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들의 이야기

2005.12.22 05:47

김영옥 조회 수:102 추천:14

  쓰레기들의 이야기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김영옥


  요즘 컴퓨터를 열면 손자손녀들의 이메일이 가장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오늘은 무슨 말을 썼나하고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열두 살배기 손녀가, 오늘은 할머니가 갖고있는 이야기 보따리에서 재미있는 것 하나 보내달라고 했다. 생각지도 않은 주문을 받고서 한참 생각하다가, 집만 나서면 길모퉁이마다 흉물스럽게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를 보며 늘 느꼈던 일이 생각나서 이야기로 꾸며 보았다.

첫눈이 탐스럽기보다 폭설로 쏟아지던 날, 쓰레기더미 옆을 지날 때 아무도 없는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우려 들어 보았다.

  머리에 눈을 수북히 이고 있던 키 큰 장롱이 추워 덜덜 떨면서 내뱉는 말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따뜻한 안방에 버티고 앉아있으면, 식구들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문을 열고 문안인사를 했었지. 지나치게 문을 여닫다보니 내 몸에는 상처가 나고 피부가 좀 더러워졌어. 이제는 구식이 되었다고 구박까지 하더니 이 추운 날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지.”하며 억울해한다. 바로 옆에 있던 서랍장도 거든다.
“우리들이 가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세요. 아주 먼 나라 밀림에서 몇 십 년을 자라서, 위험한 바다에서 배를 타고 여러 날 잠도 못 자고 이 나라까지 건너왔지요. 장인들이 힘들게 만들어서 장롱, 서랍장, 책상, 침대 등 여러 가지로 변모되어 비싼 값에 안방까지 갔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감기만 들어도 병원에 가면서 우리도 고장이 나면 손을 좀 봐주면 얼마든지 더 살 수 있는데도 사정없이 내다버린단 말입니다.” 억울해하면서, 원망하는 목소리로 더 살고싶다고 투덜거린다.      
  
  찬 눈을 맞고 몸이 다 젖어 땅바닥에 누워 있던 목화솜이불들이
  "우리도 마찬가지야!" 하며 맞장구를 친다.
  "우리도 아주 먼 곳에서 왔어. 처음 어떤 집으로 왔을 때는 우리들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신혼부부에서부터 어린아이들, 노인들까지 다 좋아했었지. 그런데, 난방장치를 기름 보일러로 바꾸면서 무겁다는 이유로 쫓겨났단 말이야! 값싼 나일론 솜에 밀려 이 지경이 되어 불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신세타령을 늘어놓는다. 이불솜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언젠가는 우리들을 몹시 그리워 할 때가 있을 꺼야! 사람들에게 자연 섬유인 목화 솜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어? 사람들은 멍청한가 봐." 화가 단단히 난 목소리였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잡동사니들은
“우리들 몸은 더러워서 부끄러우니까 아무것에나 담아버리면 싫단 말이야. 우리같이 더럽고 재생할 수 없는 것들은 잘 썩지도 않고, 태워도 냄새와 다이옥신이라는 것이 나와서 땅과 공기를 오염시킨대요. 다시는 더러운 몸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될 수 있으면 일회용품은 사용하지 마시고, 규격봉투에 담아 주세요. 검정봉투나 다른 봉투에 넣으면 미화원 아저씨들이 미워해요. 제발, 우리들 말 좀 들어주면 고맙겠어요. 꼭 지켜주세요. 네?”하며 애처로운 소리로 간곡히 부탁한다.

  한쪽 옆에 놓인 긴 통 속에서 얼굴을 삐죽이 내밀고 있던 음식 쓰레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들 음식 쓰레기들을 버릴 때는, 이 쑤시개, 쇠붙이, 단단한 뼈, 같은 것은 잘 골라내고 물기를 쏙 빼서 비닐봉지를 벗겨 통에다 잘 담아주면 고맙겠어요. 우리들은 동물들의 사료가 되고, 퇴비로도 쓰이게 되는 귀하신 몸이에요. 더럽고 냄새난다고 봉투도 벗기지 않고 전갈 떼어버리듯 휙 집어 던지고 달아나면 되나요? 또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도 마구 버리는 못된 젊은 아줌마를 보면, 머지않아 가난뱅이가 될 것 같아 한심스럽고 참 안타깝네요. 먹을 만큼만 만들어 먹는다면 버릴 것이 없지 않을까요? 그러면, 내통이 넘쳐흘러서 냄새가 나지 않아 좋으련만 쯧쯧…….”

  각종 책이나 박스, 신문들은 신이 나서 우쭐댄다.
“우리들은 집 밖에 나오기만 하면 서로 주워가려고 기다릴 정도야. 채 보지도 않은 알림신문도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어 어이가 없어. 우리들은 고물상으로 가면 바로 돈으로 바꿀 수 있어 인기가 좋은데 말이야. 하지만, 유리조각, 패트 병, 풀라스틱, 쇠붙이, 깡통 같은 것은 천덕꾸러기로 여기는데 재활용품은 모두 고루 사랑해 주었으면 해. 자원이 부족한 형편이잖아요? 차별대우는 나쁜 일이에요. 각 가정에서 철저히 분리해서 버려 주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하며 애원한다.    
  캄캄한 통속에 들어있던 헌옷가지들도
“우리들도 한마디해야겠어요. 우리들을 버릴 때는 아주 헌옷은 따로 버려주시고, 입을 수 있는 것들은 깨끗이 세탁하여 단추도 달아주고 손을 좀 봐서 비닐에 싸서 통속에 넣어주세요. 우리들은 다시 어려운 나라로 가서 새 주인을 만나 사랑 받고 싶어요.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답니다. 아시겠지요?”한다.

  쓰레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생각난다. 쓰레기통 옆에, 싹이 조금 난 감자 한 박스와, 수수쌀이며, 어린 무청을 삶아 말린 것, 떡가래 등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것도 버려져 있었다. 시골에서 부모들이 애써 보내온 것 같아서 가지고 와서 이웃과 나눠 먹은 일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배고팠던 경험이 없어서 음식 아까운 줄을 모른다. 지구 한쪽에서는 배를 채우지 못해 앙상한 몸에 눈만 뜨고 있는 처참한 몰골들을 TV로 볼 때면 죄스러워 마음이 아프다.

  할머니는 이렇게 쓰레기들이 잔뜩 화가 나서 사람들의 흉을 보기도하고, 나무라기도 하며 애원하는 소리를 듣고 부끄러워 집으로 달려왔다. 더러운 쓰레기들에게 칭찬은 고사하고  욕은 먹지 않아야지 싶어 온 집안을 휘둘러보았다. 마당 한 구석이 좀 지저분하긴 하지만, 오래 전부터 잘 지켜 오고 있었기에 욕은 먹지 않을 것 같아 다행스럽게 여겼다.

  하늘에는 우주선 쓰레기가 난무하고, 바다에도 폐 선박에서부터 그물이며 강에서 떠내려간 온갖 쓰레기들로 바다가 날로 오염되어 어종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땅은 어떤가? 역시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삶의 터전인 지구를 오염시키는 범인은 바로 사람들이다. 이 쓰레기는 남이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사용한 것들이다. 쓰레기들을 줄이고 철저히 분리하여 잘 버려주면, 쓰레기들에게 칭찬도 받고 땅을 오염시키지 않아 지구 할아버지가 활짝 웃으시지 않겠니? 아름다운 이 땅을 영원히 잘 보존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 모두 힘들여 노력하자꾸나.                        
                                                       2005.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