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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4시집
2025.05.17 12:20

그루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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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밍 / 이월란

 

슬픔이 짖기 시작했어

한순간의 야생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기억에는 다양한 품종이 있지

어떤 것을 좋아하면 모든 것이 그것 같이만 보인다는

개 같은, 모든 것이 개 같은

 

콩팥을 이어받아 콩이나 팥처럼 생긴 밥을 주로 먹는구나

한 개 두 개 세 개 헤아리다 보면 개가 되는

고독의 사료를 치사한 유인책으로 쓰고 싶진 않았는데

외롭다고 죽어버리는 세상은 이미 세상에 없네

웃지도 울지도 말 것

버려질 땐 황량한 똥을 누고 슬플 땐 터무니없는 하울링

 

깡충깡충 죄를 뛰어넘는 슬기로운 산책길은

하고픈 말 삼켜내는 몸 달아오르는 길

길 없는 곳마다 표지판처럼 꼬리가 흔들려

묘목처럼 심어두고 화초처럼 키워 볼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초인종처럼 수다스러워

서클에 둘러싸인 달콤한 하우스로 들어가 버려

 

위선을 배우는 날은 작은 고개가 23.5도로 기울어졌네

환절의 목을 가누는 지구의 뒷모습을 닮아가

불안을 마킹한 자리에 떠도는 영역

눈빛만으로 털이 자라는 두근거리는 하네스를 가진 거야

목줄을 놓치면 너는 쏜살같이 사라지는 시간

 

갑자기 위태로워졌을까 분리불안을 지진처럼 겪어내야 하다니

발바닥을 핥고 항문을 핥는 밤은 지나치게 투명해

너의 평수를 뒤지고 있어 어디에서 사육당하고 있는 건지

물컹하고도 따뜻한 포옹은 추문이 가득한 비밀창고

슬리퍼를 물고 옷장으로 기어들어 가는 건 손톱을 물어뜯는 기분일 거야

작은 짐승의 예쁜 눈은 생각부터 먹어치우네

 

복숭아뼈를 지나 종아리까지 첨벙대다

신발을 귀에 대고 파도치는 입에 한 스푼의 불행을 겪어봐

목에 칼이 와도 입을 열지 않는 비밀이 절뚝이네

두 개의 불구가 만나기 직전이야

 

햇살 촘촘한 빗으로 아침의 눈곱을 떼고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이 되어도 좋아

나의 밖에서 너의 밖에서 우리의 안이 되어가네

교미의 흔적은 허구였어

살이 살을 먹는 불강아지의 계절

너를 이식한 상처에 새살이 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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