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마라톤ㅡ 재미시인 박영숙영 인터뷰기사
2014.10.17 16:44
<시와 마라톤으로 편견 이겨낸 재미 시인 박영숙영>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 참가차 방한…"詩는 사랑을 배우는 도구"
(부산=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국제결혼한 여자들이 다 그렇지 뭐."
미국 휴스턴 한인사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박영숙영 (68·미국명 영숙 빌리) 씨는
누군가로부터 이 말 한마디를 듣고 큰 상처를 받았다.
다시는 한인사회에 나가지 않았고 급기야 우울증에 빠졌다.
다섯 살 연하의 남편(팀 빌리)이 아무리 잘해줘도
같은 말을 쓰는 한인들이 남긴 상흔과 그 때문에 얻은 고독을 이겨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박 씨가 붙잡은 것이 시(詩)였다.
처음에는 편견에 저항하는 시를 매일 밤 썼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그동안 썼던 시들을 다시 읽어 보니 "시가 참 못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는 그동안 썼던 시들을 모두 다 버렸다.
"물처럼 투명하고/ 흙처럼 꾸밈없고/ 아가의 배냇짓 웃음같이 순수한/
그 말/ '말' 한마디 듣고 싶어/ 가슴을 비워놓았습니다" ('말 한마디 듣고 싶어' 중에서)
가슴을 비우자 사랑이 싹텄다. 박 씨는 사랑 시를 쓰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휴스턴 코저널에 '해후'라는 시를 발표했고,
이듬해 현대시문학 추천을 받았다. 2003년 한맥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04년 한국국제펜클럽으로부터 재외동포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2006년 '영혼의 입맞춤'을 시작으로 '사막에 뜨는 달'(2008년),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2010년), '사부곡 아리랑'·
'인터넷 고운님이여'(2013년) 등 2년마다 한 권씩 시집을 펴냈다.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월드키마)가 14일부터
부산 해운대구 한화 콘도리조트에서 열고 있는
제10회 국제결혼여성 세계대회에 처음 참가한 박 씨는
각국에서 온 같은 처지의 어머니들을 행사장에서 만날 때마다
인사 대신 시집을 건넸다.
그는 기자에게도 인터뷰에 앞서 지난해 펴낸 2권의 시집을 전해주고는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제게 시는 마음을 비워내고, 겸허함을 담으며
사랑을 배우는 도구"라고 정의를 내렸다.
아직 편견으로 다친 가슴의 상처를 다 씻어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2년마다 시집을 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내년에는 영문시집을 낼 계획이다. 현재 자신이 쓴 시 120편을 번역해놓았다.
"이국땅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면서도 한없이 달라붙는 고독을 떼어 낸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어요. 남편과 의사가 달리기를 권했죠.
처음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뛰었는데 힘들면 힘들수록 쾌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환갑의 나이에 마라톤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20007년 시애틀에서 열린 마라톤대회 하프 코스에 참가해 완주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대회에 나갔다. 2009년부터 작년까지 42.195km를 5차례 완주했을 정도다.
마라톤을 하면서 기절해 쓰러지기도 했지만 성취감만큼은 최고라는 것이
그가 지금도 달리는 이유다.
다음 달 통영에서 열리는 해프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달릴 예정이다.
"마라톤을 할 때마다 모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꽂고 달립니다.
제 모자에 꽂은 국기를 보고 한국을 방문했던 사람들이나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큰소리로 자기들이 아는 한국말을 하며 응원해 줍니다.
떠나왔어도 두고 오지 않는 내 조국,
내 꿈을 이루게 해주고 내 몸이 잠들 또 하나의 조국,
저는 두 개의 조국을 사랑합니다."
박 씨는 병원에서 고관절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은 이후로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해 '실버 몸짱'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편견과 고독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만큼은 진정한 자기 사랑의 발현이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그는 진해여고를 졸업하고 나서
해군 군함을 고치는 공창을 거쳐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있는 공군 단장실 비서로 일했다.
독일에 간호사로 가려다 그만두고 오산 미군부대 환전소에 취직한 것을 계기로
남편을 만나 1977년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너갔다.
그는 1994년 남편이 중령으로 제대할 때까지
하와이, 버지니아, 앨라배마, 사우디아라비아, 아칸소 등지를 돌면서
1남 1녀를 키우고, 오직 가족만 바라보며 한국의 어머니로 살았다.
지금 그는 한국국제펜클럽·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이자
미주한국문인협회·한미문학진흥재단의 이사로 활약하는 중견 시인이고,
마음만은 청춘인 마라토너이다.
본명은 박영숙이나 문단에 오른 뒤 동명이인 시인이 너무 많아
필명을 박영숙영으로 지었다.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10/15 13:52 송고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 참가차 방한…"詩는 사랑을 배우는 도구"
(부산=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국제결혼한 여자들이 다 그렇지 뭐."
미국 휴스턴 한인사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박영숙영 (68·미국명 영숙 빌리) 씨는
누군가로부터 이 말 한마디를 듣고 큰 상처를 받았다.
다시는 한인사회에 나가지 않았고 급기야 우울증에 빠졌다.
다섯 살 연하의 남편(팀 빌리)이 아무리 잘해줘도
같은 말을 쓰는 한인들이 남긴 상흔과 그 때문에 얻은 고독을 이겨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박 씨가 붙잡은 것이 시(詩)였다.
처음에는 편견에 저항하는 시를 매일 밤 썼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그동안 썼던 시들을 다시 읽어 보니 "시가 참 못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는 그동안 썼던 시들을 모두 다 버렸다.
"물처럼 투명하고/ 흙처럼 꾸밈없고/ 아가의 배냇짓 웃음같이 순수한/
그 말/ '말' 한마디 듣고 싶어/ 가슴을 비워놓았습니다" ('말 한마디 듣고 싶어' 중에서)
가슴을 비우자 사랑이 싹텄다. 박 씨는 사랑 시를 쓰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휴스턴 코저널에 '해후'라는 시를 발표했고,
이듬해 현대시문학 추천을 받았다. 2003년 한맥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04년 한국국제펜클럽으로부터 재외동포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2006년 '영혼의 입맞춤'을 시작으로 '사막에 뜨는 달'(2008년),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2010년), '사부곡 아리랑'·
'인터넷 고운님이여'(2013년) 등 2년마다 한 권씩 시집을 펴냈다.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월드키마)가 14일부터
부산 해운대구 한화 콘도리조트에서 열고 있는
제10회 국제결혼여성 세계대회에 처음 참가한 박 씨는
각국에서 온 같은 처지의 어머니들을 행사장에서 만날 때마다
인사 대신 시집을 건넸다.
그는 기자에게도 인터뷰에 앞서 지난해 펴낸 2권의 시집을 전해주고는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제게 시는 마음을 비워내고, 겸허함을 담으며
사랑을 배우는 도구"라고 정의를 내렸다.
아직 편견으로 다친 가슴의 상처를 다 씻어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2년마다 시집을 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내년에는 영문시집을 낼 계획이다. 현재 자신이 쓴 시 120편을 번역해놓았다.
"이국땅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면서도 한없이 달라붙는 고독을 떼어 낸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어요. 남편과 의사가 달리기를 권했죠.
처음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뛰었는데 힘들면 힘들수록 쾌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환갑의 나이에 마라톤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20007년 시애틀에서 열린 마라톤대회 하프 코스에 참가해 완주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대회에 나갔다. 2009년부터 작년까지 42.195km를 5차례 완주했을 정도다.
마라톤을 하면서 기절해 쓰러지기도 했지만 성취감만큼은 최고라는 것이
그가 지금도 달리는 이유다.
다음 달 통영에서 열리는 해프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달릴 예정이다.
"마라톤을 할 때마다 모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꽂고 달립니다.
제 모자에 꽂은 국기를 보고 한국을 방문했던 사람들이나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큰소리로 자기들이 아는 한국말을 하며 응원해 줍니다.
떠나왔어도 두고 오지 않는 내 조국,
내 꿈을 이루게 해주고 내 몸이 잠들 또 하나의 조국,
저는 두 개의 조국을 사랑합니다."
박 씨는 병원에서 고관절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은 이후로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해 '실버 몸짱'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편견과 고독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만큼은 진정한 자기 사랑의 발현이다.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그는 진해여고를 졸업하고 나서
해군 군함을 고치는 공창을 거쳐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있는 공군 단장실 비서로 일했다.
독일에 간호사로 가려다 그만두고 오산 미군부대 환전소에 취직한 것을 계기로
남편을 만나 1977년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너갔다.
그는 1994년 남편이 중령으로 제대할 때까지
하와이, 버지니아, 앨라배마, 사우디아라비아, 아칸소 등지를 돌면서
1남 1녀를 키우고, 오직 가족만 바라보며 한국의 어머니로 살았다.
지금 그는 한국국제펜클럽·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이자
미주한국문인협회·한미문학진흥재단의 이사로 활약하는 중견 시인이고,
마음만은 청춘인 마라토너이다.
본명은 박영숙이나 문단에 오른 뒤 동명이인 시인이 너무 많아
필명을 박영숙영으로 지었다.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10/15 13:5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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