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4 -사부곡아리랑/아버님께 바치는헌시/서문
2013.04.20 23:07
서문
사부곡(思父曲) 아리랑
부모님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구초심’의 노래
신규호(시인, 전 한국현대시협 이사장)
오늘의 세계는 지구촌이 일일 생활권으로 좁아진 까닭에 국경을 넘어 인구 이동이 극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디아스포라 현상은 우리 민족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계 곳곳에 이주해 사는 동포들이 수백 만 명에 이르고 있다.
살다보면 타국도 제 2의 고향이 된다지만, 그들이 현지 적응에 성공한다 해도 부모 동기간들과 함께 살았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회피할 수 없는 절실한 것이라서, 본능적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버릴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박영숙영 시인의 경우 역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예외일 수 없다. 박 시인의 고향이 경남 진해였고, 필자도 청소년기에 그곳에서 학창 생활을 보낸지라, 그 사실을 알고부터 박 시인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집 <사부곡> 원고를 통독하면서, 해외에서의 외로움과 함께 부모와 고향에 대한 박 시인의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모국에 살고 있는 필자로서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집 전체를 일관하는 표현상 특징은 작품 자체의 독창적 비유나 미학적 형식보다는 고인이 된 부모님과 살았던 고향에 대한 애틋하고 절실한 심정을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출하는 시인의 마음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읽어가면서 공감할 수 있었으며,
시에서 진실되고 솔직한 표현의 가치가 매우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랑과 그리움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어서 감동적이다.
숨을 곳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거친 파도와 싸우며
한 잎 나뭇잎처럼 흔들려도
좌초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항구로 돌아가야 하는 돛단배
울고 싶어도 마음대로 울 수 없고
쉬고 싶다고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세상 바다에서
작은 돛단배 같은 아버지……………………..시「아버지란 거룩한 이름」 일부
고국이 가난했던 시절에 온 국민이 어렵게 살아서, 누구의 아버지도 그 고난을 피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형편을 읽을 수 있어서 더욱 눈물겹다. 망망대해에서 작은 조각배에 몸을 싣고 거친 파도와 싸우는 어부의 처지에 비유된
아버지의 삶은 시인의 아버지만의 경우일 수 없으며, 그런 까닭에 이 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한다.
어렵게 살았던 아버지의 고달픈 처지를 가슴 아파하는 딸자식의 심정을 구태여 효심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절실해서, 시가 지닌 보편적 진실이 가슴에 핍진해온다. 이런 심정은 다음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아부지
높디높은 푸른 하늘 아래
산 끝자락
바다가 덮고 있는 그곳을 향해
“아부지∼” 하고 부르면
“오냐∼, 내 딸이가” 하시며
점벙점벙 물 위를 걸어오실 것 같은
타는 목마름으로
하염없이 그리움을 마시며
남빛 푸르게 뻥 뚫린 우주 속으로
당신께서 바람 따라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신
그 길을 조금씩 더듬어 가고 있으면서
손나팔 만들어서 불러 보는 당신의 이름
“아부지∼”---“아부지∼”………………………………..시 「아부지」 일부
아버지를 ‘아부지~’ 라고 거듭 목메어 부르는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지난날의 정경을 담은 흑백 필름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동적 이미지가 살아나서,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와 딸 사이가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처럼 실감 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는 시인의 심정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깨닫게 해 준다.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와 같이 절실하게 표현할 수 있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디, 시 예술이 추구하는 목표는 진실성과 함께 미학적 성취의 획득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바, 20세기 이후 현대시에 와서부터 후자의 가치를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육친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사부곡>의 경우, 미학적 표현보다는 오히려 꾸밈없는 인간적인 진솔한 표현이 더 우선되었으리라고 본다.
아울러, 이 시집 작품 가운데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담은 시들도 다수 있어서, 비록 시집의 제목이 <사부곡>이지만 어머니를 포함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시단에 등단한 이래, 박영숙영 시인은 활발한 창작 활동을 통하여 미주에서 동포 문학을 살찌워 가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도 역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이 <사부집>과 <컴퓨터 고운 님이여> 두 권의 작품집을 동시에 발간하는 박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에 감동하면서 시집 출간을 거듭 축하하며, 부단히 더욱 분발하여 해외에서의 문운이 왕성하기를 기원한다.
읽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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