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공원 / 이월란
하나의 공원으로 가고 있었어요
벤치는 생각처럼 앉아 있고 나무는 기다림처럼 서 있는 곳이에요 먼 곳들이 모여 있는 가까운 곳이죠 낙서장의 유서처럼 찢어버려도 그만인 날, 악몽이 깃들지 않는 서정적인 취향 그대로 식상해진 나를 지나쳐버려도 좋은 날이에요 초록 사이로 뒷모습들이 걸어 다녀요
입구에서부터 피클볼 소리가 팡팡 날아다녔어요 주고받는 운명이 저리도 가볍다니 서로 받지 않겠다고 사치를 부리네요 쳐다볼수록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번갈아 거절당하는 피클볼이 되었어요 주로 허공에 떠 있었죠 퍽 하고 떨어진 공이 철조망을 따라 굴러가요 운명처럼 따라가요
통통 걸어가던 피클볼이 꿈틀, 경계를 깨워요 체크무늬 셔츠가 배를 깔고 누워 있어요 겨우 생겨난 구석의 그늘을 하루 쓰고 버리는 일회용 지옥처럼 부둥켜안고 있어요 홈리스적인 침묵이 시체스러워요 부피를 버린 나뭇잎처럼 전혀 입체적이지 않아요 바람 불면 날아가겠죠 발끝에 피어 있는 꽃은 더욱 보들레르적이구요 보이는 실체보다 그의 알리바이가 궁금해진 건 순전히 하나의 공원에 온 탓이에요
나갈 때까지 하나의 공원이길 바랬어요 오직 두 사람 사이의 피클볼이길 바랬어요 그저 무료해진 공원을 슬쩍 달래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기어이 팡팡 천국과 체크무늬 지옥을 건설해버린 두 개의 공원을 결코 나오고 싶지 않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