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르드를 건너는 시간 / 이월란
유목의 끝에는
고스란히
수장되어 있는
유목의 꿈
매몰된 시간과
갈라진 길이
만났을 것이다
가라앉은 탄피들이
물을 먹고
사는 곳
기억과 통증의
빛으로 태어난
홀로그램이
물고기처럼 떠다닌다
살아낸
빙하의 시간
젖지 않으려
몸부림치다 보면
건너게 된다
깊이가 끊어진 곳에 방치된 녹조가 떠다닌다
무릎의 시간이 해저를 긁어내는 소리
아기 빙하를 품은 차가운 가슴으로 늙은 빙하를 품은 수심의 온기는 발밑에 멈추었다
우레와 같은 밤을 부수어 바람의 늪에서 두둥 태어나는 큰빗이끼벌레의 독성처럼
두드리는 수문을 열면 절벽이 태어났다
빠진 발이
바닥을 몰라
자꾸만 길어지는
꿈에서 깨어난
아침이 절룩인다
새가 된 왼손과
새장이 된
오른손 사이
떨어뜨린 목숨 하나
건지고 싶은
시간이 떠오른다
유속을 잃어버린
침묵을 건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입구를 지나면
세상도 주문할 수 있는
검색창 같은 수면에
떠오르는 얼굴
그리움이 살아나는
새장 하나
건질 수도 있다
빙산의 그늘로도
속속들이 배어든
물소리
통증 깨듯 쇄빙선 지나간 뱃길을 크루즈처럼 다녀간 물자국을 지우느라
어디선가 있을 진짜와 점점 멀어진다
또 다른 시간이 산다는 신앙을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다 보면
인적 없는 곳의 인적처럼 내가 무서워진다 환혼을 떨쳐내는 날갯짓
물과 깊이가 만들어 내는 이중주의 사슬에 두 눈이 걸려 있다
아무도 없어야 하는 자리에 귀신처럼 출몰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해진 자리, 바다의 적조가 하늘에 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