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가방 / 이월란
가방 하나 갖기 위해 먼 길을 떠난 거야
엄마가 집을 나가버린 어린 날
들어가 살만한 큰 가방을 꿈꾸었어
그래서 지구 끝에 닿으면 못이기는 척
눌러앉고 싶었지
눈 침침한 바늘에 끼워주던 길고 긴 실
돌아온 엄마의 두 팔이 눈을 흘기며, 가시나
울매나 먼데로 갈라꼬 이래 기노
책가방에 한쪽 세상이 기울던 어깨 너머
비척거리던 꿈이 들고 온
국경 너머의 세상
바다를 건너면 다섯 번째 계절로 다시 태어날 거야
이별을 꾸려 가방을 싸면
바람의 속도가 따라와
날개의 높이가 따라와
불법체류까지 서둘러 동여맨 이민 가방
채울 때마다 길이 되어
들고 가다 보면 짊어지게 되는
그리움의 무게
해저를 지나는 기차는 왜 과거로만 달려가는지
태평양을 도로 건너갔을 때 가방이 따라오지 않은 적이 있었어
할 말을 잃었을 때
가방을 뒤지는 버릇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어
길을 잃었을 때
가방을 고쳐 매는 버릇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