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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4시집
2025.05.17 12:09

혼자 수영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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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수영하지 마시오  / 이월란

 

 

 

커다란 경고문 앞에서 혼자 수영한다

혼자 하지 않은 일을 떠올리는 건 물속에서 숨을 쉬지 않는 것보다 어렵다

가슴에서 쥐 한 마리 튀어나와 벌컥 잠기는 일은 실험실에서나 일어난다고

믿어서 가벼워진 물고기는 혼자 하지 않은 일을 헤엄치듯 떠올린다

 

동화 속 인어공주는 늘 혼자여서 불행해지거나 행복해지는데

물살을 찢을 때마다 갈기갈기 혼자가 되는 수심의 깊이

 

들숨과 날숨 사이 물귀신처럼 혼자 살아낸 증거들이 맑다

중력과 부력 사이에서 떠오르는 사람

물에 대한 공포를 잊은 적이 없다

수경에 비친 바닥에서 겉과 속이 다른 얼굴이 일렁인다

삼천 미터 수심의 바다를 가졌다

발목을 잃어버리고 길어지는 손을 따라간다

물밖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다

 

혼자가 아니어서 무서울 게 많은 세상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어항에 갇힌 기분이 헤엄친다

나무의 그림자가 소복소복 물속에 잠기는 중이었다

고인 물이 썩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수초에 목이 메어 물속에서도 조갈증에 걸렸다

 

햇살이 물별처럼 반짝인다

내게 날개가 없다는 것을 엄만 일러주지 않았다

결핍을 알아차리는 건 도망자가 되는 것이었다

내게 지느러미가 없다는 것을 엄만 일러주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없다

심해어처럼 투명해지는 착각에 빠진다

수압을 견딘 고통의 실루엣처럼 깊을수록 기괴하단다

같이 쉴 수 있는 숨도 세상엔 없다

이윽고 물의 정령에 물든 날개를 지느러미로 착각한

 

나비 한 마리, 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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