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학 개론 / 이월란
-나는 악마를 모른다-
천사가 강림하신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제의 다리를 건너면 무지개가 되는 이야기
입을 열면 불이 뿜어져 나오고 손을 뻗으면 빛나는 화살이 당겨지는 악마를 보았다
세포분열처럼 갈라지는 얼굴 하나씩 표적으로 세워두면
나를 버린 엄마가 제일 먼저 쓰러진다
하나의 악마를 둘러싼 수많은 천사들은
지구를 둘러싼 UFO처럼 증인과 소문에 휘둘리는 진실이 되고
스스로 타락하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과정
식탁에 올라 허기를 먹어 치운 거대한 짐승은
사막이 먹어 치우는 순서에 따라 오묘한 이름들을 남기고 사라졌다
달콤한 이교신은 타락한 진실의 아버지
고발하는 입
비방하는 입
을 벌리면 새로운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번개처럼 떨어지는 사탄을 받아먹은 것은
분노의 입
중세 말의 벽화에서는 믿지 않는 아기들이 태어나고
해피엔딩을 추앙하며 서로의 눈을 멀게 한다
악의 비중이 점점 늘고 있음을 쓰다듬듯 잊어준다
악역 배우의 인지도가 가장 빨리 올라가는 눈부신 스크린
파고든 어둠의 안식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
조건을 단 사랑에 조건을 지웠더니 사랑도 사라졌다
가장 좋아하는 옷은 악마의 두 손으로 짜인 섬세한 종말
삭이지 못한 화가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망상으로
자기복제를 깨닫는 순간
개연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그린다
그릇에 담긴 파도소리가 증발한다
네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의 차이가 만든 세상은 자꾸만 더 넓어지고
범인이 없는 사건이 매일 터진다
애매한 위치가 서로의 주소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