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곡아리랑/아버님께 바치는헌시ㅡ시해설
2015.07.18 18:41
그리움의 부활을 위해 흘린 혼의 피(血)
박영숙영의 ㅁ사부곡(思父曲)아리랑ㅁ에서
박양근 (문학평론가, 부경대 교수)
박영숙영을 위한 프롤로그
2002년 현대시문학에서 추천받은 재미시인 박영숙영이 오랫동안 소망해 오던 한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그 시집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으류은 “사부곡 아리랑”으로서, 가난과 죽음을 백합만큼 순결하고 라일락보다 붉은 핏빛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사랑과 그리움의 서정시인 답게 그녀의 시적 마그마는 상실의 그리움, 회오의 속죄의식, 미래지향적 사랑을 노래하는 언어가 넘쳐난다.
본명이 박영숙인, 박 시인이 추구하는 그리움은 본질적으로 존재의 부활을 노래한다. 사랑의 봉홧불이 밤새워 타오르는 가운데 묵언의 기도를 바치는 춤꾼으로서 그녀의 손짓이 가리키는 대상은 지극히 낮음으로, 지극히 높은 아버지와 어머니 이다.
군인의 아내로서 미국에서 가정을 이룰 동안 양친에 대한 그리움은 그녀를 살아있게 하는 관계 짓기였다. 나아가 시(詩)이기도 했다.
문학의 상상에서 출생과 죽음은 첫, 그리고 끝 관계 짓기에 해당한다. 프로이드의 심층심리학이나, 프레이즈의 신화원형론을 빌려 오지 않더라도 사랑, 원망, 비탄, 아픔과 같은 다향한 감정을 노출시킨다. 그러므로, 그리하여, 박영숙영은 태생적으로 시인일 수 밖에 없다.
박 시인이 상재한 세권의 시집, “영혼의 입맞춤”(2006), “사막에 뜨는 달”(2008),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2010)에 깔려있는 모티프는 영원성이다. 영원성은 산자와 죽은 자를있는 탈 시간적 교감으로서 소멸하지 않는 시적 영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민 시인의 경우, 그 ‘시’세계는 뿌리 찾기로 나타난다. 첫 시집 ㅁ영혼의 입맞춤ㅁ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는 박영숙영의 정체성을 되살려 시인으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선언한다.
ㅡ그런데 어느 날 샴페인 병을 심하게 흔들었다 뚜껑을 열은 것처럼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써 본것을 “휴스톤 코저널” 독자투고란에 투고한 것이 발표됨으로 해서
박영숙영 이란 내 이름을 찾게 되면서 , 60 고개에 올라서서 오늘, 이 시집을 내게 되었다ㅡ
“천상에 께신 부모님께” 헌정한 첫 시집은 더 이상 만날 수도 다가설 수도 없는 영혼의 강에 얹힌 다리 역할을 한다. 그 심미적 교각에 바친 것이 사랑이다. 그녀의 사랑은 남녀간의 격정이 아니라 숭배에 가까운 감사와 용서의 언어로 엮어진다. 고독의 시간을 가짐으로서 고독하지 않은 만남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그리움과 고독 속에서 고향을 만나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며 시를 쓴다.
시를 쓰는 건 내 마음을 비워 내는 것이고,
시를 쓰는 건 용서를 배워가기 위해서이며,
시를 쓰는건 사랑을 배워가기 위해서이다. -ㅁ사막에 뜨는 달ㅁ 서문 일부
박 시인이 시를 쓸 때 “고향과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 용서와 사랑을 배운다”라는 고백은 막막한 이민생활에 위안과 희망을 준 것이 시(詩) 임을 인정한 말이다. 그래서, 제 3 시집 ㅁ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ㅁ는 이민자의 고독과 부모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융합하고 있다.
나아가 박 시인이 사막같은 현실을 이겨내기 위하여 붙든것이 아리랑 모국어이다. 그녀에게 아리랑은 유랑과 별리의 노래이고 모국어는 애국과 국력의 상징이다.
박 시인은 [박연의 피리소리 국악소리], [모국어도 국력이다], [겨울나무 그대는]을 대표시 목록의 앞자리에 두어 그 결의를 나타낸다. 이런 시적 구도는 [자랑스러운 코리안 아메리칸] 이라는 정체성을 확인 시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리랑과 모국어가 박 시인의 표현 수단이라면, 부모는 그의 시혼을 받쳐주는 초석에 해당한다.
진지한 주제일 수록 언어는 긴장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아버지라는 거룩한 이름]과 [나는 엄마의 어린 딸]은 ㅁ사부곡 아리랑ㅁ이 지닌 주제의식을 충분히 예언해 주고 있듯이 박시인의 영원성은 효(孝)에 뿌리를 둔다.
아부지와 사부곡 아리랑
박영숙영 시인은 진해에서 박씨 가문의 칠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밀성대군 박은침과 국악의 아버지인 난계 박연의 후손이라는 이름만으로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을 기개를 물려 받았다.
진해 해군공창 통제부 공무과에서 타자수로 근무, 서울 여의도 비행장 단장실에서 비서로 근무하고, 서독으로 가기위해 간호 보조학원을 다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75년 평생의 반려자인 Ukrainian(Ukraine) 3세, 집안은 전통적으로 천주교인 청년 장고를 만나 초청으로 미국와서 결혼하였다. 1남 1녀의 다복한 가정을 이루어 타국에 살면서도, 외국인들의 눈에
그녀의 행동이 한국사람을 재는 자가 되지 않도록, 자랑스런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녀는 결혼 26년이 되는 해에 시인의 자리에 올라선다. 정체성은 언제고 드러나게 되듯이 국제결혼의 이민자였던 박 시인은 부모님의 사진을 보는 순간, 양친에 대한 트라우마를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에 담았다. 이로써 그 사랑과 그리움은 박시인의 후반기 ‘시’세계를 이루게 된다.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 그 사랑줄기에 / 오늘은 또 다른
삶의 향기 꽃 피우며 / 내일을 여는 미래의 문 앞에서 /
행복한 듯, 수줍은듯 / 당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습니다
박시인은 님에게 다가선다. 그녀의 님이라는 당신은 부모이다. 30주년 축시로 모성애를 노래하기도 한 그녀는 휴스턴의 봄철에 피어나는 진달래와 목련에서도 고향과 부모님을 떠올린다. 주변의 모든 자연물은 부모님의 정을 상기시켜주는 기호들이었다 .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으로부터 태어났고 죽을때는 자식들의 사랑속에 전송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는 구절을 음미하면, 역설적으로 자식의 간호를 받지 못한 채 세상 떠나신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 점에서 박영숙영의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는 –ㅁ사부곡 아리랑ㅁ의 서문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박영숙영 시인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박 시인은 아버지라는 이름 앞에’거룩함’이라는 말을 붙인다. 거룩함이란 신성하고 성스런운 것에 바치는 찬사의 말이다. 시에 나타난 그녀의 아버지는 조초하지 않는 배처럼, 전장에 나선 장군처럼, 삭풍을 마주한 겨울나무와 같은 인격을 지니고 있다.
숨을 곳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거친 파도와 싸우며
한 잎 나뭇잎처럼 흔들려도
좌초하지 않고 살아 남아서
항구로 돌아가야 하는 돛단배
(중략)
삶의 멍에를 등에 지고서도
김종서 장군처럼, 이순신 장군처럼
밀려오는 세상파도 막아서서
가족을 지켜내며
‘시저’처럼 ‘나폴레옹’처럼
전쟁에서 승리한 용감한 장군처럼 당당히
자식들 앞에 서면
삶의 스승이 되어야 하는
아버지란 이름을 가진 거룩한 사람은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이다. -[아버지란 거룩한 이름] 일부
나아가 박 시인은 거룩한 아버지에 “고독하고 외롭고 가난한 존재”를 덧붙인다.
가장은 누구나 역경을 홀로 짐 지는 삶을 감수한다. 박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아무것도 갖지 못하였다고 회상한다. 아버지가 가진것은 “낡은 바지, 낡은 구두, 낡은 자전거” 뿐이었지만 자식 사랑과 희생에서는 누구보다오 풍요로웠다.
아버지는 “곤장치는 바람에 가지가 부러져도 / 천 년의 기둥처럼 버티고 서서 /
오직 현실만을 인내하는” 겨울나무의 이미지를 갖는다.
박 시인은 거룩하고 외로운 아버지를 언어로 되살릴 때 한행의 시어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아버지가 치열한 삶을 살았으므로 박시인도 치열하게 언어를 걸러내려 한다. 항상 하나의 심장에는 삶으 무게를, 다른 심징에는 세월의 깃발을 담아 아버지의 초상화를 완성해 간다. “선혈 한 방울, 대나무의 빈 속, 가슴속 푸른 칼, 친구 없는 타향살이, 천년의 기둥” 등은 아버지의 세월을 기리는 결정화된 언어 들이다.
언어에 대한 박 시인의 감식력은 ‘아버지’와 ‘아부지’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아버지가 법류적, 사회적 용어라면, 아부지는 향토적, 혈연적 용어에 속한다. 전자가 지성에 호소한다면, 후자는 감성에 기댄다. 예순 나이를 넘겼어도 박 시인은 아버지의 넓은 품과 따뜻한 말을 목말라 한다. 하지만 눈을 뜨면 “오냐 내 딸이가” 하던 아부지의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하염없이 그리움을 마시며
남빛 후르게 뻥 뚫린 우주 속으로
당신께서 바람 따라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신
그 길을 조금씩 더덤어 가고 있으면서
손나팔 만들어서 불러보는 당신의 이름
“아부지~이…..”아부지~ -[아부지] 일부
박 시인은 아부지가 “바람 따라 우주 속으로 훌쩍 떠났다”고 말 한다. “손나팔 만들어 당신의 이름을 연이어 부르며” 아부지가 사라진 길을 아무리 더듬어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 그리움은 맨발로 흘리는 선혈의 자국을 남긴다.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 가시는 임게게 꽃잎을 뿌린다면 박 시인은 떠난 아부지를 위하여 피를 토하는 언어를 주단에 깐다. 그것이 –ㅁ사부곡 아리랑ㅁ의 본질알 하겠다.
한국의 아버지는 가난하다. 무더운 여름날 간장물을 마시던 어버님의 눈과 마주치던 순간을 박시인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피를 말리는 긴긴 여름날의 허기를 참으려고 / 한 바가지 엄마의 눈물에 간장보다 더 쓴 / 소태 같은 아버님의 한을 타서 마시던 모습”([선혈 한 방움])은
무엇보다 가난을 극복하여햐 겠다는 극기심을 딸 박영숙영에게 물려준다.
박영숙영 시인이 아버지에게 바치는모든 헌시( 獻詩 )는 아버지를 그리며 살아가는 일종의 민족적 아리랑이다. 그녀의 시는 아버지를 그린 일종의 전기력(傳記曆)이지만 현실에서는 노구의 아버지를 끝까지 지켜 주지 못하였다. 포항에서 살다가 진해로 가다가 실종되었다는 아픔을 담은 – [나는 용서받지 못할 대 되인이다]ㅡ라는 시는 그 점에서 한의 아리랑이다.
(전략)
밤이고 낮이고
사방 석빙고 속에 홀로 앉아
넋을 놓고 창을 통해 바라보며
구만리 창공 속을 헤맸을
아부지의 그 마음속에 넘쳤을 그리움
아부지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홀연히 집을 나서서
어디론가 떠나가신 아부지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용서받지 못할 대 죄인이 -[나는 용서받지 못할 대 죄인이다] 일부
“아부지는 무인도 섬이 되셨다”는 공간성은 불효여식의 좌절감을 표현한다. 참회의 고백에 붙여진 <작가노트>는 다음과 같다.
어느 노점 상인의 말로는 아부지가 제 자리에서 3일을 기다렸다는 한탄은 세상을 등진 아버지에게 바치는 끝말이다. 그러나 박 시인은 아버지에 대한 불효를 일반화 하여 [여보게 젊은이, 그대 부모님은 안녕하신가] 라는 오브제로 풀어낸다. 사부곡에 깔린 침묵의 고해를 효라는 오브제로 확장시킨 것이다. 박영숙영 시인의 시가 서사적 서정성을 지닌다면, 그 이유는 개인의 속죄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도록 외연을 넓힌데 있다 하겠다.
사모곡에 핀 어머니 상
박영숙영 시인은 두번째 아리랑으로 어머니의 혼을 일으켜 세운다. 그녀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밤낮으로 일을 하고, 늦도록 자식을 기다린다. 박 시인의 어머니도 자식을 위해 뙤약볕과 장맛비 노동을 견디며 평생을 보냈다.
그 눈물과 땀을 기리는 시편이 [사목곡 아리랑]이라하겠다.
어머니에 대한 박 시인의 회상은 세 가지다. 첫째는 “산기슭 거친 밭을 갈다가 두 다리를 뻗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슬픈 눈빛”이다. 두 번째는 “친정 온 첫딸을 위해 / 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사 오셨던 / 알이 꽉 찬 / 노란 옥수수”이다. 세 번째는 어머니의 임종을 맞이하였들 때 지켜본 “말 한 마디 못한 채 바라보던 잿빛 눈빛”이다.
시인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일생은 오직 비통하고 슾픈 풍경뿐이므로 “내 영혼에 피 묻은 그리움”의 노래로 답하려 한다.
손톱 발톱 다 닳아서
살결이 말발굽으로 변하도록
봄이면 산나물 뜯기
여름이면 미꾸라지 잡기
이웃이 부르면 품삯 받고 일해주기
겨울에는 낯선 동네 헤매는 무속인 되어서
고지를 점령하는 장군처럼 용감하게
힘차게도 밟고 넘던
이 고개, 저 고개, 아리랑 고개 -[사목곡 아리랑] 일부
사계절 내내 일만 하는 어머니의 등에 소금꽃이 피어난다. 소금꽃은 땀과 눈물의 결정체이므로 박시인은 그것을 ‘사리꽃’으로 승화시킨다. 사리꽃은 온몸으로 자식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하던 어머니의 성스러운 자세를 상징한다. 작가가 물러받은 것도 “흑진주처럼 빛나는 / 염주는 / 이 세상에 왔다가 떠나가신 / 가난했던 / 엄마가 남기고 가신 단 하나의 유품 “([엄마의 염주]) 일부)으로 나타나듯 손때 묻은 염주뿐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노동으로 일생을 보냈을 지라도 꿈을 가진 여자이다. 박 시인은 그 꿈을 이사하면 항상 꽃밭을 가꾸던 동작으로 표현한다. 꽃받은 여성이 이루고 싶어 하는 행복한 가정을 상징한다. 동시에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좌절과 억압심리를 온유하기도 한다. 박 시인은 그 한을 체험하기 위해 미국의 땅에 채소 씨를 뿌리고 꽃밭을 가꾼다. 박 시인이 꽃밭을 가꾸는 이유는 어머니의 가슴같은 흙을 만지고 싶어서다.
“흙을 만진다 / 언제나 젖어 있었을 / 어머니의 가슴 같은 흙을 만지다가 /
밭가에 퍼질러 앉아서 /하늘을 가로질러 /목젖이 아리도록 어머님을 불렀다”
([밭가에서] 일부)
“사목곡”에는 어머니의 죽음을 기리는 냉요이 많다. 박 시인의 어머니는 산천초목이 피어나는 봄, 잔덜랴꽃이 만개하는 봄, 보슬비가 내리는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박 시인에게 4월은 죽음의 계절이다. T S 엘리엇의 “홍부지”에 비가 내리지 않아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렸듯이 어머니가 없는 대지는 황량하기만 하다.
“강 건너 산 넘어, 하늘나라 가셨어도 / 당신 생각하면 / 뼈 속에서 울어 나서 각혈처럼 토해지는 / 피묻은 그리움뿐인 울 엄마야….”라고 노래하는 것도 어머니가 그리움과 상실의 대상이라는데 있다. 연이어 박 시인은 “목 고개 틀어지도록 / 무거운 옷 보따리 머리위에 이고서 / 그 모진 삶의 고개”를 넘으며 어머니가 흘린 이슬방울 같은 눈물을 잊을 수 없다고 노래한다. 고로, [어머님의 기일]에는 “이렇게 한 뼘 땅속에 / 잠 드실줄 아셨으면 / 꽃이나 가꾸시고 / 노래처럼 읊으시던 불경이나 읽으시며 / 한가롭게 살다 가셨어도 되셨을 것을” ([어머님 기일에] 일부) 이라는 안타까움이 넘쳐난다.
박 시인의 가슴 속 눈물은 눈물꽃이 된다. 박 시인의 간절한 소망은 어머니가 저승에 께실지라도, 딸이 흘리는 문물꽃 향기를 맡아 혼으로도 만나는 것이다. 서사적 리얼리즘을 벗어난 몽환적 상태에서의 영혼의 진혼(鎭魂)은 지극한 사모의 경지에 서만 가능한 법. 박시인은 이러한 지형을 핏빛 그리움의 형상체로 묘사하는 것이다.
아~ 어머니 나의 어머니
피 흘리는 고통 속에 날 낳으시고
얼마나 많은 날을 애쓰셨기에
저리도 하늘이 멈이 들었나요
정성으로 길러주고 입혀주시며
얼마나 많은 날을 한숨 쉬셨기에
저리도 산은 높이 솟아있나요
한 밤에도 촛불 밝혀 기도하시며
얼마나 많은 눈물 흘리셨기에
저 바다 눈물로 출렁이고 있나요
가난했어도 부자 가슴이었던
어머니의 가슴이 다 헤지도록
사랑을 받고, 사릉를 받고서도
아~ 어머니 ~나의 어머니 ~
천상에 계셔도 자식 걱정에
밤 하늘에 별이 되어 ㅣ켜보고 계시나요
아~ 내 영혼에 피 묻은 그리움이여!
-[아~ 내 영혼에 피 묻은 그리움이여] 전문
박시인의 은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하늘빛은 자식을 기르는 동안 얻은 푸른 멍이다. 산은 어머니의 한숨이 쌓인 것이고, 바다는 자식을 위해 흘린 눈물이 괸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그녀에게는 언어이고 어머니가 남긴 몸말이다. 박 시인은 모성애의 절대적 가치를 찾아내어 순교자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박영숙영의 사모곡을 듣는 청자는 시인 자신이다. 주목할 점은 박 시인의 경우에는 시적 화자와 시적 정자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실제 그녀는 “나는 엄마의 어린 딸”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뼈 속에 바람 들고
하얀 안개꽃 머리 위에 이고 있어도
나는 엄마의 어린 딸
엄마가 담아 보내 김치 향에
목이 메던 젖 내음
징 소리로 울리는 빈 단지에
촉촉이 그리움 젖어 넘친다. -[나는 엄마의 어린 딸] 일부
시란 이미지의 향연과 같다. 청각 이미지와 후각 이미지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한가지 예를 들면 엄마의 목소리가 엄마가 담은 김치향과 어울린다. “무명 치마 흰 저고리를 단아하게 차려입고 불경을 외우시던 목소리와” “ 엄마가 담아 보낸 김치향에 목이 메던 내음”은 복합이미지의 절창에 해당한다. 풋김치가 담겼던 단지에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던 꽃을 꽃아두는 행위는 절절한 그리움을 전하는 또 다른 기호로 매김한다.
박 시인의 시세계에 등장하는 부모님은 삶에 초연한 선인 들이다 그들은 어떤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효’라는 인간의 덕목을 가르쳐주는 의지의 표상이므로 이스트 섬의 석상을 연상시켜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월을 초월하는 불사의 부모상이라고 하겠다.
노스텔지어와 민들레 아리랑
박영숙영은 1975년 미군부대 안 환전소에서 현금출납원으로 근무를 하다가, 남편될 사람을 만났고, 1977년 미국에 왔다. 그녀는 조국의 향수에 벗어날 수 없어 한인천주교 성당에서 구역장으로 봉사 활동을 하며, 한인 농악단의 회원이 되어 우리의 고유문화를 미국사회에 널리 알리며,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한 것도 개인적 향수를 다수가 향유할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열망에서 비롯한다. 그 정서적 반응은 이민자와 노스텔지어와 유랑자의 디아스포라를 합친 서정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그녀는 봄꽃과 가을 낙엽을 보면 유난스럽게 마음이 흔들린다.
“꽃잎에 흔들리고 / 마음에 낙엽이 물들 때면 / 파도 속에 묻혀버린 옛 이야기 듣고 싶어 /나는 오늘도 그곳을 향하여 / 머나먼 연어의 여행을 떠난다 ( [연어의 여행] 일부 ) 연어는 모천(母川 )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생명체이다. 박영숙영에게 모천회귀는 시작(詩作 )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그녀의 언어는 향수라는 절절한 정서로 불들여진다.
눈 감으면
아직도 황소가 풀을 뜯고
풍년가 모판에서 들려오는데
아, 지치도록
지치도록 달려가서
팔 벌리고 기다리는 산천에 안기어
나도
하나의 거대한 바위산 되어서
고향에서 살고 싶어 돌아 갈까나 -[돌아 갈까나] 일부
박시인이 가고픈 고향에는 바다, 황소, 들판, 바위산이 있다. 현실 속의 고향은 가난하지만 시상속의 고향은 그지없이 평화롭고 아늑하기만 하다. 정적이고 동적이어서 “지치도록 달려가서 팔 벌리고 안기고” 싶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과 비슷하다. 어쩌면 박영숙영에게 고향이란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산 추억이 있으므로 “고향 아리랑”이라는 향토적인 이름을 얻는다고 하겠다.
박영숙영의 빼어난 점으로 평이한 언어와 서정적 풍경을 결합시키는 미학적 기법을 들 수 있다. 그녀는 현학적 언술이 아니라 토속적인 이미지를 즐겨 엮어 낸다. 고향집 가마솥과 함석지붕, 그리고 고구마와 시래기 보리죽은 시적 리얼리즘을 최대로 부각시킨다.
아~ 돌아가고 싶어라
태양이 황홀한 빛으로 바다위에 춤을 추면
부끄럽게 흔들리든 작은 돛단배
한 폭의 수채화 내려다 보이는
그 산 기슭에
아버님이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고
해묵은 설움을 묻어 버리듯
다듬잇돌 등에 메달아 끌고 다니며
집터 닦아 손수 지으신
함석지붕 올려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라
-[ 그리운 고향 너에게로] 일부
박 시인의 “고향 아리랑”은 사라진 것에 대한 노래이다. 시를 읊고 있는 한, 바람을 인 돛단배, 등짐 진 아버지, 조그만 함석집이 시인의 손끝에서 되살아 난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마법의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리운 예집은 간 곳이 없고 / 낯 선이 / 낯 선 집이 / 낯 선 고향의 . ( [타향이된 고향] 에서”
박시인은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산다.그런 그녀가 고향을 찾아 갔을 때 옛집과 옛사람은 개발에 밀려 사라져 버렸다. 오지 하늘만이 그대로다. “ 아! 나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는데 /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라고 절규하는데는 달리 다른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그녀가 향수를 다루는 ‘시’에서는 민들레 같은 서정이 발견된다.
<중략>
화살처럼 날아와서
안개밭을 갈아 엎고
민들레처럼 뿌리를 내리고서
들개처럼 살다가 쓰러져 갈
타국 땅 나그네 길에서
세월에 빛 바랜 홀씨를 머리위에 이고서
외로워서 아리어 오고
그리워서 쓰리어 올때 마다 불러보는
내 고향 아리아리 민들레 아리랑 아라리요.
-[ 민들레 아리랑 ] 일부
박영숙영 시인을 꽃에 비유하면 민들레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민들레는 바람에 실려 날아 가더라도
어디서든 뿌리를 내린다. 박 시인의 삶을 살펴보아도 다른 꽃을 찾을 수 없다. “세월에 빛 바랜 홀씨를 머리위에 이고” 미국에서 이룬 이력을 살펴볼수록 가슴에 묻은 이미자화가 더욱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녀의 민들레가 지닌 이미지는 “소금냄새 / 해조음 물결 따라 /육신이 흔들리고 / 안개처럼 젖어 드는 /피빛 그리움”으로 구체화 한다. [피어라 무궁화 꽃이여 ]의 결미에서 “배고픈 별을 머리위에 이고서 / 떠나 왔어도 / 나그네의 가슴속 뿌리에서 혼불이 끊어 오른다” 라는 표현조차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린 민들레의 아픔과 보람을 상징적으로 요약한 구절로 평가할 만하다. 이렇듯 박영숙영 시인의 “향수의 아리랑”에서도 삶에 대한 당찬 의지력과 결의를 잊지 않고 있다.
헌시의 향기를 위하여
박영숙영 시인의 아리랑은 단순히 디아스포라의 노래가 아니다. 그녀의 시세계는 원초적 그리움과 고통스러운 고백으로 빚어진다.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을 모티프로한 <사부곡 아리랑>, 여성으로서 동류의식을 바탕으로 한 <사모곡 아리랑>, 가난을 풍요의 시로 바꾼 <민들레 아리랑>의 장(章)에 속한 시들은 가난의 아픔을 사랑으 휴머니짐으로 승화시킨 일종의 연작시라고 말 할 수 있다.
“아리랑”으로 묶어낸 서사는 시인의 마음속에 깃든 영원성이라는 샘에서 길러온 것들이다.
[고향 아리랑]에서는 “지치도록, 지치도록, 달려가서 팔 벌리고 기다리는 산천에 안기고 싶다”고 말한다. [사모곡 아리랑]에서는 “사는게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 / 말 없이 다가와서 손잡아 일으켜 주실 분”으로 어머니를 기억한다.
[ 사부곡 아리랑 ]에서는 “ 지뢰밭 같은 이 세상에서 / 내 삶에 스승님이시고 나침반이 되어 /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아버님“을 찾는다. 부모와 자연에 바치는 헌시 양식이 무엇보다 사막의 땅 텍사스에 피어난 언어의 꽃이라는 점에서 박영숙영 시인의 시적 영감은 참으로 맑고 깊다고 여겨진다.
시란, 사상적 지평에 인간의 삶과 자연의 형상을 얹는 작업이다. 박영숙영 시인은 사랑을 구채화 함으로써 절절한 그리움을 서사와 서정이라는 미학적 망을 엮어 낸다. 언어가 지닌 아룸다움뿐만 아니라 가슴을 파고드는 호소력을 일구어낸 시인으로서 박영숙영의 시심이 재미동포와 한국 독자에 시적 공명을 전달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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