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3ㅡ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시'해설
2010.11.03 11:35
서문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성결대학교 (전)부총장 신규호 문학박사
고국을 떠나 오랜 세월을 타국에 살면서도, 잊지 않고 모국어로 시를 쓰며 살아가는 한 시인의 아름다운 시집 출판을 어찌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로 그 감격을 표하겠습니까.
더구나, 시집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를 펴낸 박영숙영 시인은 경남 진해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점에서 작으나마 나와 인연이 있는 사이이고 보니, 박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상재가 더욱 반갑고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시심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젊은 시절을 지나 나이 들면서도 그 시정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더구나 언어와 풍속이 다른 타국에 살면서도 꾸준히 모국어로 시를 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박 시인이 타고난 천부적 시인임을 입증해 줍니다.
그러기에 박 시인의 작품은 손끝으로 빚어지는 언어의 조탁에 의한 기능적 이미지가 아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적나라한 생명의 소리, 사랑의 노래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 <바람구멍>이나 <별빛 이슬>, <한 알의 진주>, <산속에 밤이 우는 소리> 등에 보이는 시적 이미지는 박 시인의 언어 조탁 능력까지 입증해 주고 있어, 그의 천부적 자질과 함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앞으로도 어머니 품 안에서 익히기 시작한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잊지 말고 꾸준히 절차 탁마하여 보다 훌륭한 시인이 되어서, 해외 한국문학사에 큰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0년 8월 21일 신규호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
박영호 (문학비평가 협성대 교수)
1.
박영숙영 시인의 시는 섬세한 세공과 긴밀한 축약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정적 표현과 사실적 진술이 근간을 이룬다. 완전한 삶을 구현하고 영원한 행복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사랑의 정서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풍부한 서정성이 더 적합하며,
타락한 현실의 개선을 위한 자기 수련의 필요성을 권유하기 위해서는
사실적 진술이 보다 효과적이다. 이처럼 사랑의 정서를 근간으로 상생과 조화의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여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의 근원, 사랑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은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는 긴장감의 유지가 필수적이다. 긴장감이 무너지면 자칫 저급한 넋두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랑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보다 큰 의미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시인은 쇠붙이 같은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황금과 같은 소중한 의미를 창조하는 연금술사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필자는 사랑이라는 지극히 주관적 정서를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객관적 의미로 확장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긴장감은 유지되고 있는 가를 눈여겨 볼 것이다.
2-1. 완전한 삶의 근원, 사랑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을 사람이 행동하도록 하는 도덕적 힘으로 정의하였다. 즉 사랑은 삶을 유지하고 나아가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완성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박영숙영 시인의 작품에 드리워져 있는
사랑의 정서는 완전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와,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로 집약된다. 먼저 완전한 삶을 향한 의지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랑의 정서를 살펴보기로 하자.
기쁨은 슬픔의 또 다른 이름이며,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심지어 삶의 이면에는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하여 시인은 우리의 삶을 ‘늘 항상 고독한 바람이 불어 / 더 오래도록 뼈 속을 채워오고 / 마음에 드나드는 바람구멍 막을 수 없는’(「바람구멍」) 서글픈 대상으로 묘사하였다. 그런가 하면 차라리 죽고 싶다고 절규하는 동생의 고통을 절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을 그린 「누나 죽고 싶어요」라는 작품에는 삶에 대한 처절한 고통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박영숙영 시인의 작품에서 산견(散見)하는 서글픔과 고통은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 삶을 완성하여야 한다는 당위성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기제로 작용한다.
아, 내 영혼의 생명수는 님의 사랑
슬픔도 기쁨이 되고
불행도 행복이 되고
절망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요술쟁이 님의 사랑 나에게 주오
-「내 영혼의 생명수는」 부분
때론 사랑의 독침에 찔리는 줄 알면서도
누구나 이 길을 꼭 한번 가길 원하는 것은
사랑의 뿌리는 생명이고, 생명의 뿌리는 사랑이라
사랑은 삶이고 행복이며, 영원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신생아를 출산하듯
사랑의 독을 승화시켜
상처를 감싸주는 참사랑을 해야만이
영혼의 빈 잔에
향기를 채워가는 아름다운 삶이 될 것 입니다
-「사랑에는 독이 있다」 부분
님의 사랑은 슬픔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그리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준다. 그렇지만 사랑의 여정에 기쁨과 행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찔리면 치명상을 입는 독침과 같은 불안과 고통이 산재하고 있다. 그것을 알지만 사랑이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의 근원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길을 가고자 한다.
그 길을 간다고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먼저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우리는 언제 어떻게 인식하게 되는가? 시적화자는 ‘어머니가 신생아를 출산하듯 / 사랑의 독을 승화시켜 / 상처를 감싸주는 참사랑을 해야만’ 즉 어머니가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자식을 출산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상처를 진심으로 감싸줄 수 있는 헌신적 자세를 갖추고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런 뒤에야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신의 입김에
튀겨낸 봄 햇살이
허기진 대지의 가슴을 스칠 때
연 초록 생명이
하늘 향해 일어서듯
천 년의 사랑씨앗
내 가슴에 묻어서
부르튼 발에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자갈길 걸을 지라도
신께서 맺어주신
당신과 함께 라면
그날의 그 약속 되새기며
오늘만이 날인 듯
당신 위해 밝히는
내 영혼의 불꽃을
아낌없이 태우리 -「천 년의 사랑을 위하여」 전문
봄 햇살의 투사와 연 초록 생명이 움트는 자연 현상을 시혜와 수혜 또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파악하는 시인의 의식에는 당신의 사랑과 그로 인하여 한층 강화되는 삶에 대한 나의 의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드리워져 있다. 삶은 ‘부르튼 발에 / 등이 휠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신께서 맺어주신 / 당신과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다는 시인의 다짐 역시 당신의 사랑에서 기원한다.
이렇듯 시인은 당신의 사랑을 지금 내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고난을 극복하고 삶을 완성하기 위한 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랑의 정서는 영원한 행복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의 근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2-2. 영원한 행복의 근원, 사랑
박영숙영 시인에게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화합이 이루어짐으로 인한 기쁨이나,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한 슬픔은 중요하지 않다. 시인은 사랑의 정서가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해일이 몰려와도
바라보는 수평선은 흔들리지 않듯이
광풍이 몰아쳐도
육지를 뚫고 솟아난 산 능선 그대로 있듯이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보고 싶은 마음이
벌집을 쑤신 듯하지만
정작으로 당신 앞에 서게 되면
눈부신 태양을 맞이한
아침 꽃처럼 수줍기만 합니다.
저 넓은 창공 속에
달이 뜨고, 별이 뜨고
태양이 솟아나서
육지를 끓어 안고 돌고 돌듯이
신비한 사랑의 샘물을 파 놓은 듯이
내가 가진 모든 것
내가 가질 모든 것이 당신의 가슴속에 있어서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그 사랑 줄기에
오늘은 또 다른 삶의 향기 꽃 피우며
내일을 여는 미래의 문 앞에서
행복한 듯, 수줍은 듯
당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습니다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전문
작품 전체를 이끄는 정서는 행복함이고 그 배경에는 사랑의 정서가 내재하고 있다. 이를 시인은 불변의 자태, 자연의 섭리 그리고 영원성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
1연부터 3연까지는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요소와 그 같은 위협에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자세를 대비시키고 있다. 즉 해일, 광풍, 기다림이 나의 사랑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면 수평선, 능선 그리고 당신의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변의 자태를 유지하면서 불안 요인을 불식시켜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시인의 정서는 자연의 섭리와 영원성으로 확장되면서 시인의 의지를 강화시킨다. 달과 별 그리고 태양의 운행과 같이 결코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을 일러 자연의 섭리라 한다. 시인은 변하지 않을 자신의 사랑을 자연의 섭리와 등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의 사랑은 오늘의 삶의 근원이며 나아가 내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듯이 나의 사랑도 영원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이 같은 확신 때문에 시인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다음 작품에서도 동일한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 모두 모아서
가슴에 심어주신 빛의 꽃
봄날 속에 퍼져가는 빛의 향기
세상은
피어나는 사랑으로 눈이 부셔라
-「세상은 눈이 부셔라」부분
어제 못 다 준 사랑을 위하여
새로운 태양이 뜨는 오늘 하루도
영혼의 잔에
사랑을 채워가는 즐거운 삶이기에
눈뜨면 보이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사랑에
영원을 약속하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 어제 못다 준 사랑을 위하여 」 부분
시인에게 있어 님은 모든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근원이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주는 대상이다. 그러한 님이 시인에게 향하는 마음을 나는 사랑이라 하고 그 사랑의 빛으로 인하여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고 고백한다.
오늘은 어제 못 다 준 사랑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며, 새로운 날은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채우기 위해 시작된다. 따라서 시인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은 곧 시인의 영원한 사랑을 입증하기 위한 징표일 뿐이며 사랑의 정서는 시인에게 영원한 행복을 지향하는 근원으로 작용한다.
사랑의 정서를 얼마나 내밀하고 애틋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 박영숙 시인에게 이 같은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사랑의 정서가 우리 삶에 무엇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고 해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3. 상생과 조화의 근원, 자기 수련
박영숙영 시인에게 현실은 외로운 공간이며 타락한 세계이다.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태도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첫째, “시는 즐거이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라는 메슈 아놀드(M. Arnold)의 진술처럼 시가 지녀야 할 교시(敎示)적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현실을 파악하는 부정적 인식이 상생과 조화의 공간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긍정적 의지의 기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무엇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를 위하여 엄정한 자기 수련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3-1. 비틀린 세계와 위선의 공간
시인에게 현실은 ‘길고 긴 혼자만의 독백으로 / 가슴에 달이 뜬다’(「가슴에 달이 뜬다」는 고백과 ‘뜨거워서 목이 탈수록 / 무수한 가시를 키우는 선인장처럼 / 외로움 깊을수록 / 깊어지는 그리움에 / 잠들지 못하‘고(「바나나 침대」) 별을 센다는 진술에서 드러나듯 외로운 공간이다. 이처럼 현실을 외로운 공간으로 인식하는 태도는 다음 시에서 보다 여실하게 드러난다.
하늘까지 닿았던
그 마음
산발하는
순백의 언어가
풀어놓은
허기진 그리움
지쳐서
가지 위에 혼절하면
심장을 가르는 듯
짐승들의 비명소리
눈 속에 돌이 되고
산 속에 밤이 우는 소리
싸늘한 외로움이
골짜기를 기어올라
가슴에 산을 만든다 -「산 속에 밤이 우는 소리」전문
정상에 이르렀던 그 마음이 산발하듯 허공에서 흩어진다. 시적 화자인 나는 지쳐 혼절하고 산속에는 밤이 찾아든다. 그러나 여전히 기착할 곳을 찾지 못한 나의 그리움은 골짜기를 습관처럼 기어오르고, 내 가슴에는 허물어지지 않을 산이 생겨난다.
하늘까지 상승하던 그 마음은 허공을 맴돌다 허기진 그리움과 싸늘한 외로움으로 변한다. “어금니 사이로 침묵의 비명이 흐르면 이제는 잊어도 좋을 슬픔이 가슴이 멍멍하도록 차오르고, 가슴에 사무치는 사연은 전할 곳 없어 가슴을 태우는 그리움이 되어 흘러가는”(「여름 밤이 지나간다」) 곳, 그곳이 지금 시적 화자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시적 화자는 현실을 ‘오물 같은 명예를 위하여 / 너를 죽이지 않으면 / 내가 죽어야 하‘는(「열정과 희망 사이」) 시기와 질투만이 존재하는 전쟁터로, ‘산 정상을 오를수록 길은 험해서 / 덫을 피하고 맹수를 피하다 보면 / 한 발만 헛디뎌도 벼랑에 떨어지거나 / 혹은 매달려서 독수리 밥이 될 수도 있는’(「대나무는 없었다」) 정글로 인식하기도 한다.
웰빙*의 귀족들
임금님 아닌 임금님은
시멘트 성곽 안 용상에서
공작새 꼬리를 펴고
문 앞에는 박퀴벌레같이 검은 차
금빛으로 뻔쩍인다
백 년도 못 사는 인생
세월을 잡으려고
돈으로 쑤셔 놓은 푸른 숲은
대지가 난도질당해
자연이 목숨을 잃어가고
웰빙의 귀족들 꼬리표에 걸려 넘어져
터져나가는 골통,깨어진 정강이
패잔병의 신음소리는
지하철 신문지 밑에 잠이 들고
돈 때문에 필 수 없는 젊음은
꽃잎 지듯 창가에
낙엽처럼 진다
바람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세월의 고난 속에서도
삶의 애증[愛憎] 푸른 잎을 피워내며
모질게도 뿌리박은 가로수는 떠날 수 없어
시커먼 기름옷을 입고서
진득거리는 먼지를 마시며
각혈하는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서 있는
가로수는 배고프다 -「가로수는 배고프다」 전문
시적 화자는 ‘정상에서 어긋난 현실 파악,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그로인한 폐해 제시 그리고 회복하고 지켜야 할 우리의 삶’ 순으로 자신의 정서를 서술하고 있다. ‘웰빙’은 함께 잘 살기 위하여 가능한 한 절제하고 자제할 것을 지향한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중세시대의 타락한 임금처럼 사치와 향락을 누리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입으로는 웰빙을 외친다. 과도한 욕망으로 자연은 훼손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낙엽처럼 쓰러져 간다. 이런 현실을 시적 화자는 ‘대지가 난도질 당해 / 자연이 목숨을 잃어가는’ 사막과 같은 불모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그럼에도 시적 화자는 오랜 세월 애증이 공존했던 우리 삶의 터전인 현실을 떠날 수 없다고 하여 우리가 지금 여기서 지키고 회복하여야 할 삶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질서와 도리가 완벽하게 구현된 완전한 사회가 실현된 적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 현실에 내재하는 문제를 파악하는 한편 그것을 개선하여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시인과 같은 창조적 개인의 염원 때문에 역사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그 구체적 양상을 다음 작품을 대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누가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유명품이
먹는 것인지
입는 것인지
밭에 심는 곡식의 씨앗인지를……
저는 해방둥이로 태어나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때 전쟁을 겪었고
남의 나라에서 30년을 살다 보니
유명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추측하건대
유명품은 씨앗인가 봅니다
땅에 심는 씨앗이 아니라
가슴에 심어지고
욕망으로 키워져서
입에서 터져 나와
바람 타고 천지사방 흩어지는
전염병 같은 씨앗인가 봅니다
누가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유명품이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는지를….
헐렁한 옷을 입고
어수룩한 모습으로 길을 가고 있는 저에게
-「유명품[名品 ]은 씨앗인가」전문
‘곡식 씨앗’과 ‘가슴에서 기생하는 씨앗’ 그리고 ‘배고픈 사람의 구제’와 ‘불순한 욕망의 확장으로 인하여 타락하는 현실’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은 명품 브랜드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풍자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풍자(satire)는 현실 모순을 소극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야유하고 조소하는 비판 수단이다.
우회하여 비판하지만 현실 모순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그리고 풍자의 최종 목표는 징벌(懲罰)이 아니라 부정적 요인의 개선이다. 즉 부정적 요인이 제거되어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희망을 진작시켜준다.
따라서 모순을 지적하는 준열한 자세나 개선을 촉구하는 준엄한 가르침은 배제되어 있다. 다만 불순한 욕망이 과잉으로 분비되는 것에 대한 경고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경고는 궁극적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인의 의지는 삶을 인식하는 겸허한 자세와 엄정한 자기 수련으로 내면화된다.
3-2. 자연의 섭리와 자기 수련
순자(『荀子』)는 천론(「天論」)편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따라 다스리면 길하고, 마음대로 하면 흉하게 된다”고 진술하였다. 여기에는 자연계를 운행하는 규율은 인간 의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멋대로 행동하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이 내재하고 있다. 박영숙 시인 역시 자연이 보여주는 변함없는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수련을 거듭한다.
어제도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오늘도 꽃이 피고, 꽃이 진다
아침에는 눈을 뜨고
저녁에는 죽는 연습
산다는 건
눈 감으면 종말인데
내 삶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서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삶은 내 것이 아니기에
행여 세파에 때 묻을까
자연 속에
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 -「살아있어 행복한 날」부분
1-2행에서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꽃의 일생을, 3-6행에는 태어나고 죽는 사람의 일생을 그리고 7-13행에는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자세가 드리워져 있다. 즉 ‘행여 세파에 때 묻을까 / 자연 속에 / 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에서 드러나듯 시인은 삶에서 지켜야 할 모범을 자연에서 찾고자 한다. 이렇듯 자연이 시인에게 모범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변함없는 규범 때문이다.
--- 전략 ---
봄 꽃은 여름 꽃을
여름 꽃은 가을꽃과
논쟁하지 아니하고 지고 피며
꽃들은 제각기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따뜻한 햇살에 흔들리는 암 수술
씨방을 익힐 뿐이다
세찬 비바람 홍수에
땅덩이가 바다로 가지 않게
낮은 풀들이 흙을 끌어안고
육지를 공유하고 있는 옆에서
흙 속에
내 마음 묻어두고 올려다본 하늘
하얀 애기구름 배냇짓 미소
한가롭게 흘러서 간다 -「공유」부분
꽃은 제철을 맞춰 피고 지며, 미세하지만 각 부분들은 저마다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세상의 구성 원리 이와 다르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일견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조화 때문에 이 세상은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듯 우리 역시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상생의 세계를 지향할 때 비로소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은 실현 된다. 그런 세상을 이룩하기 위하여 시적 화자는 ‘한 여름날의 투명한 고통도 / 가을의 쓸쓸함도’ 감당해야만 하는 삶의 실체를 인식하고, ‘자연의 순리에 머리 숙여 / 맨 손을 흔들며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하는’(「봄에 지는 낙엽」) 것처럼 자연의 변화와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
--- 전략 ---
어쩌면,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을지 몰라도
어쩌면, 내가 가을의 수확을 볼 수 없을지 몰라도
이 순간의 내 삶을 헛되지 않게
황금 같은 봄날의 아름다운 순간에
꿈을 심으며
살아있어 행복에 젖는다 -「이 순간의 내 삶을 위하여」 부분
--- 전략 ---
삶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기에
노력 없이 공짜로 세상사는 사람 없어
작은 일에도 미칠 만큼 열정을 쏟아야만
후회 없는
삶의 성취감을 만날 수 있는
인생은 달리기와 같다 - 「인생은 달리기」 부분
--- 전략 ---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
버릴 건 모두 버려
가져갈 수 없어도
나누고 싶은
내 이름 없이 죽어갈 시인의 마음
끝없이 밀려오는 수평선 저 넘어
붉은 해가 잠드는 곳에
내 하얀 날개를 접고싶다 - 「내 이름 없이 죽어갈 시인의 마음」 부분
씨를 뿌리는 일은 내 몫이었지만 수확은 누구의 몫이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행복한 것은 파종하는 봄날 그 보다 더 소중한 꿈을 심었기 때문이다. 이는 ‘가을에는 / 떨어진 낙엽 썩어서 거름되듯 / 이웃 위해 아픈 상처 배려하며 / 이웃 위해 쓸모 있는 / 참된 ‘나’가 되’(「낙엽이 거름되듯」)기를 갈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他人)과의 관계에서 나를 버릴 때 이타심(利他心)은 생성된다. 성취감은 성실한 삶에 대한 결과로 생성되는 것이다. 쉬지 않고 계속 뛰어야 하는 달리기와 같이 성실할 때 번뇌와 고통은 사라지고 생명의 소리와 마음의 풍요로움이 그 자리를 채워준다.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버리고 가져가기보다는 차라리 나누고 싶다는 시적 화자의 진술과 ‘굽어진 허리를 곧추세워 / 고개 드니 / 노을이 / 내 앞에서 / 낮추고 비우라 하는 구나’(「가을인생」)라는 구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세속적 욕망이 제거된 겸허함이다. 이처럼 자연의 섭리를 모범으로 이타심(利他心)과 성실함 그리고 겸허함을 지향하는 자기 수련의 과정이 동반될 때 우리의 현실은 상생과 조화의 공간으로 개선될 것이다. 구체적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전략 ---
이슬 맺힌 풀밭에 발을 적시며
생명이 움트는
텃밭과 꽃밭에 물을 줄 때면
그 속에 나를 세워놓고
함께하는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과 공기를
분수에 맞게 소유하고
생각을 흙 속에 묻어두고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의 모습대로 서서
말을 할 듯
반기는 나무와 꽃들
--- 후략 --- - 「내 삶의 향기」부분
생명이 움트는 순간 그 가운데 내가 서있으면 나와 자연은 일체가 된다. 즉 자연은 나에게 나는 자연에게 동화(同化)되어 서로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그 순간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체의 것들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체험하게 된다.
나무와 꽃이 아름다운 것은 ‘따뜻한 햇살과 바람과 공기를 / 분수에 맞게 소유하고 / 생각을 흙 속에 묻어두고서 /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 자신의 모습대로 서’있기 때문이다. 즉 변하지 않는 항심(恒心)의 자세와 분수를 알고 만족하는 자족(自足)의 상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너와 나가 일체가 되어 조화로운 상생이 실현되는 곳을 지향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에서 태어나 / 물을 밟고 가야 하는 길 위에서 / 젖을수록 무거운 솜 같은 날개를 어루만지며 / 발 밑에 실 매듭을 풀어가야 하는 하루하루’ 같은 삶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래야만 그 끝에서 ‘캄캄한 허공의 두려움을 안고서도 / 행여 그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 아, 푸른 꿈’(「삶의 무게를 덜어내려」)과 같은 희망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다.
4.
박영숙영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첫 번째는 완전한 삶을 구축하고 영원한 행복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진실한 사랑의 정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우리 현실이 상생과 조화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수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박영숙영 시인의 이 같은 자세는 추상적 구호와 관념적 유혹이 아닌 실천 가능한 현실적 의지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에는 다양한 소재를 시적 대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각 작품이 드러내는 주제와 의미 또한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에 시인의 의지가 큰 흐름을 유지하면서 일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박영숙영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등 삶의 모든 것들과 진지하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특히 조국을 떠나 다른 문화를 배우면서 살아야 했던 시인에게 삶 그 자체가 늘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도전은 성취와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보다 큰 좌절과 슬픔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취와 좌절의 순간 시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시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인은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시인 자신의 소망과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소망으로 확장시켰다. 이 같은 박영숙영 시인의 자세가 소중하게 인식되는 것은 시의 영역이 사적 공간으로 위축되고, 시의 의미가 관념으로 퇴행하는 오늘 우리 현실에서 회복하여야 할 시의 영역과 시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읽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성결대학교 (전)부총장 신규호 문학박사
고국을 떠나 오랜 세월을 타국에 살면서도, 잊지 않고 모국어로 시를 쓰며 살아가는 한 시인의 아름다운 시집 출판을 어찌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로 그 감격을 표하겠습니까.
더구나, 시집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를 펴낸 박영숙영 시인은 경남 진해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점에서 작으나마 나와 인연이 있는 사이이고 보니, 박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상재가 더욱 반갑고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시심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젊은 시절을 지나 나이 들면서도 그 시정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더구나 언어와 풍속이 다른 타국에 살면서도 꾸준히 모국어로 시를 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박 시인이 타고난 천부적 시인임을 입증해 줍니다.
그러기에 박 시인의 작품은 손끝으로 빚어지는 언어의 조탁에 의한 기능적 이미지가 아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적나라한 생명의 소리, 사랑의 노래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 <바람구멍>이나 <별빛 이슬>, <한 알의 진주>, <산속에 밤이 우는 소리> 등에 보이는 시적 이미지는 박 시인의 언어 조탁 능력까지 입증해 주고 있어, 그의 천부적 자질과 함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앞으로도 어머니 품 안에서 익히기 시작한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잊지 말고 꾸준히 절차 탁마하여 보다 훌륭한 시인이 되어서, 해외 한국문학사에 큰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0년 8월 21일 신규호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
박영호 (문학비평가 협성대 교수)
1.
박영숙영 시인의 시는 섬세한 세공과 긴밀한 축약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정적 표현과 사실적 진술이 근간을 이룬다. 완전한 삶을 구현하고 영원한 행복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사랑의 정서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풍부한 서정성이 더 적합하며,
타락한 현실의 개선을 위한 자기 수련의 필요성을 권유하기 위해서는
사실적 진술이 보다 효과적이다. 이처럼 사랑의 정서를 근간으로 상생과 조화의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여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의 근원, 사랑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은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는 긴장감의 유지가 필수적이다. 긴장감이 무너지면 자칫 저급한 넋두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랑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보다 큰 의미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시인은 쇠붙이 같은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황금과 같은 소중한 의미를 창조하는 연금술사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필자는 사랑이라는 지극히 주관적 정서를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객관적 의미로 확장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긴장감은 유지되고 있는 가를 눈여겨 볼 것이다.
2-1. 완전한 삶의 근원, 사랑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을 사람이 행동하도록 하는 도덕적 힘으로 정의하였다. 즉 사랑은 삶을 유지하고 나아가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완성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박영숙영 시인의 작품에 드리워져 있는
사랑의 정서는 완전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와,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지로 집약된다. 먼저 완전한 삶을 향한 의지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랑의 정서를 살펴보기로 하자.
기쁨은 슬픔의 또 다른 이름이며,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심지어 삶의 이면에는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하여 시인은 우리의 삶을 ‘늘 항상 고독한 바람이 불어 / 더 오래도록 뼈 속을 채워오고 / 마음에 드나드는 바람구멍 막을 수 없는’(「바람구멍」) 서글픈 대상으로 묘사하였다. 그런가 하면 차라리 죽고 싶다고 절규하는 동생의 고통을 절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을 그린 「누나 죽고 싶어요」라는 작품에는 삶에 대한 처절한 고통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박영숙영 시인의 작품에서 산견(散見)하는 서글픔과 고통은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 삶을 완성하여야 한다는 당위성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기제로 작용한다.
아, 내 영혼의 생명수는 님의 사랑
슬픔도 기쁨이 되고
불행도 행복이 되고
절망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요술쟁이 님의 사랑 나에게 주오
-「내 영혼의 생명수는」 부분
때론 사랑의 독침에 찔리는 줄 알면서도
누구나 이 길을 꼭 한번 가길 원하는 것은
사랑의 뿌리는 생명이고, 생명의 뿌리는 사랑이라
사랑은 삶이고 행복이며, 영원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신생아를 출산하듯
사랑의 독을 승화시켜
상처를 감싸주는 참사랑을 해야만이
영혼의 빈 잔에
향기를 채워가는 아름다운 삶이 될 것 입니다
-「사랑에는 독이 있다」 부분
님의 사랑은 슬픔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그리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준다. 그렇지만 사랑의 여정에 기쁨과 행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찔리면 치명상을 입는 독침과 같은 불안과 고통이 산재하고 있다. 그것을 알지만 사랑이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의 근원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길을 가고자 한다.
그 길을 간다고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먼저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우리는 언제 어떻게 인식하게 되는가? 시적화자는 ‘어머니가 신생아를 출산하듯 / 사랑의 독을 승화시켜 / 상처를 감싸주는 참사랑을 해야만’ 즉 어머니가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자식을 출산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상처를 진심으로 감싸줄 수 있는 헌신적 자세를 갖추고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런 뒤에야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신의 입김에
튀겨낸 봄 햇살이
허기진 대지의 가슴을 스칠 때
연 초록 생명이
하늘 향해 일어서듯
천 년의 사랑씨앗
내 가슴에 묻어서
부르튼 발에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자갈길 걸을 지라도
신께서 맺어주신
당신과 함께 라면
그날의 그 약속 되새기며
오늘만이 날인 듯
당신 위해 밝히는
내 영혼의 불꽃을
아낌없이 태우리 -「천 년의 사랑을 위하여」 전문
봄 햇살의 투사와 연 초록 생명이 움트는 자연 현상을 시혜와 수혜 또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파악하는 시인의 의식에는 당신의 사랑과 그로 인하여 한층 강화되는 삶에 대한 나의 의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드리워져 있다. 삶은 ‘부르튼 발에 / 등이 휠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신께서 맺어주신 / 당신과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다는 시인의 다짐 역시 당신의 사랑에서 기원한다.
이렇듯 시인은 당신의 사랑을 지금 내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고난을 극복하고 삶을 완성하기 위한 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랑의 정서는 영원한 행복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의 근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2-2. 영원한 행복의 근원, 사랑
박영숙영 시인에게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화합이 이루어짐으로 인한 기쁨이나,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한 슬픔은 중요하지 않다. 시인은 사랑의 정서가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해일이 몰려와도
바라보는 수평선은 흔들리지 않듯이
광풍이 몰아쳐도
육지를 뚫고 솟아난 산 능선 그대로 있듯이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보고 싶은 마음이
벌집을 쑤신 듯하지만
정작으로 당신 앞에 서게 되면
눈부신 태양을 맞이한
아침 꽃처럼 수줍기만 합니다.
저 넓은 창공 속에
달이 뜨고, 별이 뜨고
태양이 솟아나서
육지를 끓어 안고 돌고 돌듯이
신비한 사랑의 샘물을 파 놓은 듯이
내가 가진 모든 것
내가 가질 모든 것이 당신의 가슴속에 있어서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그 사랑 줄기에
오늘은 또 다른 삶의 향기 꽃 피우며
내일을 여는 미래의 문 앞에서
행복한 듯, 수줍은 듯
당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습니다 -「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전문
작품 전체를 이끄는 정서는 행복함이고 그 배경에는 사랑의 정서가 내재하고 있다. 이를 시인은 불변의 자태, 자연의 섭리 그리고 영원성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다.
1연부터 3연까지는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요소와 그 같은 위협에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자세를 대비시키고 있다. 즉 해일, 광풍, 기다림이 나의 사랑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면 수평선, 능선 그리고 당신의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변의 자태를 유지하면서 불안 요인을 불식시켜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시인의 정서는 자연의 섭리와 영원성으로 확장되면서 시인의 의지를 강화시킨다. 달과 별 그리고 태양의 운행과 같이 결코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을 일러 자연의 섭리라 한다. 시인은 변하지 않을 자신의 사랑을 자연의 섭리와 등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의 사랑은 오늘의 삶의 근원이며 나아가 내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듯이 나의 사랑도 영원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이 같은 확신 때문에 시인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다음 작품에서도 동일한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 모두 모아서
가슴에 심어주신 빛의 꽃
봄날 속에 퍼져가는 빛의 향기
세상은
피어나는 사랑으로 눈이 부셔라
-「세상은 눈이 부셔라」부분
어제 못 다 준 사랑을 위하여
새로운 태양이 뜨는 오늘 하루도
영혼의 잔에
사랑을 채워가는 즐거운 삶이기에
눈뜨면 보이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사랑에
영원을 약속하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 어제 못다 준 사랑을 위하여 」 부분
시인에게 있어 님은 모든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근원이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주는 대상이다. 그러한 님이 시인에게 향하는 마음을 나는 사랑이라 하고 그 사랑의 빛으로 인하여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고 고백한다.
오늘은 어제 못 다 준 사랑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며, 새로운 날은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채우기 위해 시작된다. 따라서 시인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은 곧 시인의 영원한 사랑을 입증하기 위한 징표일 뿐이며 사랑의 정서는 시인에게 영원한 행복을 지향하는 근원으로 작용한다.
사랑의 정서를 얼마나 내밀하고 애틋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 박영숙 시인에게 이 같은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사랑의 정서가 우리 삶에 무엇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고 해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3. 상생과 조화의 근원, 자기 수련
박영숙영 시인에게 현실은 외로운 공간이며 타락한 세계이다. 현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태도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첫째, “시는 즐거이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라는 메슈 아놀드(M. Arnold)의 진술처럼 시가 지녀야 할 교시(敎示)적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현실을 파악하는 부정적 인식이 상생과 조화의 공간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긍정적 의지의 기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무엇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를 위하여 엄정한 자기 수련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3-1. 비틀린 세계와 위선의 공간
시인에게 현실은 ‘길고 긴 혼자만의 독백으로 / 가슴에 달이 뜬다’(「가슴에 달이 뜬다」는 고백과 ‘뜨거워서 목이 탈수록 / 무수한 가시를 키우는 선인장처럼 / 외로움 깊을수록 / 깊어지는 그리움에 / 잠들지 못하‘고(「바나나 침대」) 별을 센다는 진술에서 드러나듯 외로운 공간이다. 이처럼 현실을 외로운 공간으로 인식하는 태도는 다음 시에서 보다 여실하게 드러난다.
하늘까지 닿았던
그 마음
산발하는
순백의 언어가
풀어놓은
허기진 그리움
지쳐서
가지 위에 혼절하면
심장을 가르는 듯
짐승들의 비명소리
눈 속에 돌이 되고
산 속에 밤이 우는 소리
싸늘한 외로움이
골짜기를 기어올라
가슴에 산을 만든다 -「산 속에 밤이 우는 소리」전문
정상에 이르렀던 그 마음이 산발하듯 허공에서 흩어진다. 시적 화자인 나는 지쳐 혼절하고 산속에는 밤이 찾아든다. 그러나 여전히 기착할 곳을 찾지 못한 나의 그리움은 골짜기를 습관처럼 기어오르고, 내 가슴에는 허물어지지 않을 산이 생겨난다.
하늘까지 상승하던 그 마음은 허공을 맴돌다 허기진 그리움과 싸늘한 외로움으로 변한다. “어금니 사이로 침묵의 비명이 흐르면 이제는 잊어도 좋을 슬픔이 가슴이 멍멍하도록 차오르고, 가슴에 사무치는 사연은 전할 곳 없어 가슴을 태우는 그리움이 되어 흘러가는”(「여름 밤이 지나간다」) 곳, 그곳이 지금 시적 화자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시적 화자는 현실을 ‘오물 같은 명예를 위하여 / 너를 죽이지 않으면 / 내가 죽어야 하‘는(「열정과 희망 사이」) 시기와 질투만이 존재하는 전쟁터로, ‘산 정상을 오를수록 길은 험해서 / 덫을 피하고 맹수를 피하다 보면 / 한 발만 헛디뎌도 벼랑에 떨어지거나 / 혹은 매달려서 독수리 밥이 될 수도 있는’(「대나무는 없었다」) 정글로 인식하기도 한다.
웰빙*의 귀족들
임금님 아닌 임금님은
시멘트 성곽 안 용상에서
공작새 꼬리를 펴고
문 앞에는 박퀴벌레같이 검은 차
금빛으로 뻔쩍인다
백 년도 못 사는 인생
세월을 잡으려고
돈으로 쑤셔 놓은 푸른 숲은
대지가 난도질당해
자연이 목숨을 잃어가고
웰빙의 귀족들 꼬리표에 걸려 넘어져
터져나가는 골통,깨어진 정강이
패잔병의 신음소리는
지하철 신문지 밑에 잠이 들고
돈 때문에 필 수 없는 젊음은
꽃잎 지듯 창가에
낙엽처럼 진다
바람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세월의 고난 속에서도
삶의 애증[愛憎] 푸른 잎을 피워내며
모질게도 뿌리박은 가로수는 떠날 수 없어
시커먼 기름옷을 입고서
진득거리는 먼지를 마시며
각혈하는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서 있는
가로수는 배고프다 -「가로수는 배고프다」 전문
시적 화자는 ‘정상에서 어긋난 현실 파악,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그로인한 폐해 제시 그리고 회복하고 지켜야 할 우리의 삶’ 순으로 자신의 정서를 서술하고 있다. ‘웰빙’은 함께 잘 살기 위하여 가능한 한 절제하고 자제할 것을 지향한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중세시대의 타락한 임금처럼 사치와 향락을 누리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입으로는 웰빙을 외친다. 과도한 욕망으로 자연은 훼손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낙엽처럼 쓰러져 간다. 이런 현실을 시적 화자는 ‘대지가 난도질 당해 / 자연이 목숨을 잃어가는’ 사막과 같은 불모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그럼에도 시적 화자는 오랜 세월 애증이 공존했던 우리 삶의 터전인 현실을 떠날 수 없다고 하여 우리가 지금 여기서 지키고 회복하여야 할 삶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질서와 도리가 완벽하게 구현된 완전한 사회가 실현된 적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 현실에 내재하는 문제를 파악하는 한편 그것을 개선하여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시인과 같은 창조적 개인의 염원 때문에 역사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그 구체적 양상을 다음 작품을 대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누가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유명품이
먹는 것인지
입는 것인지
밭에 심는 곡식의 씨앗인지를……
저는 해방둥이로 태어나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때 전쟁을 겪었고
남의 나라에서 30년을 살다 보니
유명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추측하건대
유명품은 씨앗인가 봅니다
땅에 심는 씨앗이 아니라
가슴에 심어지고
욕망으로 키워져서
입에서 터져 나와
바람 타고 천지사방 흩어지는
전염병 같은 씨앗인가 봅니다
누가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유명품이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는지를….
헐렁한 옷을 입고
어수룩한 모습으로 길을 가고 있는 저에게
-「유명품[名品 ]은 씨앗인가」전문
‘곡식 씨앗’과 ‘가슴에서 기생하는 씨앗’ 그리고 ‘배고픈 사람의 구제’와 ‘불순한 욕망의 확장으로 인하여 타락하는 현실’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은 명품 브랜드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풍자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풍자(satire)는 현실 모순을 소극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야유하고 조소하는 비판 수단이다.
우회하여 비판하지만 현실 모순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그리고 풍자의 최종 목표는 징벌(懲罰)이 아니라 부정적 요인의 개선이다. 즉 부정적 요인이 제거되어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희망을 진작시켜준다.
따라서 모순을 지적하는 준열한 자세나 개선을 촉구하는 준엄한 가르침은 배제되어 있다. 다만 불순한 욕망이 과잉으로 분비되는 것에 대한 경고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경고는 궁극적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인의 의지는 삶을 인식하는 겸허한 자세와 엄정한 자기 수련으로 내면화된다.
3-2. 자연의 섭리와 자기 수련
순자(『荀子』)는 천론(「天論」)편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따라 다스리면 길하고, 마음대로 하면 흉하게 된다”고 진술하였다. 여기에는 자연계를 운행하는 규율은 인간 의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멋대로 행동하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이 내재하고 있다. 박영숙 시인 역시 자연이 보여주는 변함없는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수련을 거듭한다.
어제도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오늘도 꽃이 피고, 꽃이 진다
아침에는 눈을 뜨고
저녁에는 죽는 연습
산다는 건
눈 감으면 종말인데
내 삶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서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삶은 내 것이 아니기에
행여 세파에 때 묻을까
자연 속에
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 -「살아있어 행복한 날」부분
1-2행에서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꽃의 일생을, 3-6행에는 태어나고 죽는 사람의 일생을 그리고 7-13행에는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자세가 드리워져 있다. 즉 ‘행여 세파에 때 묻을까 / 자연 속에 / 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에서 드러나듯 시인은 삶에서 지켜야 할 모범을 자연에서 찾고자 한다. 이렇듯 자연이 시인에게 모범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변함없는 규범 때문이다.
--- 전략 ---
봄 꽃은 여름 꽃을
여름 꽃은 가을꽃과
논쟁하지 아니하고 지고 피며
꽃들은 제각기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따뜻한 햇살에 흔들리는 암 수술
씨방을 익힐 뿐이다
세찬 비바람 홍수에
땅덩이가 바다로 가지 않게
낮은 풀들이 흙을 끌어안고
육지를 공유하고 있는 옆에서
흙 속에
내 마음 묻어두고 올려다본 하늘
하얀 애기구름 배냇짓 미소
한가롭게 흘러서 간다 -「공유」부분
꽃은 제철을 맞춰 피고 지며, 미세하지만 각 부분들은 저마다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세상의 구성 원리 이와 다르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일견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조화 때문에 이 세상은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듯 우리 역시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상생의 세계를 지향할 때 비로소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은 실현 된다. 그런 세상을 이룩하기 위하여 시적 화자는 ‘한 여름날의 투명한 고통도 / 가을의 쓸쓸함도’ 감당해야만 하는 삶의 실체를 인식하고, ‘자연의 순리에 머리 숙여 / 맨 손을 흔들며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하는’(「봄에 지는 낙엽」) 것처럼 자연의 변화와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
--- 전략 ---
어쩌면,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을지 몰라도
어쩌면, 내가 가을의 수확을 볼 수 없을지 몰라도
이 순간의 내 삶을 헛되지 않게
황금 같은 봄날의 아름다운 순간에
꿈을 심으며
살아있어 행복에 젖는다 -「이 순간의 내 삶을 위하여」 부분
--- 전략 ---
삶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기에
노력 없이 공짜로 세상사는 사람 없어
작은 일에도 미칠 만큼 열정을 쏟아야만
후회 없는
삶의 성취감을 만날 수 있는
인생은 달리기와 같다 - 「인생은 달리기」 부분
--- 전략 ---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
버릴 건 모두 버려
가져갈 수 없어도
나누고 싶은
내 이름 없이 죽어갈 시인의 마음
끝없이 밀려오는 수평선 저 넘어
붉은 해가 잠드는 곳에
내 하얀 날개를 접고싶다 - 「내 이름 없이 죽어갈 시인의 마음」 부분
씨를 뿌리는 일은 내 몫이었지만 수확은 누구의 몫이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행복한 것은 파종하는 봄날 그 보다 더 소중한 꿈을 심었기 때문이다. 이는 ‘가을에는 / 떨어진 낙엽 썩어서 거름되듯 / 이웃 위해 아픈 상처 배려하며 / 이웃 위해 쓸모 있는 / 참된 ‘나’가 되’(「낙엽이 거름되듯」)기를 갈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他人)과의 관계에서 나를 버릴 때 이타심(利他心)은 생성된다. 성취감은 성실한 삶에 대한 결과로 생성되는 것이다. 쉬지 않고 계속 뛰어야 하는 달리기와 같이 성실할 때 번뇌와 고통은 사라지고 생명의 소리와 마음의 풍요로움이 그 자리를 채워준다.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버리고 가져가기보다는 차라리 나누고 싶다는 시적 화자의 진술과 ‘굽어진 허리를 곧추세워 / 고개 드니 / 노을이 / 내 앞에서 / 낮추고 비우라 하는 구나’(「가을인생」)라는 구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세속적 욕망이 제거된 겸허함이다. 이처럼 자연의 섭리를 모범으로 이타심(利他心)과 성실함 그리고 겸허함을 지향하는 자기 수련의 과정이 동반될 때 우리의 현실은 상생과 조화의 공간으로 개선될 것이다. 구체적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전략 ---
이슬 맺힌 풀밭에 발을 적시며
생명이 움트는
텃밭과 꽃밭에 물을 줄 때면
그 속에 나를 세워놓고
함께하는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과 공기를
분수에 맞게 소유하고
생각을 흙 속에 묻어두고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의 모습대로 서서
말을 할 듯
반기는 나무와 꽃들
--- 후략 --- - 「내 삶의 향기」부분
생명이 움트는 순간 그 가운데 내가 서있으면 나와 자연은 일체가 된다. 즉 자연은 나에게 나는 자연에게 동화(同化)되어 서로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그 순간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체의 것들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체험하게 된다.
나무와 꽃이 아름다운 것은 ‘따뜻한 햇살과 바람과 공기를 / 분수에 맞게 소유하고 / 생각을 흙 속에 묻어두고서 /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 자신의 모습대로 서’있기 때문이다. 즉 변하지 않는 항심(恒心)의 자세와 분수를 알고 만족하는 자족(自足)의 상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너와 나가 일체가 되어 조화로운 상생이 실현되는 곳을 지향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에서 태어나 / 물을 밟고 가야 하는 길 위에서 / 젖을수록 무거운 솜 같은 날개를 어루만지며 / 발 밑에 실 매듭을 풀어가야 하는 하루하루’ 같은 삶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래야만 그 끝에서 ‘캄캄한 허공의 두려움을 안고서도 / 행여 그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 아, 푸른 꿈’(「삶의 무게를 덜어내려」)과 같은 희망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다.
4.
박영숙영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첫 번째는 완전한 삶을 구축하고 영원한 행복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진실한 사랑의 정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우리 현실이 상생과 조화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수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박영숙영 시인의 이 같은 자세는 추상적 구호와 관념적 유혹이 아닌 실천 가능한 현실적 의지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에는 다양한 소재를 시적 대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각 작품이 드러내는 주제와 의미 또한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에 시인의 의지가 큰 흐름을 유지하면서 일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박영숙영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등 삶의 모든 것들과 진지하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특히 조국을 떠나 다른 문화를 배우면서 살아야 했던 시인에게 삶 그 자체가 늘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도전은 성취와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보다 큰 좌절과 슬픔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취와 좌절의 순간 시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시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인은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시인 자신의 소망과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소망으로 확장시켰다. 이 같은 박영숙영 시인의 자세가 소중하게 인식되는 것은 시의 영역이 사적 공간으로 위축되고, 시의 의미가 관념으로 퇴행하는 오늘 우리 현실에서 회복하여야 할 시의 영역과 시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읽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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