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우리 집의 10대 뉴스
2005.12.08 08:39
완전한 가족을 이룬 한해
-2005년 우리 집의 10대 뉴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김정자
점심식사 후에 먹은 커피 탓인지, 그제 있었던 모임의 개운치 않은 뒷맛 때문인지 도대체 잠이 오질 않는다. 돈에 얽힌 건망증으로 인한 오해나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선 찜찜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들이 제자리를 잡아 정리가 되었는데도 잠은 오지 않고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새록새록 일어나는 생각들이 오히려 감고 있는 눈 밖으로 시네마로 펼쳐졌다가 사라지고 또 다른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지난 수필공부시간에 '우리 집 10대 뉴스'가 무엇인지 써보라는 숙제가 떠올랐다.
‘우리 집 10대 뉴스라니? 남편에게 물어보면 무어라 대답할까?’
혼자서 남편의 의중까지를 떠보며 생각하다가 기어이 이불 밖으로 나와 불을 켜고 말았다. 벌써 새벽 4시가 넘었다. 잠이 안 오는 지금 이걸 생각하고 아침나절 운동을 하고 와서 낮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싶다.
첫째. 아들과 딸의 결혼
1월에는 막내딸을 11월엔 아들을 잇달아 결혼시켰다. 작년4월에 결혼한 큰딸까지 2년 사이에 아이들 셋을 모두 결혼시킨 것이다. 듬직한 사위 둘과 상냥한 며느리가 들어와 완벽한 가족을 이루었다.
“이제 김 선생님도 죽을 자유가 생긴 거구만…….”
같이 운동을 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에 웃고 말았지만 그새 나이가 그렇게 되었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아들과 딸이 우리 부부가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배우자들을 데려와 주었다는 게 너무 고맙고 기뻤다. 또한 내 아들과 딸들을 우리 집처럼 기쁘게 맞아주신 사돈어른들도 너무 고마웠다. 양가의 축하를 받을 수 있는 결혼이야말로 편안하고 화목한 가정의 첫 출발이 아니겠는가.
둘째. 시집간 두 딸 집 마련
3살 터울의 두 딸은 어려서부터 싸우는 것을 보지 않을 만큼 각별하게 지낸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대신 어려서부터 저희들끼리 생활해서일까? “땡땡땡” 입으로 종소리를 내가며 국어시간이라고 책을 읽고 체육시간이라며 밖에 나가 뛰면서 놀던 딸들은 집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에 다닐 때도 한집에서 오빠와 함께 살았다. 큰딸이 결혼하자 오빠는 직장이 있는 수원으로 막내딸은 언니 집 옆에 오피스텔을 얻어 살다가 1년도 안되어 결혼했다. 같은 서울이라도 좀 떨어져 사는가 싶더니 8월 복더위에 둘 다 좀 무리를 하여 한 아파트 단지에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또래인 두 사위까지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내던 터라 공휴일에 공동구매를 하고 별식도 해먹으며 엄마가 서울로 이사 오라고 성화다. 여자 형제가 없는 나는 가끔 그런 딸들이 부럽다.
셋째. 우리 부부 서 유럽 여행
우리 부부는 서로 모임에서 따로따로 해외여행을 다녀왔지만 정작 부부가 함께 가보질 못했다. 더 나이가 들면 돌아다니는 게 너무 힘들 거라는 주위의 이야기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파리지사의 여행사에 근무하는 조카의 도움으로 경비도 저렴했고 또 파리에서 조카를 만나 남편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하던 색소폰도 살 수 있었다. 바쁜 와중이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남편과 나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처음 본 풍경들이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영화나 TV에서 소개되었던 곳들이지만 처음 보는 수백 개의 꽃등을 매단 것 같은 커다란 마로니에 꽃이 활짝 핀 거리를 잊을 수가 없다.
넷째. '꼬까신 하나'란 수필작품으로 수필가로 등단
이건 좀 부끄럽다. 아직 필력이 부족한데 등단부터 해버리다니…….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내 본 것인데, 그래도 기대는 했었다. 기뻤다. 신인상에 추천해 준다는 잡지사의 연락을 받고 내 글이 인정을 받을 정도의 글은 되는 구나 싶은 마음에 즐거웠다.
또한 수필을 쓰면서 거쳐야할 관문이라면 이렇게 아무것도 모를 때 거치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책이 나오자 앞으로 글을 쓴다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다섯째. 연휴기간 중 가족 여행을 떠나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모인 4박 5일 첫 여행을 설악산으로 떠났다. 작년에는 며느리가 참석치 못한 여행이어서 혼자 온 아들이 걸렸었다. 우리는 전주에서 아들네는 수원에서 딸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어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우리 내외만 빼면 모두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시집간 딸들은 명절을 시집에서 보내야 하니 시간을 맞추는 것은 더 어려웠다. 연휴에 일치감치 조절을 부탁했지만 큰사위는 혼자서 강릉까지만 오는 막차를 이용해 데리러 가는 불편을 겪으며 이루어진 가족 모임이었다.
3일간의 연휴였지만 오고 가는데 시간을 많이 빼앗겨 온전한 하루만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하루를 울산바위에 오르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밀려 콘도에서부터 차를 두고 걸어야했기에 울산바위를 코앞에 두고 돌아서야 했다. 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아이들의 모습은 길가의 코스모스와 잘 어울려 예뻤다. 가족이 자주 모이면 이해의 폭도 넓어지리라. 연휴를 함께 지내고 아이들이 떠나고 남은 2일은 남편과 둘이서 동해안을 여행했다.
여섯째. 큰동서 별세
8남매의 막내인 남편은 맨 위의 큰동서에겐 아들과 같았다. 시골에서 아이들 5남매를 모두 결혼시킨 뒤 고령의 나이에 두 분이 생활하시다가 동서가 정신을 놓아버리게 되었고 대상포진까지 생겨 시숙께서 돌보고 계셨다. 친정어머니와 동갑이셨던 큰동서는 자신의 아들보다 나이가 어린 나를 퍽도 예뻐하시며 챙겨 주시곤 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사이 점점 쇠약해지셨다. 그리곤 그토록 극진히 간호해주시던 시숙 님을 그 시골에 혼자 남겨놓으시곤 세상을 뜨셨다. 당신의 아들·며느리가 모두 직장에 다니는 아들네 집으로 가시기 싫은 시숙 님 혼자서 그 집을 지키는 걸 생각하면 노후 문제가 심각함을 느끼며 혼자 남은 시숙 님이 안쓰럽다. 아들과 딸들이 주말이면 번갈아 내려와 챙겨주지만…….
일곱째. 온 가족 건강한 한해를 보내다
남편이 정기 건강진단에서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꾸준히 건강을 챙겨오는 남편의 노력으로 그런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갑자기 좋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방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온가족이 지금까지 크거나 작은 병으로 고생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에 난 늘 감사한다.
여덟째. 동호회의 사진 전시회에 사진작가인 남편이 참가하다
사진을 배우는 남편은 꾸준히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라북도 관광공모전에서 은상과 입선을 하여 받은 상금으로 결혼 때도 해주지 않았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 주었었다. 해마다 하는 동호회 전시지만 이번에는 출품한 작품을 아이들 결혼 선물로 하나씩 주고 내 친정동네의 양로원에도 한 점을 기증했다.
아홉째. 내가 첫 도자기를 구워내다
올해 처음 시작한 도자기반에서 구워낸 나의 첫 작품을 보며 배운 보람을 느꼈다. 흙을 만지며 머릿속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일은 즐거웠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아 깨트릴 작품이 나온다 해도 앞으로 더 실수 없이 하라는 깨우침일 테니까. 내가 만든 오리를 보며 놀라는 사람들, 그리고 집에 있는 그릇들을 보며 어떤 흙으로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도 배움의 큰 수확이 아니겠는가? 내년도에는 더 작품성이 있는 도자기에 도전해 보리라 지금부터 욕심을 내 본다.
열 번째. 개미와의 동거
어느 날부터인가 개미가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추리를 해보니 봄에 뜯어온 취나 고사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로 강력한 소독을 해야 했는데 원체 자그마하고 우리 부부의 눈도 별로 좋지 않아 어쩌다 눈에 띄면 소독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여름에 많이 남은 쌀에서 쌀벌레가 생긴 뒤 더 늘어난 것은 아닌지……. 개체가 많아 골치가 아팠는데 지난여름의 여행지에서 말 담 좋은 버스기사가 우리 사정을 아는 것처럼,
“노란 은행잎을 양파자루에 담아 개미가 다니는 길에 놓아두면 개미가 없어지니까 꼭 기억하세요!”하는 것이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단풍이 되어 떨어지기를 기다려 두 자루 정도 주워서 이것 저곳에 놓아두었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다시 소독을 했는데 또 다시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혼자서 10가지를 쭉 뽑아서 아침에 남편에게 보여 주었다. 바꾸어야 할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니야, 잘 했는데 뭐. 우리 이만하면 잘 살았네, 무엇보다 건강했으니 된 거 아닐까? 그런데 이 맨 마지막 개미와의 동거는 수필로 다시 쓰면 좋은 소재가 되겠는데 한 번 정리해 보면 어때?”수필을 쓰겠다고 잠을 설쳐대는 내게 주는 배려다.
2005년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좋은 일이 더 많았는데도 속상하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더 많았던 건 왜일까? 우리는 커다란 행복이나 기쁨보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 더 기쁨과 노여움을 느끼며 살아가는가 보다. 사소한 말 한 마디에서도 힘겨워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본질에서 벗어난,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너무 매달리며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뒤늦게 생겼다. 하지만 앞으로도 또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2005년 우리 집의 10대 뉴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김정자
점심식사 후에 먹은 커피 탓인지, 그제 있었던 모임의 개운치 않은 뒷맛 때문인지 도대체 잠이 오질 않는다. 돈에 얽힌 건망증으로 인한 오해나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선 찜찜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들이 제자리를 잡아 정리가 되었는데도 잠은 오지 않고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새록새록 일어나는 생각들이 오히려 감고 있는 눈 밖으로 시네마로 펼쳐졌다가 사라지고 또 다른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지난 수필공부시간에 '우리 집 10대 뉴스'가 무엇인지 써보라는 숙제가 떠올랐다.
‘우리 집 10대 뉴스라니? 남편에게 물어보면 무어라 대답할까?’
혼자서 남편의 의중까지를 떠보며 생각하다가 기어이 이불 밖으로 나와 불을 켜고 말았다. 벌써 새벽 4시가 넘었다. 잠이 안 오는 지금 이걸 생각하고 아침나절 운동을 하고 와서 낮잠이나 실컷(?) 자야겠다 싶다.
첫째. 아들과 딸의 결혼
1월에는 막내딸을 11월엔 아들을 잇달아 결혼시켰다. 작년4월에 결혼한 큰딸까지 2년 사이에 아이들 셋을 모두 결혼시킨 것이다. 듬직한 사위 둘과 상냥한 며느리가 들어와 완벽한 가족을 이루었다.
“이제 김 선생님도 죽을 자유가 생긴 거구만…….”
같이 운동을 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에 웃고 말았지만 그새 나이가 그렇게 되었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아들과 딸이 우리 부부가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배우자들을 데려와 주었다는 게 너무 고맙고 기뻤다. 또한 내 아들과 딸들을 우리 집처럼 기쁘게 맞아주신 사돈어른들도 너무 고마웠다. 양가의 축하를 받을 수 있는 결혼이야말로 편안하고 화목한 가정의 첫 출발이 아니겠는가.
둘째. 시집간 두 딸 집 마련
3살 터울의 두 딸은 어려서부터 싸우는 것을 보지 않을 만큼 각별하게 지낸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대신 어려서부터 저희들끼리 생활해서일까? “땡땡땡” 입으로 종소리를 내가며 국어시간이라고 책을 읽고 체육시간이라며 밖에 나가 뛰면서 놀던 딸들은 집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에 다닐 때도 한집에서 오빠와 함께 살았다. 큰딸이 결혼하자 오빠는 직장이 있는 수원으로 막내딸은 언니 집 옆에 오피스텔을 얻어 살다가 1년도 안되어 결혼했다. 같은 서울이라도 좀 떨어져 사는가 싶더니 8월 복더위에 둘 다 좀 무리를 하여 한 아파트 단지에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또래인 두 사위까지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내던 터라 공휴일에 공동구매를 하고 별식도 해먹으며 엄마가 서울로 이사 오라고 성화다. 여자 형제가 없는 나는 가끔 그런 딸들이 부럽다.
셋째. 우리 부부 서 유럽 여행
우리 부부는 서로 모임에서 따로따로 해외여행을 다녀왔지만 정작 부부가 함께 가보질 못했다. 더 나이가 들면 돌아다니는 게 너무 힘들 거라는 주위의 이야기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파리지사의 여행사에 근무하는 조카의 도움으로 경비도 저렴했고 또 파리에서 조카를 만나 남편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하던 색소폰도 살 수 있었다. 바쁜 와중이었지만 많은 이야기를 남편과 나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처음 본 풍경들이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영화나 TV에서 소개되었던 곳들이지만 처음 보는 수백 개의 꽃등을 매단 것 같은 커다란 마로니에 꽃이 활짝 핀 거리를 잊을 수가 없다.
넷째. '꼬까신 하나'란 수필작품으로 수필가로 등단
이건 좀 부끄럽다. 아직 필력이 부족한데 등단부터 해버리다니…….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내 본 것인데, 그래도 기대는 했었다. 기뻤다. 신인상에 추천해 준다는 잡지사의 연락을 받고 내 글이 인정을 받을 정도의 글은 되는 구나 싶은 마음에 즐거웠다.
또한 수필을 쓰면서 거쳐야할 관문이라면 이렇게 아무것도 모를 때 거치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책이 나오자 앞으로 글을 쓴다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다섯째. 연휴기간 중 가족 여행을 떠나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모인 4박 5일 첫 여행을 설악산으로 떠났다. 작년에는 며느리가 참석치 못한 여행이어서 혼자 온 아들이 걸렸었다. 우리는 전주에서 아들네는 수원에서 딸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어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우리 내외만 빼면 모두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시집간 딸들은 명절을 시집에서 보내야 하니 시간을 맞추는 것은 더 어려웠다. 연휴에 일치감치 조절을 부탁했지만 큰사위는 혼자서 강릉까지만 오는 막차를 이용해 데리러 가는 불편을 겪으며 이루어진 가족 모임이었다.
3일간의 연휴였지만 오고 가는데 시간을 많이 빼앗겨 온전한 하루만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하루를 울산바위에 오르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밀려 콘도에서부터 차를 두고 걸어야했기에 울산바위를 코앞에 두고 돌아서야 했다. 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아이들의 모습은 길가의 코스모스와 잘 어울려 예뻤다. 가족이 자주 모이면 이해의 폭도 넓어지리라. 연휴를 함께 지내고 아이들이 떠나고 남은 2일은 남편과 둘이서 동해안을 여행했다.
여섯째. 큰동서 별세
8남매의 막내인 남편은 맨 위의 큰동서에겐 아들과 같았다. 시골에서 아이들 5남매를 모두 결혼시킨 뒤 고령의 나이에 두 분이 생활하시다가 동서가 정신을 놓아버리게 되었고 대상포진까지 생겨 시숙께서 돌보고 계셨다. 친정어머니와 동갑이셨던 큰동서는 자신의 아들보다 나이가 어린 나를 퍽도 예뻐하시며 챙겨 주시곤 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사이 점점 쇠약해지셨다. 그리곤 그토록 극진히 간호해주시던 시숙 님을 그 시골에 혼자 남겨놓으시곤 세상을 뜨셨다. 당신의 아들·며느리가 모두 직장에 다니는 아들네 집으로 가시기 싫은 시숙 님 혼자서 그 집을 지키는 걸 생각하면 노후 문제가 심각함을 느끼며 혼자 남은 시숙 님이 안쓰럽다. 아들과 딸들이 주말이면 번갈아 내려와 챙겨주지만…….
일곱째. 온 가족 건강한 한해를 보내다
남편이 정기 건강진단에서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꾸준히 건강을 챙겨오는 남편의 노력으로 그런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갑자기 좋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방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온가족이 지금까지 크거나 작은 병으로 고생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에 난 늘 감사한다.
여덟째. 동호회의 사진 전시회에 사진작가인 남편이 참가하다
사진을 배우는 남편은 꾸준히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라북도 관광공모전에서 은상과 입선을 하여 받은 상금으로 결혼 때도 해주지 않았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 주었었다. 해마다 하는 동호회 전시지만 이번에는 출품한 작품을 아이들 결혼 선물로 하나씩 주고 내 친정동네의 양로원에도 한 점을 기증했다.
아홉째. 내가 첫 도자기를 구워내다
올해 처음 시작한 도자기반에서 구워낸 나의 첫 작품을 보며 배운 보람을 느꼈다. 흙을 만지며 머릿속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 일은 즐거웠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아 깨트릴 작품이 나온다 해도 앞으로 더 실수 없이 하라는 깨우침일 테니까. 내가 만든 오리를 보며 놀라는 사람들, 그리고 집에 있는 그릇들을 보며 어떤 흙으로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도 배움의 큰 수확이 아니겠는가? 내년도에는 더 작품성이 있는 도자기에 도전해 보리라 지금부터 욕심을 내 본다.
열 번째. 개미와의 동거
어느 날부터인가 개미가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추리를 해보니 봄에 뜯어온 취나 고사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로 강력한 소독을 해야 했는데 원체 자그마하고 우리 부부의 눈도 별로 좋지 않아 어쩌다 눈에 띄면 소독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여름에 많이 남은 쌀에서 쌀벌레가 생긴 뒤 더 늘어난 것은 아닌지……. 개체가 많아 골치가 아팠는데 지난여름의 여행지에서 말 담 좋은 버스기사가 우리 사정을 아는 것처럼,
“노란 은행잎을 양파자루에 담아 개미가 다니는 길에 놓아두면 개미가 없어지니까 꼭 기억하세요!”하는 것이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단풍이 되어 떨어지기를 기다려 두 자루 정도 주워서 이것 저곳에 놓아두었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다. 결국 다시 소독을 했는데 또 다시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혼자서 10가지를 쭉 뽑아서 아침에 남편에게 보여 주었다. 바꾸어야 할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니야, 잘 했는데 뭐. 우리 이만하면 잘 살았네, 무엇보다 건강했으니 된 거 아닐까? 그런데 이 맨 마지막 개미와의 동거는 수필로 다시 쓰면 좋은 소재가 되겠는데 한 번 정리해 보면 어때?”수필을 쓰겠다고 잠을 설쳐대는 내게 주는 배려다.
2005년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좋은 일이 더 많았는데도 속상하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더 많았던 건 왜일까? 우리는 커다란 행복이나 기쁨보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 더 기쁨과 노여움을 느끼며 살아가는가 보다. 사소한 말 한 마디에서도 힘겨워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본질에서 벗어난,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너무 매달리며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뒤늦게 생겼다. 하지만 앞으로도 또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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