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

2005.11.11 12:48

정현창 조회 수:43 추천:6

용광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남자라면 한번쯤 인생 용광로에 들어가야 한다. 민간인에서 군인이 되려면 6주 동안의 군사기초훈련을 받아야 한다. 용광로에 용해되면서 엄청난 땀과 눈물을 흘려야 진정한 군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1970년 2월에 ‘태릉’이라는 용광로에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던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그때의 고통이 큰 도움이 되고있다.


오십 평생 남들이 써놓은 글만 읽어오던 내가 직접 수필을 쓴다는 건 민간인이 군인이 되는 것 못지 않은 큰 변화이다. 군인이 되기 위해선 훈련소에 입소하여 육체의 고통을 이기며 열심히 훈련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수필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며, 많이 써야 한다고들 한다. 지난 여름 나는 일단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여름방학특강에 등록하였다.


열심히 쓰기 위하여 스스로 용광로를 만들었다. 2005년 6월 25일 ‘울트라 마라톤’이라는 첫 습작을 올리면서 일단 습작 100편을 써보기로 결심했었다. 60편 정도면 책 한 권을 낼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아기도 태어나서 100일이 지나면 그때서야 한 인간의 탄생을 축하하며 백일잔치를 하지 않던가. 100이란 숫자는 어느 일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글의 내용과 수준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일단 열심히 써서 교수님께 이메일로 보내기로 했다. 제일 걱정은 갑자기 쓰는 글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글감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편지 한 장 쓰려면 오랜 시간 끙끙거려도 어려운데 습작 100편이라니, 너무 앞이 깜깜하였다.


그 후론 글을 쓸 때마다 매일 열리는 백일장대회에 참가한 기분이었다. 글감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였다. 또한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글감으로 삼았다. 누룽지를 먹다가, 식당에 가서 숟가락을 보고, 길을 걷다가 호박꽃을 보며 글을 썼었다. 폭우가 쏟아져 회사가 비에 잠겼을 때나, 철인삼종과 마라톤을 하다가 힘이 들었을 때도 글을 썼다. 나의 모든 생각을 글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용광로를 통하여 글을 쓰는 습관을 몸에 배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100편의 습작을 씀으로써 가슴 깊숙이 절어있는 상상의 쓰레기들을 쏟아내 버리고 싶었다. 한참을 울고 나면 가슴이 개운해지고, 큰소리로 한을 풀고 나면 머리가 아주 맑아진다. 글을 많이 쓰면 수많은 한과 원망을 비워 버릴 수 있을게 아닌가. 거울에 마음을 비춰 보면서 욕심과 아집도 내다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글을 써야할 게 아닌가. 몸 속에 가득했던 모든 걸 버려 호수처럼 맑고 고요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어느덧 79편의 습작이 써졌다. 그러나 맘속의 호수는 아직도 흐릿하다. 가슴은 답답하고 혼란스럽다. 계획했던 100편의 습작은 거의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는데 얼마나 용광로 속에서 더 단련되어야 수필다운 수필이 써질 수가 있을까. 오늘따라 80편이나 되는 습작을 읽어주신 교수님이 고마워 진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습작을 지도해 주셔야 수필다운 글이 써 질 것인가. 정말 수필창작의 길은 멀고도 험한 도정인가보다.


오늘은 문우(文友)의 수필집 출판기념회 축하모임에 참석하러 가야한다. 몹시 부럽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란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주말의 오후다.
                                     (2005.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