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감사절

2005.11.23 15:27

정현창 조회 수:64 추천:8

수입 감사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6남매의 눈치경쟁은 한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텃밭의 배추와 무 등 각종 채소들을 추수할 때가 되면 서로 좋은 채소를 선점하려고 경쟁하였다. 매년 11월 셋째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린다. 그 날은 각자가 첫 수확한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을 골라서 교회에 가져가야 했다. 배추, 무, 고추, 호박, 파 등 별별 채소들이 다 모였다.  강대상(講臺床) 위에 수북히 쌓인 채소 중에 자기 것이 제일 크면 어깨가 으쓱해지기 때문에 6남매들은 텃밭에서 제일 좋은 수확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이 심했었다.  



   교회 종탑에서 ‘땡그랑 땡그랑’ 예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퍼질 때면 우리들은 그동안 첩보작전을 능가한 솜씨로 확보한 집에서 제일 큰 채소를 가슴에 안고 나무다리를 건너 개선장군처럼 교회로 갔다. 자기보다 커다란 배추와 호박을 안고 줄지어 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동화장면 그대로였다. 강대상 벽에는 청년들이 간밤에 노란 빤짝 종이를 오려 붙여놓은 ‘추수감사절’ 이란 글씨가 빛나고 있었고, 일찍 가져온 채소들이 놓여있었다. 우리들은 자기가 가져온 것들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으려고 몸싸움까지 벌였다. 시간이 갈수록 강대상에는 각종 채소들이 조그만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채소들의 종류도 다양하여 마치 작은 채소가계를 옮겨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예배가 끝나면 다시 모든 채소들을 사택으로 옮겨 김장을 하였다.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Thanksgiving Day] 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약 400년 전인 영국에서 102명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인 미국에 도착하여 한 해 동안 농사를 지었는데 그 수확한 것을 가지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원주민들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면서 즐겁게 지낸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어렵게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지켰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04년에 처음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추수감사절이 지켜지게 된 것은 100년 전에 미국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2005년 추수감사절 예배에도 참석하였다. 예배시간이 되어도 채소를 가져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대상 옆벽엔 대형그림이 붙어있었고, 오후 찬양예배 안내문과 함께 추수감사주일이라고 씌어져있었다. 그리고 강대상 위엔 각 기관에서 가져온 과일바구니가 20여 개나 놓여있었다. 전자오르간 옆엔 일면 추수감사절 나무라는 게 서있는데 그 모양이 가관이다. 나뭇잎 하나 없는 나뭇가지에 사과와 배는 물론 오렌지와 키위가 한꺼번에 열려있고. 호박과 바나나도 열려있는 생체공학이 만든 첨단 과일나무였다. 예배가 끝나면 양로원이나 불우이웃들에게 나누어준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추수할 것이 없는 사람들은 봉투에 성의껏 감사헌금을 넣고 있었다.  



  추수감사절이란 이름은 변하지 않았지만 감사절 풍경은 어릴 때에 비해 지금은 너무 많이 변했다. 직접 추수하여 제일 좋은 농산물을 바쳤던 그때는 이름과 어울리는 감사절이었지만 지금은 일년 내 수입(收入)한 금액 중의 일부를 감사의 마음으로 봉투에 담아서 드리는 수입 감사절(收入 感謝節)이 되어버렸다. 물론 지금도 농사를 지어서 추수하여 추수감사를 드려야 하는 농부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의 절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 추수감사절인 지난 일요일도 농민들은 고속도로를 막고 생존투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할 수 없는 감사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제는 국회에서 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비준 동의안까지  통과시켜서 내년 3월부터는 외국쌀들이 시판된다고 한다. 과일, 채소는 물론 쌀까지 개방되어 값싼 농산물들이 수입되면 우리 농산물의 몰락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좀더 세월이 흘러 우리 농산물들이 몰락한 후에도 추수감사절은 있겠지만, 우리가 추수한 농산물들은 아예 사라지고 강대상 위에 놓인 농산물들은 온통 수입(輸入)농산물들로 치장될게 아닌가. 그때는 강대상 벽에다 ‘수입 감사절(輸入 感謝節)이라고 써 붙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05.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