘 목에 가시 되어
남아 있는 가을

 

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덩달아 통곡을 하게 하고

 

어디쯤 오고 있는지
내 아픈 겨울
힘들게 오르는 가파른 언덕 길

 

늦은 가을 국화 한 송이
눈물새 울음 배어 목이 쉬는데

 

어느 시간 속에 건 찾아내어
함께 있자 한다
함께 있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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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이후

 

       <진 란>

 

지순한 하늘에 몇 개의 이파리 팔랑이며
따순한 햇살에 맨 몸 다 드러내고

 

남루한 숨소리 몇 바람 지나더니
욕심 비워 나목일래
검은 둥치의 발등에 풀새들 내려앉은
오후, 곰실곰실 피어난 비탈에 서서

 

꿈을 몰아 뿌리 올리는 연리봉으로
만나고저, 오래오래 바라다가 눈부처 들어
연리지로 맞잡은 손, 천년고독을 기다리는
나무로 서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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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A Dream - Richard Clayd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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