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고민
2005.12.12 12:41
선택의 고민
김 학(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 이사장)
선택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두 가지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는 일도 어렵고, 여러 가지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는 일은 더욱 힘겹다. 결단력이 모자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노라면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도 선택의 고민은 따르고, 상급학교나 직업을 고르는데도 선택의 괴로움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셋방살이 십여 년 만에 가까스로 내 집을 마련하는데도 선택의 고민에 빠져야 하고, 백년해로를 다짐해야 할 배우자를 선정하는데도 선택의 함정은 도사리고 있다. 어떤 선택은 물리거나 바꿀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때로는 잘못된 선택이라 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끝내 감수해야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는 그만큼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어느 전자메이커의 오래 전 광고문안이다. 상품의 수명이 10년 정도 되는 것이라고 볼 때 설득력 있는 광고문안이다. 그러나 배우자를 고르는 문제라거나 직업을 구하는 문제라면 상황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어울리리라. 물론, 이혼이나 직업 바꾸기를 밥먹듯 하는 사람이 없는 바도 아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로 치부하고서 말이다. 선택에 관하여 생각을 모으다 보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라스의 선택'이 떠오른다.
영웅 헤라클라스는 아버지로부터 전투용 마차 타는 법을 배웠고, 아우 톨뤼코스로부터는 씨름을, 에우뤼토스로부터는 활 쏘는 법을, 리노스에게서는 탄금(彈琴) 뜯는 법을 배웠다. 어느 날 리노스가 어린 헤라클레스를 꾸짖자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탄금으로 스승인 리노스를 때려죽이고 말았다. 아버지는 헤라클레스를 키타론 산으로 보내 소 떼를 돌보도록 쫓아 버렸다. 키가 6척에 이르고 힘이 천하장사가 된 헤라클레스는 활쏘기와 창던지기의 명수로 성장했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가 키타론 산에서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미덕(美德)과 쾌락(快樂)이 예쁜 여자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서로 헤라클레스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안이와 향락을 추구하는 '쾌락'이란 미녀를 버리고 노력의 길을 쫓는 '미덕'이란 여인을 선택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다.
볶은 콩도 골라 먹는 법이고, 모시 고르다 베를 고르기도 하는 게 세상살이라던가. 선택의 기로에서 헤라클레스처럼 바른 길을 선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춘향선발대회가 전통적인 한국미인을 뽑는 대회라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서구적인 한국미인을 뽑는 대회다. 춘향과 미스코리아는 토종닭과 레그혼의 차이다.
춘향선발대회를 KBS가 주관하게 되면서 나도 몇 번 심사위원의 말석을 차지한 적이 있다.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미인들이 백여 명씩 모여드는 미인 대회인지라 심사도 까다롭다. 1차는 사진심사이고, 2차와 3차는 무대심사였다.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3차 결선까지 심사위원은 다 다르다. 내가 맡은 것은 1차 사진심사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미인들의 사진을 놓고 춘향아가씨를 선택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물보다 사진이 더 예쁜 아가씨도 있을 것이고 대도시에 비해 소도시는 사진솜씨가 모자라는 경우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지 사진심사에서 뽑힌 아가씨들 중에서 진·선·미·정·숙·현 6명의 춘향은 탄생되었고, 그 중에서 탤런트로 특채되어 브라운관을 누비는 미인도 있다. 그러나 미인 중에서 미인을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임을 새삼스러이 느꼈을 따름이다.
3천 궁녀를 거느린 백제 의자왕 정도의 미인 감식안(鑑識眼)은 지녀야 미인선발대회 심사위원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목구비(耳目口鼻)를 분해하여 뜯어보면 저마다 특색이 있어 뵈는 미인도 전체적인 윤곽을 살펴보면 어딘가 미흡한 점이 발견되기도 하고, 양장이냐 한복이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어떤 미인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느냐가 고민이었다. 미인 중에서 진짜미인을 뽑아야 되는 선택의 기로에서 헤매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다소간의 고민이 따르더라도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건, 여럿 가운데 하나를 택하건 선택권을 행사한 사람은 그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쉰 번 맞선을 보고서 맨 처음 만났던 아가씨와 결혼했다는 친구 K군의 결혼 에피소드는 나로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무슨 일인가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신나고 즐거운 일이다.
김 학(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 이사장)
선택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두 가지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는 일도 어렵고, 여러 가지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는 일은 더욱 힘겹다. 결단력이 모자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노라면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는데도 선택의 고민은 따르고, 상급학교나 직업을 고르는데도 선택의 괴로움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셋방살이 십여 년 만에 가까스로 내 집을 마련하는데도 선택의 고민에 빠져야 하고, 백년해로를 다짐해야 할 배우자를 선정하는데도 선택의 함정은 도사리고 있다. 어떤 선택은 물리거나 바꿀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때로는 잘못된 선택이라 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끝내 감수해야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는 그만큼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어느 전자메이커의 오래 전 광고문안이다. 상품의 수명이 10년 정도 되는 것이라고 볼 때 설득력 있는 광고문안이다. 그러나 배우자를 고르는 문제라거나 직업을 구하는 문제라면 상황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어울리리라. 물론, 이혼이나 직업 바꾸기를 밥먹듯 하는 사람이 없는 바도 아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로 치부하고서 말이다. 선택에 관하여 생각을 모으다 보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라스의 선택'이 떠오른다.
영웅 헤라클라스는 아버지로부터 전투용 마차 타는 법을 배웠고, 아우 톨뤼코스로부터는 씨름을, 에우뤼토스로부터는 활 쏘는 법을, 리노스에게서는 탄금(彈琴) 뜯는 법을 배웠다. 어느 날 리노스가 어린 헤라클레스를 꾸짖자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탄금으로 스승인 리노스를 때려죽이고 말았다. 아버지는 헤라클레스를 키타론 산으로 보내 소 떼를 돌보도록 쫓아 버렸다. 키가 6척에 이르고 힘이 천하장사가 된 헤라클레스는 활쏘기와 창던지기의 명수로 성장했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가 키타론 산에서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미덕(美德)과 쾌락(快樂)이 예쁜 여자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서로 헤라클레스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안이와 향락을 추구하는 '쾌락'이란 미녀를 버리고 노력의 길을 쫓는 '미덕'이란 여인을 선택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다.
볶은 콩도 골라 먹는 법이고, 모시 고르다 베를 고르기도 하는 게 세상살이라던가. 선택의 기로에서 헤라클레스처럼 바른 길을 선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춘향선발대회가 전통적인 한국미인을 뽑는 대회라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서구적인 한국미인을 뽑는 대회다. 춘향과 미스코리아는 토종닭과 레그혼의 차이다.
춘향선발대회를 KBS가 주관하게 되면서 나도 몇 번 심사위원의 말석을 차지한 적이 있다.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미인들이 백여 명씩 모여드는 미인 대회인지라 심사도 까다롭다. 1차는 사진심사이고, 2차와 3차는 무대심사였다.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3차 결선까지 심사위원은 다 다르다. 내가 맡은 것은 1차 사진심사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미인들의 사진을 놓고 춘향아가씨를 선택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물보다 사진이 더 예쁜 아가씨도 있을 것이고 대도시에 비해 소도시는 사진솜씨가 모자라는 경우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지 사진심사에서 뽑힌 아가씨들 중에서 진·선·미·정·숙·현 6명의 춘향은 탄생되었고, 그 중에서 탤런트로 특채되어 브라운관을 누비는 미인도 있다. 그러나 미인 중에서 미인을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임을 새삼스러이 느꼈을 따름이다.
3천 궁녀를 거느린 백제 의자왕 정도의 미인 감식안(鑑識眼)은 지녀야 미인선발대회 심사위원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목구비(耳目口鼻)를 분해하여 뜯어보면 저마다 특색이 있어 뵈는 미인도 전체적인 윤곽을 살펴보면 어딘가 미흡한 점이 발견되기도 하고, 양장이냐 한복이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어떤 미인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느냐가 고민이었다. 미인 중에서 진짜미인을 뽑아야 되는 선택의 기로에서 헤매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다소간의 고민이 따르더라도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건, 여럿 가운데 하나를 택하건 선택권을 행사한 사람은 그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쉰 번 맞선을 보고서 맨 처음 만났던 아가씨와 결혼했다는 친구 K군의 결혼 에피소드는 나로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무슨 일인가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신나고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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