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 이월란
나중에
가장 먼저 물에 잠길 도시가 여기래
그 말을 하며 그녀가 웃고 있었는지 나를 가여워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서 사는 나는 그때부터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간다는 건 물이 차오른다는 것
발목을 내려다보며 뒷걸음질 쳤고 무릎을 기울이며 뒤돌아보았다
허리를 감싸던 두 팔을 다시 풀어도 보았다
가슴 뚝뚝 끊어지던 지점에선 손을 깊숙이 찔러 넣어도 보았다
목이 잠길 즘엔 왜 워터월드 주인공의 얼굴이 떠올랐을까
서사가 아닌 재난이었다
물이 베껴 품은 그림자 속에 내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를 관통한 나의 이야기가 침잠하고 있었다
마른 땅을 찾아 헤매던 노아의 새는 마침내 돌아오지 않았다
맨땅을 찾지 못해 우르르 날아오는 새 울음에
폐사한 물고기처럼 배를 뒤집고 떠 있고도 싶었다
댐처럼 붕괴한 입술 틈으로 도시가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주사 맞는 순서를 정할 때처럼 온몸이 따끔거리는 세상은
흐르는 물속에서 불을 피워 심는 것이었다
다르지 않은 허공과 물속이 수평선 하나로 갈라진 착시였다면
아홉 번을 살아남고도 아직도 무서운 것이 남아 있다니
남은 한 번을 받아넘기지 못해 아직도 두렵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도 나도 잘못한 것이 없었다
아픈 자리를 모두 떠나왔다는 사실에 다시 물이 차오른다
그녀가 휩쓸려간 자리에 수문이 열려 있었다
그녀를 지운 자리에 물이 차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