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르는 방 / 이월란
빈 상자가 쌓여가는 방이 있다
상자 위에 더 작은 상자 그 위에 더 작은 상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방이 자라고
방이 사라졌을 때 작은 상자를 큰 상자 속에 넣기 시작했다
입이 열리면 팔 할로 차오르는 공허
상자와 상자 사이에서도 시간이 알을 낳고 있었다
입 무거운 침묵과
손 타지 않은 어둠으로
배를 채운 각들이 경계를 벗고
텅 빈 머리에는 약속 없는 오후가 들어 있다
잠들기 좋은 허기와 눕혀두기 좋은 바닥
정수리를 열어 잠깐씩 들어갔는데
어느 빔에서 잠들었는지 묵직함을 찾아 하루를 걷어차 버린 적도 있다
땅을 빼앗기는 원주민처럼 칸칸이 부재를 증명한다
텅 빈 유년이 가득 찬 엄마를 바라보다
마지막 캔디가 남은 깡통을 흔들면
수많았던 엄마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처럼
열 때마다 태어나고 닫힐 때마다 가슴이 된다
깨지기 쉬운 것을 품어낼수록 화려하고 안전하다
다시 들어간다면 상처가 아물 거라는 착각으로
속을 비우고도 흔들리지 않는 이 당당함을
버려야 한다
버릴 수가 없다
담을 것이 불현듯 생겨난다면 담아야 하니까
더 이상 쌓을 높이가 없다
보석반지가 들어 있던
가장 작은 상자부터 삼키기 시작한다
상자가 나보다 커졌을 때 사각으로 몸을 접어 상자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의 눈에 점을 찍고 엄마 몸속으로 들어간 마트로시카
이 방은 비어가는 방일까 차오르는 방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