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 / 이월란
누구일까
반사되는, 집중하기에 너무 해묵은 빛
눈동자로 작아지는 기색을 감출 수 없습니다
너는 내가 보이니?
무심코 떠오르는 생각이 내가 되다니
생각이 짓무른 날 나를 하나씩 버립니다
립스틱과 입을 맞추며 나는 핑크색입니다
손수건을 접으며 나는 닦을 수 없는 눈물입니다
열쇠를 흔들며 나는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저물녘이면 발이 저려옵니다
운명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일 겁니다
닿을 수 없는 숨은 여행이 돌아다닙니다
미개한 맹목이 우거집니다
생각의 무게를 빼면 어둠으로 타는 그림자
망설이는 목숨이 한 점씩 떨어져 나올 법도 합니다
이게 뭐지
돌아보다 넘어지는 장애물, 슬픔의 외피를 가진 유물입니다
높은 선반 위에는 조금씩 남아 있는 나를 모아두었습니다
내가 묻고 네가 대답하면 내가 되는 오늘
어제의 끝말이 치매에 걸렸습니다
만삭의 하루는 양수처럼 흘러내리는 울음소리
아이의 말을 따라 하고 아이의 머리를 빗기다 보면 내가 있을까요
주문한 듯 내가 왔을 땐 이미 착각이 나를 다 써버린 후
낭비되기 좋은 내가 다시 배달되는 아침입니다
물방울이 매달린 만큼 과육이 붉어지는 열매가 되고 싶었습니다
눈물만큼만 무거워지는 존재의 기슭, 물과 닿은 한 줌의 땅에 불과했습니다
버릇처럼 서로 모른척하기 바빴습니다
유행하는 옷을 입고 유행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닮아갈지도 모릅니다
외도는 것들의 종착지가 되지 않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멀어지기 마련이니까요
대체로 너무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을 꿈꾸어갑니다
나를 모면하지 못한 위기의 날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을 향하고 있겠지요
간절히 원한 적도 없이 때마침 내게 중독되어 있습니다
밝히는 눈이 되었습니다
숨기는 범인이 되었습니다
상습정체구간에서 정체를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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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선택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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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를 향해 옮겨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