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팥죽을 끓이며

2005.12.23 19:05

박은희 조회 수:85 추천:16

동짓날 팥죽을 끓이며
전북대 평생 교육원 수필 창작과정(야) 박은희


"아무리 눈이 쌓여도 동지 팥죽은 끓여야 했다."
새벽부터 함박눈이 내렸다.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스무날 동안 쉬어가며 계속해서 내렸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고 문을 여니 하루종일 소리 없이 내리던 눈은 어느새 무릎까지 차 올랐다. 아무리 기다려도 눈 때문에 버스도 끊기고, 우리 차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죽파카에 털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털장갑으로 완전무장 한 뒤, 찹쌀가루 봉지를 들고서 눈길을 걷기로 했다.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들판위로 환한 달빛이 부서진다.
"뽀드득 뽀드득……."
눈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 몇 발자국 가다 뒤돌아보니 계속해서 내리는 함박눈이 금세 덮어버린다. 얼마쯤 달빛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갑자기 앞이 안 보였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듯 태풍처럼 거센 눈보라가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다. 67년만의 폭설이라 하더니…….
평소 30분 거리를 어떻게 눈보라를 헤치며 왔는지조차 가물거린다. 두 볼은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그 순간 겨울이면 늘 두 볼에 붉게 얼음이 박혀 있던 친정 어머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내 어머니는 북풍바지에서 반평생 동안이나 얼마나 추우셨을까?"
집 가까이 다다르니 하얀 눈사람 모습의 남편이 동구 밖 큰 도로까지 나와서 내가 걸어갈 길의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첫아이 출산을 앞두고 산고를 치를 때였다. 한 번씩 배가 뒤틀면서 진통이 왔다.
"아이고 어머니. 나 죽어!"
나는 한 번씩 진통이 올 때마다 생과 사를 오락가락 하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면,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너 죽으면 나도 죽어!" 하면서 위로를 했다. 그런 광경을 보시던 친정 어머니는 갑자기 사위에게 팥죽 예기를 꺼내셨다. 팥죽은 퍼내면 그 자리가 비어 있을 거 같지만, 퍼낸 자리가 다시 메워지면서 원상태로 돌아온다는 것을 빗대어서 이야기해주셨다. 아직 어린 철부지들이 미덥지 않으셨던지 산고의 그 순간 팥죽 예기를 하실 정도로 매사에 참 지혜로우신 분이다. 매년 동지가 돌아오면 새알을 만들어 팥죽을 끓이며 그때의 지혜로우셨던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금년 동지는 새벽 세시가 시란다. 하얀 구슬 같은 새알을 만들어 팥죽을 넉넉히 끓였다.
조상 님들의 지혜가 담긴 동지 팥죽을 끓이는 의미는 붉은 색이 잡귀를 몰아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또한 동지 팥죽은 잔병을 없애며, 한겨울에 영양 보충을 해서 건강해지며 액을 면할 수 있다고 전해져온다. 우리 민족의 오랜 풍습이기도 하다.
매사에 대충 넘어가는걸 싫어하는 나는 이왕이면 시를 맞추어 끓였다. 그리고 조상 님들에게 물려받은 방식으로 장독, 방, 거실, 부엌 등 아홉 군데에 팥죽을 떠놓으며, 금년 한해의 모든 액운을 거두고 새해에는 우리 가족의 건강과 우리 가정에 자식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길 간절히 기원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어쩐 일인지 자꾸 조상 님들을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